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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유관순 시 사과문 실은 이유

운산 최의상 2013. 7. 13. 19:57

 

 

 

 

정호승 시인, 신문에 사과문 실은 이유는?

최종수정 2013.07.13 08:28기사입력 2013.07.13 08:00

유관순 열사 유족 항의하자 35년만에 정중히 사과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시인 정호승은 앞으로 발간되는 어떠한 시집에도 연작시 '柳寬順(유관순)'이 영구히 게재되지 않도록 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으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정호승(63) 시인이 신문 광고면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과의 대상이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유족이라는 것도 의아하지만 무엇보다 등단 40해를 넘긴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잘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지난 11일과 12일 일간지에 실린 사과문과 문학계에 따르면 정 시인은 1979년 발간한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창비)'에서 유관순 열사를 묘사하면서 '그리운 XXX' 등과 같은 비속어가 섞인 낱말을 사용했다.당시 이 시집에는 '柳寬順'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9편의 시가 실렸는데, 정 시인은 책 발문에 "어떤 연작시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 '柳寬順' 시편들이 정호승 시의 앞길을 스스로 밝혀놓은 것 같아 아주 큰 의미를 띠게 한다"고 자평하기도 했다.시는 무려 35년간 아무런 논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5월 한국시인협회가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 발간한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인물사(민음사)'에 다시 게재되면서 유관순 열사 유족들의 반발을 샀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한 순국선열을 노래하는데 있어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해 그 숭고한 뜻을 폄하했다는 이유에서다.시집 '사람'은 역사 속 주요 인물 112명을 문학으로 이해한다는 취지로 발간됐으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병철, 정주영 등 재벌을 과도하게 미화했다는 이유로 협회 내부의 반발을 사 초판 1000여부가 발간 즉시 회수됐다.유관순 열사의 유족인 김정애(78·조카며느리) 씨는 "이런 시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가 시인협회에서 보내온 시집을 보고서야 알았다"며 "많은 단어 중에 하필이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그런 말들을 사용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김씨는 또 "시인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는 하나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순국선열에게 죄를 짓는 마음이 들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사과를 요구했다"고 말했다.정 시인은 정중히 사과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살아온 대한민국의 시인으로서 석고대죄하며 참회하고 사죄드려야 마땅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이어 "이 사과문이 유관순 열사의 유족들과 여러 관련단체들, 그리고 순국선열들이 받은 명예훼손을 회복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다시 한번 머리 숙이고 엎드려 사과를 드린다"고 거듭 밝혔다.문단의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한 등단 시인은 "소녀에서 투사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선 열사의 독립정신을 격한 어조로 표현한 것인데 유족들이 시적 상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반면 다른 문학계 관계자는 "발상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유족 입장에서는 불쾌히 여길 수 있는 표현"이라며 "시인 스스로가 수위 높은 사과를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정 시인은 말을 아꼈다. 그는 "논란이 더 확대되지 않고 잘 마무리되길 바란다"고만 했다.

조인경 기자 ik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