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인마을

[스크랩] 친일시인 서정주- 국화옆에서 분석 1

운산 최의상 2013. 7. 4. 12:00
아래 글은 '창작과비평사' 게시판을 통해 한 지식인이 9차례에 걸쳐 발표한 서정주 시인에 대한 논문의 전문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인내력을 갖고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국화꽃의 비밀1: 금기로서의 [국화꽃]과 [거울]

미당 서정주의 대표시 [국화 옆에서]는 국민적 사랑을 받아 온 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를 암송할 정도로 사랑해 왔고, 또 지금도 대부분의 시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신세대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이 시는, 미당의 수치스런 친일행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국정교과서에 수록되었었고 지금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고 있을 정도로 좋은 시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미당이 시의 제3연에서 국화꽃을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국화꽃을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걸어 온 후 관조의 경지에 다다른 중년 여인을 비유한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어느 신문 기자의 다음 말은 [국화 옆에서]가 그 동안 어떻게 우리 나라에서 읽히고 있었는 지를 잘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ꡒ우리는 중․고교 국어시간에 「국화 옆에서」를 ꡐ모든 풍상을 겪고 인품이 완성된 경지에 이른 40대 누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배웠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으며 실제 미당 자신도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경향신문 2000-06-29).

하지만 [국화 옆에서]는 기존의 이러한 원론적 해석이 모범답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그 상징성이 단순한 시는 아닙니다. 미당이 시 속에서 "국화꽃=누님"이란 은유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고, 또 외견상 시의 의미구조가 아주 단순하고 명확해 보여도, 이 시는 심층에 간과하기 힘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 문제점은 대충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데, 우선 오늘은 한 가지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국화 옆에서]가 보여주는 첫번째 문제점은 3연에 등장하는 거울과 그 국화꽃이 노오란 꽃잎을 지닌 황국(黃菊)이란 점입니다. 무릇 문학텍스트의 해석에 있어서 상징은 그 의미가 다각도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국화 옆에서]읽기는 이 시에 등장하는 상징물인 황국과 거울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즉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의 [국화 옆에서 읽기]가 "황국=친근한 누님," "거울=관조의 경지"로 등식화 시켜서 비유적으로만 해석했지, 상징적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칼 융의 용어를 빌린다면, 기존의 평론가들은 국화꽃과 거울을 표지적(semiotic)으로만 이해했지, 상징적(symbolic)으로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참고자료"satgatlim님께: 융의 상징론에 관한 답변"(click)).

우선 국화꽃의 상징성에 대해서 설명드리기 전에 그림을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왼편의 그림은 일본천황의 휘장이고, 오른편의 그림은 신궁에서 "20세기 일본의 신주(神主)가 신토(神道)의 신 태양을 상징하는 거울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칼 G. 융,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22쪽).

특히 일제 강점기라는 치욕스런 역사를 살아 온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국화꽃과 거울은 신중한 고찰이 필요한 상징물입니다. 왜냐하면 황국(黃菊)은 일본에서 지난 14세기 이후로 일왕과 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었고, [고사기]를 보면 거울은 일왕이 현인신(現人神)의 위상을 획득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화는 칼과 더불어 일본 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황국은 황실의 문장(紋章)으로서 황실가족의 모든 휘장을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다양한 형태--일왕의 예복, 일본국가훈장, 일본우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무기 등등--로 일본 제국주의 문화와 삶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Japanese Royalty Flags. by Phil Nelson. 2000-09-09 (click))

서구에서 발간되는 각종 세계 상징 사전을 살펴보아도, 국화꽃은 일차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꽃이며 일본황실 내지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소개되고 있다. 프랑스의 {상징 사전}은 국화꽃의 상징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국화의 꽃잎이 질서정연한 배열로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인해 이 꽃은 본질적으로 태양의 상징이 되며, 따라서 장수(長壽)와 불멸(不滅)을 뜻한다. 국화꽃이 일본 황실의 문장(紋章)이 된 이유도 그러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16개의 꽃잎을 지닌 국화꽃으로 된 일본 문장(紋章)엔 태양의 이미지와 나침반 지침면의 이미지가 겹쳐져 있는 데, 그 중심에서 천황이 세상을 통치하고, 우주의 모든 방향을 집약한다" Jean Cheval!!ier & Alain Gheerbrant,, Dictionnarie des symboles (paris: Robert Laffont, 1982) 247쪽.

일본 문화에서, 국화꽃이 태양신과 일왕의 상징물로 해석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울도 태양의 상징물로 해석됩니다. 보편적 문화상징으로서 '거울'이란 기표(signfier)는 여러 상징적 기의 (signfied)--통치자, 부부애, 자기성찰, 달, 태양, 진실, 자기애 등등--를 지닌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일본 문화 속에서의 거울은 천손강림시에 태양신이 자신의 혼(魂)을 담아 하사한 신기(神器)로 전해지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태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울은 삼종신기(三種の神器)의 하나로 이세신궁에 모셔지고 있고, 또 일제 강점기엔 아마테라스와 메이지왕을 주신(主神)으로 삼는 조선신궁에도 거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근 50년이 넘도록 국화꽃과 거울이 지니는 이러한 문화적 상징성은 단 한번도 우리 문학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문학판에선 국화꽃과 거울을 일본문화와 연계지어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스러울 정도로 금기시 되어 왔다고나 할까요.

출처 : 인드라망
글쓴이 : 고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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