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園 李光洙의 [春園詩歌]
1955년6월 문선사 발행인 문순성씨는 [春園文庫]발간취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개척자이며 최고문호로서의 춘원이광수선생은 위대한 존재이다. 애정과 청명과 열의에 빛나는
전(모든)춘원문학은 소학생으로부터 백발 교수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애독자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
에게 까지 영구히 전해 줄 귀중한 작품이다.“
춘원선생은 현대문학의 개척자이며 한국 최고문호라 하였다. 이 시대에 춘원선생의 문학작품이
소학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독자층이 두꺼웠다고 한다. 순수한 문학의
독자들이 많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중에는 문맹자들이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도
감동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문자는 모르지만 춘원 이광수의 꿈, 마의태자, 유정, 무정 등은 알고
있었던 시대다.
해방 이전에 우리나라 전 국민의 80%이상이 문맹자라고 하였다.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가르치고 일본말만 하게 하였으나 사랑방과 안방에는 [춘향전] [구운몽]
[숙영낭자전] [흥부전] [한중록] [배비장전] [허생전] 등의 우리나라 고전 책들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유정] [무정]을 읽은 유식한 사람들은 이야기로 사람들의 넋을 뽑아버렸다.
그러나 6.25동란으로 춘원 이광수선생은 생사가 묘연하였다. 결국 북한괴뢰들에 의해 많은
지식인들이 북으로 강제 납치되어 끌려갔다. 춘원선생도 그 대열에 포함되어 끌려간 후 생사를
알 수가 없다. 그 후 1950년10월25일 자강도 강계군 만포면 고개동에서 사망한 것으로 판명된
것 같다. 6.25전쟁이 춘원선생의 문학에 대한 열정의 맥을 끊어 놓았으며 노오벨문학상의 길
도 막힌 것같다.
문선사 사장은 또 이렇게 썼다.
“ 두 가지 슬픈 사실이 있었다. 하나는 선생의 존명중(存命中)에 [노오벨상]을 받지 못할까하는 두려움이요.
또 하나는 아직까지 [춘원전집]이 성취되지 못한 일이다.”
춘원선생은 [노오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가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노오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없다.
춘원은 매우 겸손한 분이라 생각된다. [春園詩歌集]에서
“나는 내가 詩人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나 같이 비속한 인물이 시인이 될 수는 없다고 늘 생각합니다.
청정하고 순수한 혼의 소유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시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시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나는 시라고 지었습니다. 때때로 무슨 하소연을 하고자 싶어서 생각하고 적어 놓은
것이 내 詩歌입니다.”
[청정하고 순수한 혼의 소유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시인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춘원선생의
말씀에 나는 소름이 끼쳤다. 너도 시인이라고 하는데 너는 청정하고 순수한 혼의 소유자인가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적어도 순수하지는 못하여도 청정한 혼의 소유자가 되고자 노력해
보려고 한다.
춘원은 시조와 시가를 [춘원시가집]에 올렸다. 시조 89수와 시와 노래(현대시) 60편을
수록하였다. 다음에 시조 몇 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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