25시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던 밤
눈은 오고
유령이 걸어간 발자국처럼
묵직하던 울림, 희열같은 외비명으로
스산한 겨울바람이 분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기도소리는
끝내 마음을 여리게 하여
산으로 난 외길을 걷게 한다.
눈 위로 명멸하는 사면을 밟으며
허전한 밤을 방황하던 영혼이 멈출 때
설풍은 저 설원 너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텅빈 하늘에
아침으로 통하는 슬픔이 이울어 가는데
시계추의 움직임 따라
나목을 가려줄 눈시울의 뜨거움 같은
입술의 서정이라도 기다려지는 밤
망령의 괴로움인냥 일그러진 숫한 사연의 애잔함은
오히려 생수의 범람처럼 평온이 스며든다.
눈이 멎은 후
병상의 숨소리가 잦아들고,
라디오의 까만 초점 속에서
기도의 마지막 -아멘-이
그 -아멘-이
방금 멀리 끊겨 사라진 시간.
설풍이 멀리서부터 또 불어오고 있었다.
5사단 30연대 의무대 병실에서 위무병으로 근무하며
1961. 12. 25
서라벌학보게재(1962. 2.12)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엄숙한 시간”이 나의 기도처럼 들려 오고 있다.
<그 누군가 나 때문에 울고, 웃으며 나에게 걸어 오고 있다. 죽어가는 그 사람이
나를 살펴보고 있다. 오! 이 진토의 작은 영혼을 가엾게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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