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 - 안도현
발로 차지는 말아라
네가 언제 남을 위해 그렇게 타오른 적이 있었더냐
반쯤 깨진 연탄 - 안도현
언젠가는 나도 활할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잔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아 발갛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연탄 한 장 -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연탄 한 장
# 작가 소개
안도현(1961- ) 시인.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 졸업. 교사 생활을 하다가 전교조 가입한 이유로 해직되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당선되었고,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었다. 1996년 제1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1998년 제13회 소월시문학상, 2000년 원광문학상, 2002년 제1회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1991),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그리운 여우>(1997), <바닷가 우체국>(1999),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1) 등의 시집과 <연어>(1996), <관계>(1998), <짜장면>(2000), <증기기관차 미카>(2001) 등 어른들을 위한 동화, 그리고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1998), <사람>(2002) 등이 있다.
# 시 전문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핵심 정리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자성적(自省的)
제재 : 연탄
주제 :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인간애
출전 :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매우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안목으로 따뜻한 인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은 연탄 한 장에서 뜨겁게 몸을 태우며 살아야 하는 삶의 의미를 찾아 내고, 이를 통해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반성하게 한다. 자신의 역할이 끝난 뒤에는 어느 이른 아침에 한 명이 재로 변하여 미끄러운 길을 편안하게 열기까지 한다. 시적 화자는 이와 같은 연탄의 효율성을 상기하며, 자신도 연탄과 같은 이타적(利他的)인 삶을 살 것을 다짐하고 있다.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주 짝막한 시입니다. 겨우 3행에 불과합니다. 이 시는 안도현이 등단(1984년 동아일보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됨) 이후에 세번째로 낸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시집
의 첫 장을 열어보면 <너에게 묻는다>라는 이 시가 실려 있습니다. 대부분 시인들이 자신의 시집 첫
면은 자신의 시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시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이 시도 안도현 시인에게 아주 중요한 뜻을 갖는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먼저 제목이 주는 충격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시에서 제목은 우리들이 사는 집의 대문과 같은 역
할을 합니다. 어느 집을 방문할 때 우리는 먼저 그 집의 대문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합니다. 시를
읽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 제목을 보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
니다. 즉 시의 제목이 신문하는 어조입니다. 도데체 저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질문할지 알 수 없기 때
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아주 짤막합니다. 행으로 따져도 불과 3행에 지나지 않고 글자 수로 따져도 불
과 32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시인의 질문 내용이 우리가 돌보지 않고 살던, 그렇지만 돌보고 살아야 마땅한 점을 집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우리에게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받고 우리는 몸둘 바를 모르면서 정말로 나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된 적이 있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다보며, 그의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또 어떤 점 때문에 이 시가 매력이 있을
까요? 그것은 시의 첫 줄에 나오는 내용 때문입니다. 안도현은 이 시의 첫 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학우님들은 연탄재를 발로 차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모두들 기름이나 가스로 난방을 하니까
연탄재를 볼 기회도 또 차볼 기회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가정집 대문 앞에
하얗게 탄 연탄재가 줄을 맞춰 쌓여 있었고, 우리의 겨우살이는 창고에 수백 장의 연탄을 가득히, 차
곡차곡 채우는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 타버린 연탄재를 우리는 함부로 또 재미로 차곤 했습니다. 발이 심심하니까요. 아니, 연탄재란
이미 쓰레기 신세가 된 것이니까요. 바깥에서 떨고 있는 연탄재 정도야 거지의 신분이라도 마구 찰
수 있을 만큼 이미 폐물이 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우리에게 명령조로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우리는 마음이 찔끔 조여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아
니면 왜 연탄재를 발로 차지 말라고 외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래는 곧바로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첫 줄의 내용으로 인하여 안도현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는 질문 내용이 빛을 발하며 다가오는 것
을 느낄 것입니다.
안도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비록 연탄재를 쓰레기로 취급하여 마구 차고 다니
지만, 그래도 연탄은 너에게 따뜻한 아랫목, 맛있는 밥과 국, 겨울날의 더운 세숫물 등을 주며 하얗
게 자신의 몸을 태우지 않았느냐고...... 사실 그랬습니다. 연탄 하나로 우리는 밥도 짓고, 국도 끓이
고, 방도 데우고, 물도 데우고, 고구마도 구워 먹었습니다. 그 까만 연탄으로 말입니다.
안도현은 바로 이런 연탄에서 인간에 대한 연탄의 '뜨거운 희생'을 읽은 것입니다. 그는 이런 연
탄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는 연탄재를 함부로 찰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뜨거
운 희생'의 표상인 연탄과 냉혈동물 같은 인간을 대비시키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연탄의 '뜨거운 희생'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살려내는가 생각할 수 있
습니다. 우리는 안도현의 당돌한 질문이 실로 우리로 하여금 자아성찰의 계기를 갖도록 하였기 때
문에 그 질문을 받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내가 뜨거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볼 수 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시감상이란 어차피 독자 개개인의 몫
이니까 또 다른 수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안도현의 이 시를 넘기면 바로 <연탄 한 장>과 <반 쯤 깨진 연탄 한 장>이라는 시가 나옵니다.
그야말로 '연탄시리즈'인 셈입니다. 안도현은 이 세 편의 시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하고 명령하며
우리들을 '따뜻한 세계'로 안내하지만 실은 그 자신이 이렇게 '뜨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학우님들은 이 시가 아주 짧은 것에 대
해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 바쁜 세
상에 이렇게 짧은 시가 어울리지'.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로 많은 말을 하지'.
또 다른 누군가는 '차라리 경구에 가깝구먼'.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의 매력은 짧은데 있어'
라는 식의 다양한 반응을 나타낼 것입니다. 시가 꼭 짧을 이유는 없습니다. 서사시나 장시는 소설
보다 더 길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일반 서정시는 짧은 형식을 취하지요. 그것은 가장 압축된
말로, 가장 많은 의미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 시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아이
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우는 울음이야말로 가장 압축된 형식의 시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울음 속에는 생의 기쁨, 고단함, 슬픔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안도현은 위 시에서 아주 적은 말로 참으로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는 매우 경제적인
장르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안도현은 위의 시에서 실감 있게 확인한 것입니다.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과 <반 쯤 깨진 연탄 한 장>를 읽어보세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한지 손을 뻗어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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