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해마다 유월이면
[중앙일보] 입력 2013.06.03 00:46 / 수정 2013.06.03 00:58
해마다 유월이면
- 최승자(1952~ )
당신 그늘 아래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내일 열겠다고, 내일 열릴 것이라고 하면서닫고,
또 닫고 또 닫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이 진행성 퇴화의 삶,
그 짬과 짬 사이에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 아래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리허설 없는 개막이었던
당신의 삶은 눈치 챘었겠지요?
내 삶이 관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오만과 교만의 리허설뿐이라는 것을.
오늘도 극장 문은 열리지 않았고저
혼자 숨어서 하는 리허설뿐이로군요.
그래도 다시 한 번 지켜봐주시겠어요?
(I go, I go, 나는 간다.
Ego, Ego, 나는 간다.)
오늘은 기쁜 날, 오늘 하루 찻값 공짜. 기왕에 맥주도 무료. 신문가판대가 텅 비었지만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늘에서는 빵과 담배가 빗줄기처럼 쏟아졌고 와이셔츠를 입은 사내들은 환희의 눈빛만으로 응원을 보내왔다.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앉아 내일을 생각하면 그뿐 사실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다만 6월 이후, 각자 어디서건 리허설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선거인단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꿈은 이루어진다고, 그 꿈을 펼칠 날 얼마 남지 않았다고 굳게 믿었을 뿐이다. 커브나 슬라이더보다는 ‘직접’을 신뢰했기에 묵직한 직구에 기대를 걸었다. 공을 놓친 것인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것인지, 당최 특기라고는 없었던, 그래서인지 ‘보통’임을 강조했고 그랬기에 삼진 아웃이 예상되었던 그 싱거운 대타는 미소를 지으며 1루로 걸어 나갔다. 게임은 이렇게 끝났지만 결과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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