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時調

[스크랩] 현대시조 모음

운산 최의상 2014. 6. 3. 16:42

 

현대시조 모음
                                
                                
● 시조산책.101 ㅡ 고정국의 마라도 노을

오늘 이 海域(해역)을
누가 혼자서 떠나는갑다

연일 凶漁(흉어)에 지친
마지막 투망을 남겨둔 채

섬보다 더 늙은 어부
질긴 심줄이 풀렸는갑다.

이윽고 섬을 가뒀던
수평선 태반 열어놓고

남단의 어족을 다스린
지느러미를 순순히 펴며

바다는 한 척 폐선을
하늘길로 띄우나니,

우리가 잔술 내리고
노을 앞에 이를 다물 때

水葬(수장)을 치러낸 바다가
무릎께 와 흐느끼고

까맣게 타버린 섬이
촛대 하나 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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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2 ㅡ 김영덕의 나무는

나무는
옹이조차
태연히 삭혀내고

곁눈질
한 번 없이
사시절 웃고 서서

나이테
속으로 쌓으며
넉넉하게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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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3 ㅡ 최언진의 감자

씨눈을 겨냥 당하고
온 몸을 토막 당하고
한 줌 재에 코를 박은
서러운 이승의 삶
등 너머
비알진 밭에
나의 꿈을 묻는다

실눈 비벼 뜨고
파랗게 올라온다
자주 꽃 곱게 피면
지난 날은 잊는 거다
맺힌 한
멍든 응어리
꽈리 불어 날리고

밸팔번뇌 잠재우다
별빛이 그리울 땐
갈라진 무덤 사이로
푸른 하는 보는 거다
탯줄엔
아들 딸 오손도손
영그는 행복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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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4 ㅡ 유해자의 벽송사 소나무

바람이 까치발로 지나가는 옛 절터
새로 짓는 법당 앞에 산 벚꽃 자지러져
합장한 적송 두 그루 앞이마가 후끈하다

제비꽃 돌배꽃이 피었다 지는 사이
망초대 키를 세웠다 제풀에 주저앉고
달빛에 솔잎 벼리어 새파랗게 날이 선다

허다한 생각들이 솔방울로 맺히는가
밤마다 굳은 각질 속살로 밀어내며
찐득한 기다림 안고 솔씨 하나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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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5 ㅡ 박봉주의 임종.1

오르다 힘겨우시면 버리고 오르소서
빈몸도 무거우시면 마음마저 비우소서
그것도 버거우시면 눈길만 들으소서.

눈길도 어려우시면 그냥 눈을 감으소서
꿈 속의 십리 산길 오르다 지치시면
산울림 고웁게 펴서 잠시 쉬어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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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6 ㅡ 심석정의 항아리

결 고운 황토흙에 정갈한 물을 붓고
그대 그리는 맘 둥글게 사려 담아
손금에 쌓인 세월도 무늬 새겨 넣습니다

무른 듯 설익은 나도 불가마에 던집니다
서서히 불이 달면 잿빛 어둠 엷어지고
단단히 옹근 매무새새 목숨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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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7 ㅡ 이정환의 圓(원)에 관하여 ㅡ 지게 작대기

세상을 가리키기에 너 만한 것 있으랴

세상을 떠받치기에 너 만한 것 있으랴

세상을 두드리기에 너 만한 것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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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8 ㅡ 원은희의 꽃들과 눈 맞추다

군락을 떠나서는

제 빛을 잃고 마는

사람보다 더 외로움 타는

들꽃과 눈 맞추며

근사한 연애나 할까

나무둥치에 세 들어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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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09 ㅡ 원용문의 번뇌

깍아도
깍아내도
턱수염처럼 돋아나는 것

화선지에
잘못 찍은
물감처럼 번지는 것

게다가
찐드기처럼
달라붙는 무뢰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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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조산책.110 ㅡ 박영식의 無(무)

내 존재의 첫 출발은 아주 미세한 물이었다
흘러 부딪쳐서 묘한 인연 만들었고
哭(곡)같은 생의 여로에 화음 몇 줄 보탰다

있음은 없음을 위한 회귀의 몸짓인 것
그 알몸 습한 일부는 바람에게 내어주고
빈 하늘 굴절된 시각은 무지개로 떳다가

생각도 꽃송이도 모두 지운 한 순간
꺼질 듯 다시 한 번 빛을 파닥이다가
하늘 天 따아 地 외우며 이르게 된 無極(무극)




출처 : 산문과시학
글쓴이 : 박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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