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無聊)한 사람에게
최의상
호수 주위를 뱅뱅 도는 궤도차에
할 일 없이 앉아 물만 본다.
구름은 물감 없는 그림자
바람은 실체 없는 유령
물잠자리 한 마리 파랑을 던지고
부들이 잠시 흔들리다 멈춘다.
한 바퀴 두 바퀴 돌아갈 때 마다
튕겨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머리는 생각하면서 호수 중심으로
시선을 집중하며 기억에서 사라진
가장 희미한 그 때를 선명하게
나타나도록 조리개를 틀어댄다.
묻고 싶다.
그대들 나와 같은 변방의 무료함을
누구에게 말 전해 주었는가
오늘도 궤도차는 호수 주위를 돌고
구름과 바람과 물잠자리와 부들이
호수와 살며
할 일 없이 앉아 물만 바라보는 이를
위하여 유희하고 있다.
별 빛 아름다운 밤도 있음을 기억하라.
201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