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나는 온달이다- 천상병 시인에 대하여

운산 최의상 2017. 3. 8. 12:48




나는 온달이다- 천상병 시인에 대하여

                                                                               최의상


천상병 시인이 모윤숙 시인의 추천을 완료하고  당선소감에서

"나는 온달(溫達)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하여 나는 바보다.

고구려는 멸망하여 천년이 넘었으나 온달은 멸망하지 아니하였다.

.............

바보가 되기만 하면 [공주]가 나를 찾아올 것이 아닌가

나의 四月이 오고, 나의 成熟이 익어가고, 나의 豊年을 내 손으로 거둘 것이 아닌가"


천상병 시인은 이유가 없어도 괴로워했던 바보 시인이다.

그는 괴로우려고 괴로워한 시인도 아니다.

그는 괴로울 수 밖에 도리가 없는 시인이기에 괴로워하는 바보였다.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이 아니다


이 시는 천상병이 시인이라는 이름을 명명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천료(薦了)시다.

천상병 시인은 [온 종일 울어야 하는 괴로움]과 [그리움에 목마르]고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어야]하는 그의 괴로움은 어쩌면 바보같다.

이 바보같은 괴로움이 시인들의 것이기 때문에 괴로워야 했다.


천상병 시인은 괴로움의 독자성을 발휘할 수가 없기에 그는 바보가 되었다.

괴로운 바보는 [공주]를 만나야 한다. [공주]만이 내면의 독자성을 존중해 주고

그 독자성이 밖으로 탈출하도록 예인선(曳引船)의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모윤숙 시인은 천시인을 천거하며

[감상적인 내용을 감상에 머물지 않게 한 것이 촉망되었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감상을 감상으로 끝나면 괴로움도 끝난다.

감상에 머물 때 [공주]는 새로운 도약의 동기부여를 해 준다.

그러기에 바보 온달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개척을 하게 된 것이다.


나의 무료한 시간,  흘러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야에

누렇게 바랜 1958년판 추천시집을 펼쳐 보던 중 천상병 시인의 당선소감을 보게 되고

처음이 [나는 溫達이다.]를 읽고 온달은  바보가 명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천상병이 공주 즉 詩를 만나 지경을 탈출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천료소감을 읽으며 이 글을 써 보았다.

                                                                    2017.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