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최의상 詩人 詩室

운산 최의상 첫시집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을 향하여] 상재

운산 최의상 2015. 2. 19. 13:32

 

 

 

         운산 최의상 첫시집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을 향하여] 상재

 

 

 

    시집 표지 

 

 

 

 

 

 

 

 

 

 

 

<해설>

                          달밤, 박꽃같은 여인과 성聖가족을 위한 기도

                                                                                          고두현 시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오래된 화첩畵帖을 보는듯 하다. 아니 성화첩聖畵帖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긴 세월 묵힌 그림마다 경건한 기도의 자세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109편의 시가 바라보는 방향도 한 곳이다. 그 곳에는 ‘늘 거기에 있는 당신’이 있고, ‘날마다 새로 피는꽃’이 있다. 그 행간에서 손 모으고 쓰는 ‘묵상의 시’는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기도다.

 

 

첫 기도는 50년 전 환한 달밤 ‘박꽃 같은 여인’에게 주는 사랑의 시편으로 시작한다. 그날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기원의 자세로 새로운 창조를 생각하고’있던 그는 ‘바람이 어떤 형태로 인간의 표정을 구상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박꽃처럼 맑게 웃는 여인에게 심중의 말을 건넨다‘ 간지러운 미풍에서 시작하여 무서운 템페스트 폭풍까지’를 ‘운명 같은 열정으로 ’감수하자고 ‘당신이 감당해야 할 바람을 이 언덕에 올라와 맞이하시오’라고 그러면 폭풍 지난 언덕에 찬란한 햇빛과 장미와 해당화가 기쁨으로 피어나 ‘쇠잔한 우리’를 포근하게안아줄 것이라고…. 행여 ‘핏물을 뿌린 채로 우리를 한꺼번에 송두리째 앗아가는 잔인함이 있다 해도 ’그는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영원히 달밤 박꽃같은 여인을 맞이할 것’이라고 다짐 한다. ‘1965. 7. 29 미美에게’라는 메모를 곁들인 걸 보니 반세기 전 아내 이부미에게 바친 연시가 분명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은 여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귀한 사랑으로 맺은 열매는 굵고 단단하다. 뿌리가 깊고 튼실하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밤 그는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만화책장을 넘기며 웃는 아들’ 과 ‘예쁘게 잠든 딸’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들리는 건 ‘난로 위 주전자의 푸푸 소 리’ 뿐이다. 그사이로 ‘시베리아 같은 어둠의 설원을 걷’ 던 옛 시절과 ‘초원의 향기’, ‘ 향나무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 설경’ 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래 이 렇게 ‘아무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는 밤’ 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밤들이 지나면 또 먼동이 터왔었지.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의 눈길은 ‘뜨개질 고운 손 멎고, 큰 아들 작은 아들도 잠들고 딸의 숨소리만 달콤’ 한 풍경으로 가 닿는다. 그러다가는 짐짓‘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 소리를 내고‘ 창밖에 눈도 멎었다’ 며 짐짓 딴청을 부린다‘ 창밖에서 시간을 토하며 내리는 함박눈’ 과 ‘창안에서 시간을 마시며 깊어가는 밤’ 사이에서 그가 그리는 그림은 ‘아무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는 밤’의 적요가 아니다. 오히려 ‘시베리아 같은 어둠의 설원’ 을 넘어 ‘부드러운 초원의 향기’ 와 ‘소복하게 눈 쌓인 향나무’ 의 설경이다. 모든 것이 고요하게 자리 잡은 한가정의 평화를 주전자 소리와 오버랩시키며 그가 궁극적으로 묘사하고자 한 것은 식구와 식솔이라는 이름의 성聖가족이다. 이 시의 제목도 ‘가족’이다. 박꽃 같은 여인과 성聖가족이라는 그림 위로 삶의 또 다른 무늬가 겹쳐지기도 한다. 때로 그것은 고난 주간의 일기를 닮았다.

 

 

살다보면 힘든 날이 어찌 없겠는가. 말 못할 시련 끝에 망망대해의 낙도 학교로 단신 부임하여 외로운 섬생활을 할 때 쓴 시편들은 가슴을 싸아 하게 한다. ‘서해바다로 120마일 수평선너머 대청도/ 삼각산 해발340m/ 영마루아래 사탄분교’ 를 비롯해 수많은 밤을 편지지에 묻고 울던 소야도의파도소리들….경기도 이천 율면초등학교 관사에서 6·25 전쟁고아원의 취침 트럼펫소리를 들을 때는 어린 날 부모 없이 남의 집에 얹혀 살던 서러움을 떠올리며 슬며시 손끝을 맞잡는다. 그렇게 혼자 견디는 아픔은 어느새 그리움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침몰하듯 시간은 영겁으로 흐르는데 그 때 거닐던 친구들이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들아 지금은 무얼 하나/ 저 애광원 언덕 트럼펫소리가 저 애광원 언덕 트럼펫소리가 아직도 젊은 가슴처럼 찬란한 고독이 되어 들려오는데…’ 참으로 힘이 들 때면‘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때로 앞산에 묘목심고 장독 옆에 분꽃 심으며 동구밖으로 손자 손녀 부르러 가는 즐거움으로 버틴다. 혹은 후련하게 마음껏 울어버리고 난 다음의 시간을 채울 수 없어 그렇기도 하다. 늘그막에 ‘이쯤서 망설이는 나약함을 탓하지 마오./ 울면서 웃으며 살아온 고독의 자화상을 아름다운 노을로 대신하리.’ 라고 노래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아내의 칠순을 맞은 날에는 ‘석순끝 한 방울 끝내 떨어져 동굴을 울리는 장중함의 사랑’ 을 노래하며 ‘수천 년의 맥을 이어온 당신’ 에게 지금까지와 같이 ‘항상 거기에 있어 달라’ 고 ‘항상 거기에서 웃어달라’ 고 ‘거기에서 영원히 살아 달라’ 고 기원한다.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투석을 위해 혈관이식수술을 미리 해두어야 한다는의사의 말을 듣고 난감했을 때도 그는 ‘가을 밤달, 밝아 귀뚤귀뚤 그소리 좋고’ 라며 초연히 견디다가 결국에는 ‘고요히 흐르는 달빛 적막의 깊은 숨소리 심금을 자아낸다./ 이유도 없이 살결 적시는 뜨거운 눈물 가을 어디쯤의 소리던가’ 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날마다 약을 먹는 모습을 보고서는 ‘아내여 먹어야할 음식을 삶에서 제하는구나/ 한알 알약 먹고 수선화로 아름답게 피어라’ 서 힘을 북돋우기도 한다.이렇게 순하고 어린 마음은 종교적 영성과 섬김, 헌신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리라. 가을과 관련한 시가 많은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성찰의 깊이를 더하는 가을시를 많이 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인의마음자세와 섬세한 영혼의 이 얼마나 성스러운지를 생각하면 추음秋音이 넘친다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가을을 당신 마음으로 느끼고 싶으면 아침 햇살에 산상의교회당 뜰을 거닐어라. 모두가 구도자가 될것이니’ ‘가을 산상의 뜰 아침에’ 중 시집 제목이기도한 ‘아름다운 사람이 사는 곳을 향하여’에서 그가 노래하는 것 역시 순하고 순한 섭리의 강물이다. 그 물결처럼 ‘슬픈 사람은 슬픈 마음이 있는 사람을 찾아’ 가고 ‘기원하는 사람은 기원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아’ 가고 ‘ 아름다운사람은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사람을 찾아’ 간다. 마지막 시에 나오는 다비다는 어떤가 성경속 ‘구제와 선행의 여인’ 다비다야말로 ‘사랑하는 님의 집으로 가는 영혼들의 예복을 짓는 ’ 이가 아닌가 ‘님을 향한 일편단심’ 이 ‘죽었다 살아나는/ 욥바사람들의 향기’ 를 피워 올리듯이 생의 가장 나중 시기에 ‘한 떨기꽃’ 을 피워올리는 부활의마음 그것이 바로 박꽃같은 여인을 위한 박꽃같은 여인에 의한 박꽃같은 여인의 성스러운 노래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첫사랑을 위한 연시이자 궁극의 한 사람을 위한 헌시다.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한 남자의 참회록이자 기도문이기도하다. 그 성스러운 기도앞에 공손히 두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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