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을 듣고
최의상
3개월 전에 모임에서 만나 웃으며 방담했던 친구
어제 갑작스레 소천하였다는 기별 듣고
오늘 연화장에 가서 그 친구 영정사진 보았다.
멀쩡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친구 여전히 반가워 한다.
'우리 딸 담임선생님 최선생님 반가워요.'
만나면 이런 인사를 하였다.
오늘 마흔이 넘은 그 딸이 검은 상복을 하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
아직도 20년은 더 살 것 같이 단단하던 그 친구가
갑자기 숨을 걷우어 마치 꿈을 꾼 것같은 느낌이라며
담담한 부인의 얼굴에는 슬픔이 고이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잊고 있다가
' 갑작스런 변고에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하며 위로하였다.
죽는 일에는 순서도 없고, 법조문도 없다.
다만 죽은 후에 산자들은 내 순서가 가까워 옴을 계산하고 있다.
내 주위에서 친구들이 마치 숨바꼭질 하듯 숨어버린다.
우리같이 팔순에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 친구 뭐가 급하여 먼저 가나, 이담에 천국에서 만나세. '
연화장 밖으로 나와 높은 굴뚝을 바라보았다.
저 친구 내일이면 연기처럼 하늘로 날아가겠지 하며
오늘 따라 쾌청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친구는 그래도 가족들과 친구들의 배웅 받으며 떠나니 행복하네
몇일 전 신문에 장례 치르는데 600만원~1,300만원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어 연고자가 있어도 나타나지를 않는다고 하더군
딸이 가난하여 장례비를 마련할 수 없어 아버지 시신을 두고
돈 마련해 오겠다고 간 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 딸만 욕할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는 이 현실이 무섭다.
장례비가 왜 그리 많이 드는 것인지 누가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시신을 놓고 돈벌이 하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옛날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죽으면 마을에서 장례를 잘 모셔주었던 그 시절이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돈 없고 가난한 사람만 서럽고 서럽다.
돌아서 운전대를 잡고 연화장을 벗어나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한다.
나와 아내를 위해 삼천만원만 모아야겠다고 되풀이 하며 가는데
창밖에 스쿨죤 30km라는 글이 선명하게 보인다.
2017년8월26일 친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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