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김 정 오 박사
문학 그 영원한 시대의 빛
문학이란 다면적이고 중축적이다. 그리고 불가해한 인간의 감성과 영혼이 얽혀 있는 정신세계이기도 하다. 문학의 언어는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고 환기시키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문학의 자리
문학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예술의 바탈이다. 그 호소력은 강렬한 여운으로 남아 읽는 이의 가슴에 녹아든다. 그래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글 한 편에 행복해 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인들은 바다로 나가는 항해사처럼 사명감을 갖어야한다. 문인은 사회와 함께 할 때 그 존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다면적이고 중축적이다. 그리고 불가해한 인간의 감성과 영혼이 얽혀 있는 정신세계이기도 하다. 문학의 언어는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고 환기시키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 전달이라면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새롭게 심어주는 것을 환기라 한다. 전달받는 이는 피동적이지만 환기를 받는 이는 능동적이 된다. 그러므로 문학에서의 언어는 목적이면서 출발이다. 넒은 의미로 내포의 언어들이 모인 일종의 건축물이다.
문인들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곧 말(言 : Words)을 해야 할 때(時間 : Time)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시기(機會 : Opportunity)를 놓치면 무의미 하게 된다. 한그루의 나무는 바람과 물을 한 몸에 담고 있다. 한편의 글에도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역사적 진실이 함께 해야 한다. 글 속에 있는 사회성과 역사성은 바로 그 시대의 고뇌와 애증이기 때문이다.
유영모의 제자 함석헌은 진정한 예술인들이 서야 할 자리에 대해서 “예술인들은 겨레(민중)가 힘들어 할 때 함께 발 벗고 나서야한다. 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것이 동정심(Sympathy)이다. 그것은 겨레(민중)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며, 우주정신의 바탈이며, 씨알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것 없이는 예술을 할 수 없다.” 고 했다
철학자 박재순은 그 말에 대해서 생명과 정신과 영혼의 주체는 곧 사회와 역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겨레(민중)의 자리라고 했다. 그것은 겨레(민중)를 외면한 인문학적 논의는 진정성을 잃은 것이며, 생명과 정신과 영혼의 주체를 생각하지 않는 예술은 공허한 장난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겨레(민중)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는 학사, 문사는 쓸모없다는 것이다. 예술과 문학의 바탕이 되는 상상력은 겨레(민중)와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 같이 아파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혼이 살아 있으면 함께 아파하며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과 영혼, 즉 주체와 전체가 살아서 통하지 않는 예술은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그의 시학에서 “시는 가장 위대한 인간의 영혼에 불을 지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라고 하였다. 또 시는 인생의 행복을 최고 목적으로 추구함으로써 가장 조화적이며 자연스러운 즐거움의 예술이라고 했다. 프로이드는 시인을 가리켜 “꿈을 꾸는 기묘한 사람” “고달픈 아름다움을 먹으면서, 찬란한 은실을 뽑아내기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내는 여정의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의 드킨스는 문학은 가르치는 것과 감동시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변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이 말은 문학이야 말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최상의 예술이라는 뜻이다. 감동이란 즐거움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이다. 카타르시스란 순화되고 정제된 순수한 것으로 갈등의 해소요, 욕구의 실현을 말한다.
박재천은 “좋은 시는 독자를 압도하기보다는 두근거리는 순간의 기쁨을 안겨준다”고 하면서 “그런 두근거림은 긴장일 수도 있고, 가벼운 탄성일 수도, 또. 놀람일 수도 있으며, 궁금함 그 자체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기에 좋은 문학은 깊고도 오묘한 의미를 내포하여 끊임없이 읽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읽는 이의 사랑과 아낌을 받으면서, 새로운 창조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주 오래된 고전들이 새로운 감동을 주면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글월은 자아 창조를 위한 영원한 기쁨을 주게 되며, 끝없이 아름다운 삶의 날개 속으로 깃들게 해 주는 것이다. 때문에 세계를 호령하던 제왕도, 억만 금을 가진 재벌도, 끝없이 높은 권좌에 앉아 있던 사람도 이 문학의 장엄하고 아름다움 앞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문학은 시대를 증언하고 시대와 함께 영원히 살아 있게 된다. 그런 문학을 시대적 상황과 함께 역사와 사상과 철학이 스며 있는 글월이라 한다. 그런 작품이 고전이 된다. 고전문학이란 시대를 초월해서 읽는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작품을 말한다. 넉넉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적 상황이 구체적으로 스며 있는 글월이다. 그런 글은 인간의 삶을 아름다운 언어 예술로 형상화 시킬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이 없이는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 시대정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살아남게 된다. 고전이란 적어도 백년이 넘은 작품일지라도 현대인의 의식 일부를 이루고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문학을 말한다. 독자들은 고전을 읽을 때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골동품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비추어 보는 반성의 거울로 활용한다. 현대문학도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며 또는 거울로서 우리의 삶이 생생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다음 후세까지 전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대문일 뿐이다. 고대문이란 옛날에 나온 모든 글월, 문헌까지를 총망라해서 하는 말이다.
문학의 뿌리와 그 평가
문학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고전과 고대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구와스탈라라는 학자는 “문학을 개인이 제약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하나의 몸짓으로서 나타내려고 하는 노력의 결과”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문학은 도시 국가라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처음으로 개인의 존재가 인정되는 순간부터 시작 된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리스 문명이 끝난 직후에 문학이 발생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G.미쇼는 개인이라고 말하지만 이 개인이라는 관념은 극히 근래에 와서 일어난 것으로서 이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리그베다’나 ‘시편’처럼 오랜 시대에 걸쳐 이어져오는 집단적 전통에서 비롯한 시를 문학에서 제외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원시 서사시라든지 민간 설화처럼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되기 이전 몇 천 년에 걸쳐 전승되어온 무형의 텍스트를 문학에서 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전달이라는 개념도 문학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하면서, 문학을 매우 넓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를테면 키케로의 서한이 그 한 예이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106-43B.C)’의 서한은 가장 아름다운 라틴어 문체로서, 후세에 르네상스 시대에 문장의 본보기로 아낌을 받았다. 그러나 원래는 특정인에게 보낸 단순한 사신(私信)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후세에 살아있는 증언으로서 보존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이 수집하던 순간에 문학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적인 전달이라고 생각했던 글도 버젓하게 문학으로서 대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 1830년대 어느 양복점의 지배인이 쓴 일기가 있다. 이 차분한 일기도, 다른 문서들과 함께 오랫동안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역사가가 그것을 찾아냈다. 그로 인하여 낭만주의 시대의 살아 있는 증언으로서 역사 연구의 진실규명에 한몫을 하면서부터 문학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또 파불의 곤충기도 그렇다. 파불은 곤충 학자로서 곤충들을 냉철하고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을 차분히 기록했다. 그것이 후세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훌륭한 고전문학의 반열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처럼 그 글을 쓸 때에는 본인도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 글이 나왔을 적에 아무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았던, 그러니까 문학으로서는 이미 생명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기회만 온다면 언제든지 문학으로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기록의 위대한 힘이다.
결국 문학도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태백의 봉황루 시는 만고의 절창이지만 김성탄이 그 첫 귀를 트집 잡았고, 수허지는 당시 무시되던 글이건만 성탄이 천하에서 가장 좋은 글이라고 했다. 미슐레(Jules Michelet, 1798∼1874)라는 프랑스의 역사학자가 옛 문서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의 인상을 쓴 글에서,
“나는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은 침묵 속에 감추어져 있는 이들 진열대에, 죽음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어떤 움직임 어떤 속삭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 놓여 져 있는 이들 파피루스와 양피지는 오랜 옛날부터 밝은 세상으로 부활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명이며, 산하(山河)의 생명이며 민중의 생명인 것이다. 편히 잠들어라. 주검인 그대들. 그러나 제발 순서만은 밟아주기 바란다. 순서만 밟아준다면 그대들은 모두 역사 위에 기록될 권리가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다만 그것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또 많은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서 문학으로서 선택되어야 한다. 이 선택에서 문학으로서의 화려한 무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것만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동의는 때로는 망각과 불공평과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 모든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역사와 함께 문학으로서 기록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운 작가 정신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시간을 뛰어 넘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다. 인간의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문학은 사라질 수 없으며, 문학의 중심부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품들은 확실히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G 미쇼는 “걸작이란 그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의 완벽함이 역사를 향하여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하나의 칭호”라고 했다. 그리고 결국 “명작이란 저 파르니스의 산과 같다. 그 산중턱은 인류라는 넓디넓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꼭대기는 보통사람들의 눈으로부터는 멀리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산에는 신들을 닮은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자들만이 가까이 갈 수 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겨레와 아픔을 나눈 저항문인들
겨레가 고통 받을 때 직접 역사의 주체가 되어 함께 아파하며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저항하면서 앞일을 꽤하는 사람도 있고, 적 앞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민족을 배신하는 사람도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선비들이던 곽재우, 고경명, 김천일 같은 이들은 의병장으로서 왜적들과 목숨을 바쳐 싸웠다. 1910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했을 때도 매천 황현은 고향 구례에서 겨레의 아픔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절명시 네 편을 남긴 후 음독자살하였다.
鳥獸哀鳴海岳嚬(조수애명해악빈)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槿花世界已沈淪(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秋燈掩卷懷千古(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매천집
위의 시는 절명 시 네 수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다. 나라를 잃었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변고이다. 이 엄청난 일 앞에서 새, 짐승 같은 미물도 슬피 울고, 산․강․바다조차 찡그린다고 하였다. 그러니 겨레의 고통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조차 갖지 못한 선비이며, 시인으로서 어려움을 자결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시에는 이렇듯 조선 문사의 꿋꿋한 기상과 정신이 들어있다.
그 후 일제에 의해 말할 수 없는 수난을 당하면서 상고사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일제는 우리 역사책 20만권을 불살라 버리고 사대주의 사상이 짙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만을 정사로 지정했다. 엄청난 역사왜곡이요, 친일 사관이다. 그들보다 두 배나 긴 우리의 역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천황귀일’ ‘팔굉일우’를 내세워 조선어와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국민총력 연맹과 황도학회, 조선임전보국단을 만들고, 내선일체를 강요하면서 징병과 학병으로 수많은 한국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또 ‘문장’지와 ‘인문평론’을 폐간하고,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사상범을 구속하고, 어용 조선 문인협회와 국민문학을 만들어 많은 문인들을 변절시켰다.
그러나 이때에도 신채호, 윤동주, 이육사, 이상화, 한용운, 염성섭, 김영랑, 심훈과 그 밖의 많은 문인과 학자들은 일제에 저항하면서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았다. 위선과 허구에 찬 사회를 준엄하고도 확고한 붓으로 질타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올바른 삶을 일관되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겨레의 생명과 영혼 안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아파하면서 혼이 살아 있는 저항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때 홍명희는 왕조 시절의 슬픈 역사적 사실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임꺽정’을 썼고, 심훈은 ‘그날이 오면’이라는 글로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고, 일제의 교활성을 상록수로 그려냈다. 또 염상섭은 일제에 억압받는 비참한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그의 ‘만세전’에 그려내면서 저항하였다.
그리고 정지용은 ‘향수’를 써서 겨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며, 이상화는 1926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에서 강력하게 반일 민족의식을 나타내는 기염을 토해 내고 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하는 서시를 썼던 윤동주 시인은 29세의 나이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가면서도 그는 당시의 시대상을 은유로 노래했었다. 그런 그의 아름다운 삶과 문학, 그리고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 보낼거냐’고 ‘떠나가는 배’에서 나라 없는 서러움을 탄식했던 박용철 시인의 문학이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면서,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 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껴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 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라는 글을 쓰면서 끝까지 저항했던 이육사의 인간과 문학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이육사는 20여 년 동안을 독립 투쟁을 하면서 감옥에만 17회를 갔었다. 그의 삶과 시는 한 묶음이었다. 오천 년 내 조국의 역사를 푸른 솔에 비유하면서 차라리 봄도 꽃피지 말라는 역설법으로 독립을 갈망하면서 고고한 기상과 뜨거운 민족정기로서, 광야에 새 역사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뜻으로 시 ‘광야’를 썼다.
광야
(전략)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러나 그는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옥사했다. 박두진은 “한민족이 겪은 일재의 학정과 압박을 고발하고, 증언한 문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러나 그 어느 역사서의 기록으로도 이 절정만큼 단적이고 진실하게 고발된 글을 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단 8행 4연의 서정시가 표출해 주는 절박한 민족적 현실과 정황은 다른 어떠한 산문 기록으로도 수만 수천어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오직 시만이 할 수 있는 압축성과 응결성, 그러한 감정적 진실과 표현의 진실을 획득하고 있다.”고 그의 ‘한국현대시론’에서 평하고 있다. 당시 수많은 문인들이 변절하여 친일문학으로 타락했거나 우리말 말살 정책으로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던 시절에 끝까지 민족적 신념을 지키며, 죽음을 무릅쓰고 일제에 저항하면서 썼던 이 글을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0년 1월 문장지에 발표했고, 이 글은 고인이 된 후 1946년 ‘육사시집’에 수록되었다. 또 1938년에 쓴 ‘계절의 오행(五行)’을 보면
정면으로 달려드는 표범을 겁내서는 한 발자국이라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내 길을 사랑할 뿐이오, 그렇소이다.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나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개를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金剛心)에서 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소.
이런 글을 썼던 그는 일재에 의한 어떠한 폭력과의 싸움에서 어떠한 희생이 따를지라도 오직 가는 길을 의연하게 가겠다는 물러설 수 없는 마음 다짐을 하고 있다. 그것을 평론가 권오만은 “적과의 불퇴전 대결에서 얻으리라고 본 것은 어떤 폭력으로도 꺾지 못할 그의 기개요 금강심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겨우 33편의 작품과 3편의 한시만을 남긴 이육사는 1927년 10월 처음 감옥살이를 시작으로 모두 17회의 감옥살이와 구금을 겪다가 해방을 불과 1년 남짓 앞둔 1944년 북경의 차디찬 감옥에서 삶을 마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크고도 무거운 사랑과 평가를 끝없이 받아오고 있다. 그리고 ‘님의 침묵’과 ‘알 수 없어요’를 노래한 한용운과 그의 시를 우러르고,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해외에서 우리 민족의 문학 활동
해외에서의 우리 민족 작가들의 활동 또한 눈부시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920년 상해를 거쳐 독일로 망명,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미륵은 1946년 ‘압록강은 흐른다(Der Yalu fließt)라는 자전 소설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구한말에서 일제 침략기에 이르는 19세기 초 한국의 모습을 어린이들의 눈을 통해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냈다. 이 책이 출간되자 당시 전후의 절망감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은 이상향을 회복시켜 주는 푸른 기적을 일으켰다고 열광했다. 심지어 어느 잡지사는 여론조사를 통해 올해 독일어로 발표된 가장 훌륭한 책은 이미륵이라는 한국인에 의해 씌어졌다고 칭송했다.
미국 하바드대학의 김은국 교수는 1964년에 6.25 전쟁의 상처를 그려낸 소설 순교자(The Martyred)를 출간하였다. 이 책이 나오자 미국 전역에서 20주 동안이나 날개 달린 책이 되어 팔려나갔다. 세계적인 대작가 ‘펄 벅’도 “하나의 사건을 소재로 신에 대한 인간다운 믿음의 보편성을 그려내고, 신앙을 찾는데서 비롯되는 의혹과 고뇌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김은국은 그 일을 해냈다고 극찬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도 그의 작품은 알베르 카뮈의 문학 세계가 보여준 도덕적, 심리적 전통과 맥을 같이하는 작품이라고 칭송하면서 도스프예스키의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호평을 했다. 1969년에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수상 후보 결선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또 일본에도 한국인 작가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작가만도 네 명이나 된다. 이 상은 1972년에 이회성 작가를 비롯하여 1989년 이양지, 1997년 유미리, 2000년 현월이 상을 받았다. 또 ‘GO’, ‘플라이 대디 플라이’ ‘영화처럼’의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도 재일교포 3세이다. 그들은 일본어를 모국어나 다름없이 쓰는 사람들이기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는 한국의 혼이 살아 있다. 또 재일본 한국인 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는 김이박 시인은 주로 한글로 글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위상과 자존심을 크게 높이고 있다.
또 중국에도 수많은 조선족들이 우리말과 중국어를 번갈아가며 글을 쓰고 있다 1983년 연변에서 ‘전국 우수 단편소설 상’에 림원춘의 단편소설 ‘몽당치마’가 당선되면서 조선족 문단의 활성화를 가져왔다.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은 657명이며, 그중 중국작가협회 회원이 56명,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이 2명이다. 또 심양의 조선족문인협회 회원이 80여명이다. 그 가운데 정판룡(평론가, 작고), 김관웅(평론가), 우상렬(평론가), 조성일(평론가), 권철(평론가), 김병민(평론가), 김학철(소설, 작고), 한석윤(아동문학가), 권춘철(심양문인협회 회장), 이문호(시인, 심양문인협회부회장), 김창영(시인), 림금산(시인), 문운룡(수필가), 김룡호(시인) 외 많은 문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연변문학동인회, 청년시회, 연변 5월시사, 중국조선족문화연구회,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연변단풍수필회, 연변시조시사, 연변녀류문인협회, 연변소설가학회, 연변시인협회, 중국조선족문학연구회, 연변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연변아동문학회, 료녕심양시 조선족문학회, 흑룡강성 조선족문학회, 연변 내 각 현시의 작가협회, 녕안, 해림, 상지 등지의 작가협회 등 수십 개의 문학단체가 활동을 하면서 문단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문학은 나라 안팎을 막론하고 각 시대와 그 지역이 다를지라도 그때마다 걸출한 문인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 예술혼을 더하여 역사와 문화 흔적의 기록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어는 아니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외국어로 한국인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낸 작품도 우리의 소중한 문학 유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곧 한국문학의 터전을 넓혀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강서문단의 해외 활동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캐나다에서 등 각국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있다.
문인의 길은 어렵다. 그러나 가야만 할 길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출신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75)’와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헤르타 뮐러(59)’가 만났다.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이란 처음부터 우리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대륙에서 일어났던 아픈 기억들. 살해·실종·고문이 광범위하게 자행됐던 남미 군부 독재시절의 기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그러면서 “역사는 늘 이런 불행한 일들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에 숨 쉴 수 있는 틈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학은 이 숨 막히는 세계 안에서의 최소한의 가능성”이라고 도 했다. 또 “신문과 TV 등 모든 매스미디어가 거짓 정보로 가득하던 군부독재 시절에도 문학은 현실을 증언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불행을 읽어가면서 그것을 향유하고 있다. 그런 것으로 인간이 위로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기 위한 문학적 활동은 필요하다. 작품을 읽은 이들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은 증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뮐러는 “문학은 불행을 말할 수밖에 없고 그 안에 불행이 반드시 있다”면서 동시에 “문학은 위로를 준다. 고통을 말하지만 위로도 덤으로 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은 가벼운 주머니로도 만날 수 있는 심리치료사”라는 자신만의 정의로 화답했다. 이렇게 두 문학의 거장은 진실에 접근하는 ‘증언의 문학’에 대해 뜻이 일치했다. 필자도 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문학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시만 갖고 못산다는 걸
잘 알지
허나 시 없이 못산다는 걸
너무 잘 알아
사람들은 무심히 병이라 하지
정신병인 줄 너무도 모르면서
조인선(1966∼)의 ‘자화상’
문학의 길은 어렵고 힘든 길이다. 그러나 문인은 이 길을 기꺼이 가고 있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문인이란 시대를 증언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밝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우리 문인들은 삶이 비록 힘들지라도 기꺼이 이 길을 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배가 바다로 나가듯이 말이다. 그러나 문인들이 모두 다 어렵고 힘들게 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문인들 가운데에서도 화려하게 시대의 조명을 받는 문인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지면 관계상 한사람만 조명한다.
연암과 다산의 문학정신
연암 박지원은 당시 유행하던 중국 고전 문체의 형식주의와 모방주의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의 문학정신을 밝혔다. “옛것을 본받고자 하는 이는 낡은 것에 매달리는 것이 흠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사람은 전통에 바탕을 두지 않는 것이 걱정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되 새롭게 변화 시킬 줄 알아야 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되 전통에 의거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문장은 구체적인 현실을 간결하고도 진실한 문체로 써야 한다고 했다. 이를 법고창신이라 했다. 법고이지변창신이능전(法古而知變創新而能典)의 줄임말이다. 즉 옛 글의 정신을 이어받되 그 겉모양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문학관이다. 그는 이를 실천하면서 새로운 한국문학의 전통을 세웠다. 즉 옛 성현의 가르침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여도 새로운 이론과 생각,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앎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다. 문장은 寫意(사의)에 그쳐야지, 망상이나 가식이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치열한 사실 위주의 문장론이 그것이다.
그는 참다운 문학은 화석화(化石化)되어 버린 옛말과 경험을 따르는데 있지 않고, 자신의 시대와 경험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모순된 사회를 고발, 비판하는 자기반성과 함께 그릇된 사회를 해학과 기지로 조롱하고 풍자하는 글을 썼다. 이런 글은 당시 봉건 사회가 무너져 가고 새로운 사회 질서가 싹트기 비롯하는 역사적 변혁의 시대에 서민들의 모순적인 삶을 뛰어난 문학적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하여 문학적 성과를 이룩했다.
또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不愛君憂國非詩也/ 나라를 걱정하지 않은 글은 글이 아니다
不傷時憤俗非詩也/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지 않는 글은 글이 아니다
非有美刺勤徵之羲非詩也/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는 글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다산은 글을 짓는 데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좋은 책을 두루 읽고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상을 가질 수 있으며, 마음에 여유와 안정을 가지고 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올바른 선비정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그래야만이 안개 낀 아침, 달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 날, 음조와 선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철학의 빈곤이 오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즐기는 기호(嗜好)만이 아니다. 스산한 누리(世上)에 파한(破閑)을 그리면서 하늘, 땅, 사람을 아우르며, 삶을 바르게 이끌어주면서 개운한 맛과 가멸찬 멋을 풍겨주는 언어 예술이다.
마음속에 핀 생명의 꽃 문학
프랑스의 문학사 연구가인 G, 미쇼(Guy Mich명)는 문학에 대해서 “언어를 사이에 두고 ,이웃에서 이웃으로 ,또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인간적 표현의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문학이란 인간의 가장 깊은 마음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꽃이기 때문이다. 후세까지 남을 수 있는 문학이란 이 생명의 꽃이 피어 있어야 한다. 그런 작품은 감동과 공감을 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새맑은 마음과 믿음직한 신뢰와 함께 깊은 예지까지를 심어 주게 된다. 그것은 생명의 빛이다. 오래 동안 읽혀지는 고전들이 그런 문학이다. 그런 글들은 정확한 고증과 체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까지 덧붙인 문체로 이루어진 글월들이다. 그런 글들은 삶의 진실을 함축된 언어로서 전해주는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기 내면의 세계를 전달해 주면서 읽는 이에게 영혼의 양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문학은 인간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해주며, 살고 싶은 의욕을 갖도록 해주는 ‘의미요법(logtheraphy)’이다. 의미요법이란 정신치료법을 처음으로 발표한 빅터 프랭클 박사의 이론이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알게 된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유태인이었던 빅터 푸랭클 박사는 나치수용소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였다. 장엄한 붉은 노을과 수용소 모퉁이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 그리고 동료들의 흥얼거리는 노래 소리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살아야겠다는 의욕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는 소년시절에 문학의 눈을 뜨게 해준 수필가 소청 조희관님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목포여자고등학교(당시 항도여고) 교장으로 재직할 때 동료들과 제자들은 물론 나처럼 어린 초등학생들에게까지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발밑에 한 치도 안 되는 작은 키지만 하늘을 보고 힘껏 피어 있는 한 잎의 들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한 송이 들꽃을 보라 /남을 시새워 하지도 아니하고 / 힘껏 제빛을 나타내나니”
라고 한 말이 그것이다.
아무도 보아 주는 사람 없어도 제 깐에는 온 힘을 다해 하늘을 보고 힘껏 피어 있는 꽃을 보고 감동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요법(logtheraphy)’이 깃들은 문학정신인 것이다. 그는 그의 수필에서 이렇게 썼다.
눈을 들어 궁창을 보라 저렇게 깊고 고요하고 큰 것을 땅위에 무성한 풀과 나무를 보라, 그렇게 아름답고 온전한 것을 -조물주는 내일 아침에 거미줄에 얽힐 나비 한 마리라고 해서 공력을 안 들여서 만든 것이 없으며, 이틀을 못 지나서 시들을 풀꽃 하나라고 해도 그 빛깔을 허수히 여기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에 까지 감동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 이것이 문학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작은 일에 핏대를 올리면서도 작은 것에 감동할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오래 전에 중국의 광활한 사막을 지나던 탐험가 ‘문그파크’의 이야기도 감동을 준다. 그는 오랫동안 풀 한 포기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밑에서 아주 작은 들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여 하나님이 여기 계십니다. 하고 대지에 엎드린 채 소리쳤다. 그는 일기장에다가
이 세계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다. 푸른 하늘과 빛나는 구름 넓은 바다 속에 하나님의 손이 보인다. 아이의 미소와 친구의 우정 아름다움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고 기록했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감동 받을 수 있는 마음이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것이 문학정신이다. 필자도 청소년 시절에 읽어 깊은 감동을 받은 책들이 있다. 김구의 백범일지, 홍명희의 임꺽정, 괴테의 젊은 베르트르의 슬픔, 죄와 벌 등과 심훈의 상록수는 물론 김소월, 정지용, 윤동주와 청록파들의 시들이 지금까지 가슴깊이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런 작은 감동들이 온 나라 백성들의 가슴에 출렁거린다면 세상은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시대의 등불과 거울로서의 문학
문학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끌어간다. 문학이 없다면 세상은 삭막강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을 사회의 등불과 거울로 비유하고 있다. 문학이란 결국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올바르게 비춰 주는 등불과 거울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시대와 그 환경의 현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그 시대의 정서를 문학으로 녹여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고요한 연못이거나 목가적인 나무 숲속의 호수만은 아니다. 때로는 그 속에 무서운 짐승이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엄청난 파도가 일렁이는 큰 바다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여러 모습들을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시대의 여러 모습들과 함께 감동적인 문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대를 올바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시공을 넘어서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훌륭한 작품으로서 읽는 이에게 새로운 진리를 알려 주고,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 평론가 김대행은 문학을 설명하면서 읽는 이나 쓰는 이나 “저 낮고 낮아 보이는 일상의 삶을 글로 체험하고, 그래서 알게 되고 알아서 길을 잡게 되는 것이 문학”이라고 했다. 그리고 문학이 아니고는 그 폭넓은 삶을 체험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고 19세기 영국의 빈민가의 그 험한 삶을 알 수 있고, 현진건의 ‘빈처’를 읽고 지금은 흘러 가버린 시대의 지식인의 삶이며, 그리고 지금도 도처에서 재연되는 부부생활의 한 단면을 알게 된다.”고 했다.
좋은 작품은 시공을 뛰어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터전이 얼마나 소중하고 영원한가를 보여준다. 천년이 지나도 한국의 대표적인 사랑문학으로 기록될 이 도령과 춘향의 사랑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주리엣’이나 ‘헴릿’ ‘오셀로’ 등의 작품들처럼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 날개 달린 듯이 팔리면서 물결처럼 출렁거리다가 시간과 함께 흘러 가버린 작품들도 있다. 이를테면 ‘마도의 향불’ ‘자유부인’ ‘벌래먹은 장미’ 등 예를 들면 한이 없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성이 깃든 본격 문학만이 진정한 작품인 것이다.
영국의 존 러스킨도 일찍이 그의 ‘작품의 최대의 수확’이라는 글 속에서 “시인이나 역사가를 막론하고, 위대한 인간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그들 작품의 최대의 수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단테’는 13세기의 이태리를, ‘초서’는 14세기의 미국을, ‘마삿초오’는 15세기의 ‘풀로렌스’를, ‘린토렛’은 16세기의 베니스를 그린 것이 그것이라고 하면서 결국 그들은 그 시대에 살면서 당시의 모습을 가장 생생한 모습으로 그려냈으며, 그것이야 말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훌륭한 문학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백제가요 ‘정읍사’라든지, 신라 향가의 ‘처용가’나 ‘찬기파랑가’ 고려시대의 ‘가시리’나 동동 쌍화점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이순신의 ‘난중일기’ 유성룡의 ‘아들들에게’라는 작품과 ‘옥연서당’에 붙이는 글들, 그리고 이율곡의 ‘풍악암자의 노승을 보내며’ ‘외 화석정’이나 ‘초당에서 자고’ ‘부벽루’ ‘연광정’이라든지 ‘고산구곡가’, 고산 윤선도의 ‘몽천요’와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그리고 정다산의 ‘목민심서’나 ‘흠흠신서’ 박연암의 ‘백영숙을 보내며’ ‘열하일기’ 등도 그렇다. 이들의 문장은 깔끔하고 아름답다. 귀하고 장엄한 사상이 담겨 있고, 인간의 의표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력은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모습들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려냈기에 우리는 그 시대를 감동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만고불변의 고전문학이고, 역사이고 사상서로서 후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의 글은 버림받는다
아무리 문장이 뛰어난 글월이라도 민족을 배신했다든지 독재자들을 찬미했던 글들은 역사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국인이면서도 수많은 백성들이 감옥에 가고, 전쟁터에 끌려가 죽어갈 때, 또 수많은 여성들이 정신대로 끌려가 짐승보다 더 못한 학대와 수모를 받으면서 농락당하고 부서지고 망가져 갈 때, 양지에서 일본 관리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천황을 찬양하고, 우리 청년들을 향해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천황을 위해 보람 있게 죽자’ ‘임전무퇴 공론무용’ 하면서 조국의 귀한 아들딸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몰아넣는 데 한 몫을 크게 했던 사람들, 그들의 글이 겉으로는 번드르르한 문장일지라도 어찌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면 1943년 10월 20일 학병출진의 근거 규정인 ‘육군 특별 지원병 임시채용규칙’이 공포되었다.
그 후 학병들이 첫 입영한 1944년 1월 20일까지는 불과 3개월간이었다. 이 기간 당시의 신문들과 잡지들은 ‘학병권유’를 외친 친일분자들의 글로 거의 도배질하였다. 특히 매일신보의 경우 당시 조간 4면, 석간 2면 대부분의 지면을 학병권유의 글로 채웠으며, 심지어 같은 날짜 지면에서 학병권유에 대한 사설, 연재물, 좌담회, 기고문 등이 겹겹으로 실려진 예도 있다.
또 광복 후 독재자들을 끝없이 찬양하는 글을 썼던 사람들, 그리고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반동으로 몰아 학살하고, 꽃같이 젊은 학생들을 고문으로 죽여가면서 총칼과 최루탄으로 통치하던 독재자들을 찬양하기에 바빴던 사람들의 글이 어쩌다 그 문장이 좋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세까지 존경 받고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 닥쳐올지라도 민족과 함께 삶과 죽음을 함께 했던 작가들과 그들의 글들은 후세까지 살아남아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될 것이다.
맺음말
평화로운 시대의 문학세계
우리는 지금 문학의 맑은 샘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역사 이후 가장 자유스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풍자시를 썼던 김지하는 언제인가 ‘생명 평화 민족 화해 평화 통일 지리산 평화 해결사’라는 모임의 좌담에서 ‘6월 지리산에서 평화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말하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그리고 인생을 이야기 할 때 너는 나이기도 하고 나는 너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뇌리 속에서 글쓰기 속에 나타나는 전쟁의 그림자를 털어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또 입으로 평화를 외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머릿속으로는 매순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라는 논리에서 벗어 나야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굳이 풍자문학으로 세상을 비웃거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을 풍자문학으로 나타 내지 않아도 좋을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김지하의 말대로 너와 내가 서로 하나가 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 아름다운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진정한 문학작품은 그 작품 속에 지은이의 성품과 인격이 함께 깃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작품을 쓰는 문인들은 그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이었으며 그들이 쓴 글은 나라의 운명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괴테는 유럽 변방의 언어였던 독일어를 세계어로 진입시켰으며, 볼테르나 루소는 프랑스에 민주화를 이루었다. 또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의 농노에게 자유를 찾게 했다. 그리고 미국의 스토우 부인은 엉클 톰스 캐빈(Uncle Tom's Cabin)을 통해 노예를 해방시킨 위업을 이루어 냈으며, 존스타인백은 분노의 포도를 통해 19세기 초 미국의 불황을 벗어 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중국의 작가 노신도 아큐 정전을 통해 절망에 빠진 중국을 구해냈다. 우리나라에도 두 동강 난 나라에서 전쟁의 폐허와 함께 자유당과 군사 독재 시절의 견디기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에도 자유를 갈망하고 창조를 위해 몸부림치는 예술인들 줄을 이어 태어났다. 그리고 걸출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남북분단의 비극으로 얼룩진 민족상잔의 상처를 다룬 조정래의 태백산맥, 민족의 서사를 그려낸 황석영의 장길산, 근세사의 아픔을 그려 낸 박경리의 토지, 토속어를 살려낸 이문구의 관촌수필, 전통 의식을 그려낸 최명희의 혼불 그리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라는 보통 사람들이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서 그 무의식의 의미를 가슴 치며 되묻게 하는 공지영의 도가니 등 불멸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밖에도 참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으나 지면관계로 다루지 못함이 아쉽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작가들의 인격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 속에 작가의 인격이 드러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록한다면 신문기사나 역사적 기술이 될 것이며, 또 보고에만 그친다면 보고문일 뿐이다. 후세까지 남는 작품을 쓸려면 지식과 함께 구체적인 정서까지도 작품 속에 어울려야 한다. 꿀벌이 꽃에서 얻어 오는 것은 꿀이 아니라 단물이다. 꿀벌은 이 단물을 가지고 와서 자기 몸에서 나오는 의산이라는 지방산을 섞어서 꿀을 만든다. 단물을 꿀로 바꾸는 것은 꿀벌의 특별한 인격이 가미된 것이다. 병든 꿀벌은 좋은 꿀을 만들 수 없다. 이처럼 문학에 있어서도 지은이의 인격이 훌륭할수록 명작이 창작되는 것이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것이 가시밭 엉겅퀴이거나 이름 모를 들풀이거나를 막론하고 장미꽃처럼 다루어야 한다. 그 가시나무에 찔려서 피가 나거나 아름다운 향내를 풍기거나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그 식물을 깊이 있고 분명하게 분석하고 관찰하는 철저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학에서도 삼라만상의 모든 줄기와 뿌리를 인간과 아름답게 연관시켜야한다. 그리고 과학과 철학과 역사가 깃든 깊이 있고, 차원 높고, 생명력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것이 곧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까지 충실히 감당해 가는 것이다. 거기에 저자의 인품과 인격과 능력이 반영되어 영원한 문학으로서 생명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다.
김정오 박사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1975년 윤재천‧조경희‧김효자 특별추천으로 수필가 등단, 94년 계간 문단, 문학평론 등단, 소청문학상 외 다수. 수필집 ’소부리의 대화들‘ ’ 빈 가슴을 적시는 단비처럼‘ 외 다수. 편저 ’세계 속의 한민족‘ ’일존 속의 한민족 역사 이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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