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에 남산으로 돌아가며
맹호연
북궐(北闕)에 상서(上書)는 그만 올리고
남산(南山)의 고향집으로 돌아가자.
재주 없어 명군께서 버리셨고
병이 많아 친구까지 멀어졌다.
센털(白髮)은 노년을 재촉하고
봄빛은 세모를 몰아친다.
시름이 그지없어 잠 못이루니
소나무 달밤에 빈 들창.
[歲暮歸南山]
孟浩然
北闕休上書, 南山歸敝盧.
상궐휴상서, 남산귀폐노.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
부재명주기. 다병고인소.
白髮催年老, 靑陽逼歲除.
자발최연노, 청양핍세제.
永懷愁不?, 松月夜窓虛.
영회수불매, 송월야창허
맹호연(698~740)은 자연시를 잘 쓰며 당시 왕유(王維)와 쌍벽을 이룬 시인이다. 맹호연은 40세까지 당시 유행하던 은일(隱逸)의 기풍을 좇아 오랫동안 산수(山水)속에 야인으로지냈다. 그는 양자강의 남북 지방을 두루 다니며 산수시(山水詩)를 썼다.
남산은 맹호연의 고향 호북성 양양(襄陽)을 가리킨다.
북궐은 공차문(公車門)이 있는 곳
맹호연은 은사(隱士)로 일생을 보냈지만 벼슬하기를 바랬으나 진사시험에 실패한 후 매우 실망하였다고 한다. 수줍음을 많이 타기도 한 모양이다.
어느날 왕유가 맹호연을 궐내로 불러들였다. 그 때 현종(玄宗) 리륭기(李陵基)가 들어오자 맹호연은 침상 밑에 숨었다. 왕유가 사실대로 아뢰고 맹호연을 소개하였다. 현종이 “짐은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아직 보지 못했소. 무엇이 두려워 숨는고?”하였다. 맹호연을 나오라고 하여 이 시에 대하여 하문하였다. 맹호연은 재배(再拜)를 하고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낭송이 “재주 없어 명군께서 버리셨고”라는 구절에 이르자 현종 왈(曰) “경은 벼슬을 구하지도 않았고, 짐은 경을 버린 적도 없다. 어찌 나를 모함하는고?”라고 하면서 쫓아내었다고 한다.
우리도 세상이 날 버렸다, 친구가 날 버렸다, 이웃이 날 버렸다, 동기간이 날 버렸다. 자식들이 날 버렸다. 라고 비관하며 스스로 고독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날 버리지 않았다. 친구가 날 버리지 않았다. 이웃이 날 버리지 않았다. 동기간이 날 버리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들에게 닥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이다.
나를 바로 알자. 내가 나를 모르면서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마구 흠집을 내지 말아야 한다. 자존감을 갖어야 한다. 맹호연도 자연시를 잘 지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재주가 없는 사람으로 비하했다. 남이 보기에는 시를 잘 짓는 시인의 재주가 있는데 자기는 재주가 없어서 출세를 못한 인간이라고 자포자기를 하였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사회를 어둡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헬조선이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해야 한다. 내가 귀한 사람이면 내가 사는 대한민국도 귀한 나라다. 오늘 맹호연의 한시를 음송하며 저물어가는 한 해를 돌이켜 보았다.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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