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상 2012년 서라벌문예 신인작품상 수상 시부문
아름다운 사람아 外 2편
운산/최의상
아름다움아
너는 어디에 있는가.
수억 년이 지나간 흔적에
그림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고
시가 있다.
모두 화석이 되어 있는데
너는 어디서 숨바꼭질 하는가
아름다움은 오로라처럼 신비롭다
하늘에는 비구상의 구름이 흐르고
땅에는 어디선가 바람이 운행하는
그 공간에 존재한 영원히 다다르지 못할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애원하고 있다.
선의 율동에 따라 화폭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선의 끝은 한 없이 어디론가 이동한다.
모든 시인들이 아름다움을 구가하다가
신기루에 홀려 못내 죽었다.
꽃, 새, 동물과 인간 그리고 자연을 영탄하면서도
아름다움의 영원성은 만나지 못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운 겉모습에 취하여
생명을 다 바쳤을 뿐
아름다움의 본성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미완성의 시를 남기고 갔다.
아름다움아
너를 찾아 헤매다 죽어간
저 화석의 잔해들에게
남길 언어는 무엇인가.
슬픈 사람은
슬픈 마음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기원하는 사람은
기원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아름다운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려고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야 한다.
진달래의 나르시즘
최의상
진달래 몸에
까칠한 수치심만 스믈거린다.
온 몸에 홍역 반점이 돋고,
마침내 스트레스는 연정으로 핀다.
죽는 날까지 나는 나를 버릴 수 없는
함정을 알면서 나의 봄을 기다린다.
운무(雲舞)
최의상
허공을 은반삼아 춤추며 눈이 온다.
서서히 춤추며 이야기를 나누는 눈도 있고,
천상의 비밀을 말하듯 교태스러운 눈도 있고,
단순히 미풍에 맡기고 여릿여릿 오는 눈도 있다.
다음에 이어서 오는 눈도 이 시간의 흐름 따라
빠르지도 않으며, 느리지도 않으며
바람이 부는 듯, 바람이 일렁이는 듯
억만 송이 눈꽃 축제가 내 눈(眼)으로 들어온다.
나목인 가로수, 빛 없는 조명등, 방향 없는 표지판들이
눈에 묻혀 조용히 잠들고
탐욕스런 도시가 소리 없는 눈의 무덤이 되어도
눈은 계속 오고 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정원의 정막은
죽은 영혼을 깨우는 숨소리가 되어야 한다.
봄이면 마른 잎 속에서 솟아나는 푸르름을 보듯
하얀 눈 속의 태동을 잊을 수는 없다.
하얀 눈은 계속 와야 한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때 까지
하얀 눈은 오고 또 오면서
붉은 피라도 하얗게 덮어 주어야한다.
서라벌문예 제21호 신인작품상 심사평 / 詩 부문
언어의 끝은 창조의 산물이다
심사평/ 박가을(시인. 문학평론가)
글의 형태에 있어서 운문과 산문으로 구분한다. 요즘은 운문의 형태가 산문 같이 현대적 시를 창조하기도 한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를 글로 표현하기에 작가마다의개성과 글의 길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 독창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처음 시를 접하는 신인에게는 서정시를 표본으로 권하고 싶다. 우리나라 언어인 한글의 위대성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존재 가치 뿐만 아니라 독창성에서 독보적이다.
한 사물을 보고 각자 느끼는 각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해서 외국시의 번역시가 우리 가슴에 감동을 주는어휘가 바로 한글에 대한 우수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을 쓰고 다듬는 작가로써 이러한 언어의 어휘에 농락당해서는 안된다. 절제된 표현과 간결한 문장의 연결이 곧 시가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적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춰야 한다. 장황한 설명은 독자에게 주는 감흥도 덜어질 것이며 글의 깊이 또한 반비례할 것이다.
주제에 부합된 문장의 흐름이 중요하다.
연과 연의 연결 고리는 전년에서 내포된 함축된 용어가 묻어 있어야 하며 이러한 표현 기법으로 창작에 임해야 한다.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에게 뜻도 모르는 단어를 읽히게 했다하면 그 아이는 성장하면서도 반복적인 그 단어를 활용할 것이다.
글을 창작하는 신인작가가 깊이 새겨야할 대목이다. 다른 시인의 글을 읽고 이에 준하는 문장을 완성했다면 이는 모작에 불과하다. 언어는 있는 그대로를 낱말로 문장을 만드는 과정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
최의상씨가 보내온 원고에서 각기 다른 색체의 글을 보았다. '아름다운 사람아'. '진달래 나르시즘'. '운무'로 선정했다. '아름다운 사람아'의 제목처럼아름다움의 외적 내적을 표현함에 있어 간결한 문장으로 창작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시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소리내어 읽어 내리는 연습도 중요하다.
'아름다운 사람아'- 감성을 풀어 놓은 詩語
가치에 대한 판단은 존엄성에 근간을 두고 있다. 가치의 척도를 어떻게 삼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아름다움의 추구는 영원하리라 생각이 된다.
"너를 찾아 헤매다 죽어간 저 화석의 잔해들에게 남길 언어는 무엇인가" 상상적인 존엄은 언어의 뜻, 즉 화석처럼 잔해가 남겨 놓은 시어의 무덤 뿐일게다.
책장에 숨겨 놓은 시어 토막은 죽음이 아닌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사람을 찾아서" 따라 가는 생명체이다. 행복의 척도와 슬픔의 질량은 그 크기와 부피가 다를지라도 "억 년이 지나간 흔적에 그림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고 시가 있다"라고 절규하는 시인의 가슴 속에 간직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 바로 감성을 풀어 놓은 詩(밭)田을 만들고 싶었으리라.
'진달래의 나르시즘'- 표정만으로 표현하는 감성
표정이 살아 있어야 한다. 시심이 발동하는 순간 감성에 의존해서 스케치하는 습관은 좋은 작품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는 습관, 세밀한 관찰력도 수작을 탄생시킨다. "온 몸에 홍역 반점이돋고, 마침내 스트래스는 연정으로 핀다." 홍역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온 몸에 빨갛게 피어난 열꽃을 연상하게 된다. 함축된 낱말이 달갑다.
주제가 '진달래'엿으므로 첫 연에서 진달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도 독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데 직설적인 표현이 아쉽다. 그 화려한 자태도 봄이 지나면 사라지는 슬픔을 경험하게 되는 세월의 철학적 표현이 다채롭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배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까칠한 수치심' 작가의 심성 또한 만년 소년으로 봐진다. 거친 표현답게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심이 곱다.
'운무(雲舞)'- 잔설에 덮인 수목처럼
내일을 위한 준비는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여유다. 자유라는 단어가 말해 주듯, 뜻을 스스로 해석하려는 태도는 시인들의 습성이다. 문제의 본체를 깊숙하게 직시하지 못하는 증거일 수 있다. 폐부를 깊숙하게 찌르는 에리한 칼날도 쓰지 못하면 녹이 쓸고 마는 법이다. 낱말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솜씨로 맛갈스럽게 시어를 다듬어야 한다.
'탐욕스런 도시가 소리 없는 눈의 무덤이 되어도' 가치의 판단은 인간의 탐욕에서 허실을 들어 내고 만다. 아스라이 쓸어져 가는 저 소리,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 옴은 죽음이라는 공통된 단어가 연무가 되어 세상을 덮는다. 작가의 가슴에 묻힌 고백이 탐스럽다. 인간의 본성, 즉 영혼을 깨우는 숨소리를 듣고 싶은 게다. 작가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푸르른 잎사귀를 떠올리게 된다.
'하얀 눈은 춤추며 계속 와야 한다.' 가시덤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얗게 녹아지는 순수한 열정이 글 속에 숨어 있다. 하얀 나래를 펼쳐 보며 쾌쾌묵은 시간을 내려 놓고 싶은 게다.
시어의 낱말에 녹아 있는 시심이 붉은 생명체가 되어 세상을 덮고 있다.
심사위원 : 박가을, 유희봉, 장건섭, 정영옥, 최기복
심사위원장 : 유희봉 (시인, 문학평론가, 경영학박사,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호서대학교 외래교수)
시 부문 당선소감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는가
최의상
고교를 졸업한 어느 날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 박목월역서를 손에 쥐고 읽었습니다. 나의 눈이 한 곳에 머물러 더는 읽어나가지 못하였습니다.
“ 만일 시를 쓰지 않고는 죽을 도리밖에 없을 만큼 (절실한가) 자백해 보십시오. ”
읽어 나가던 눈이 정지되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심장의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 까지 기다리며 정진해 보자고 다짐하였습니다. S예대 문창과를 나온 후 더욱 나의 소질은 시인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며 문학 방면을 외면하고 산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투고에 대한 유혹도 있었습니다. 소설가인 친구의 권유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시를 써야 할 절실함이 네 심장의 고동소리로 울려 네 귀로 들었는가.” 하는 질문이 던져지면서 갈등이 생기고 자신이 한심스러웠습니다. 서정성과 정형적인 시의 형식을 고집하면서도 안이한 이성적 접근으로 언어의 세련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내 자신의 시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실험정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주저하며 시인되기를 꺼려하였습니다.
이번 서라벌문예에서 시 부문 신인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면서도 반가웠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투고한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값진 등단이라 생각하고 이제부터 습작에서 시다운 시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전환기의 새 생활을 시작할 때라 생각 하였습니다. 영국시인 <세실 D 루이스>의 말처럼 시를 써내기 위해서는 가난도 절망도 세상의 냉담한 대우도 거짓의 칭찬도 아랑곳 하지 않고 꾹 참고 나가겠습니다.
서라벌문예 시 부문 신인 시인으로 당선할 수 있도록 좋으신 심사평과 심사를 해 주신 심사위원님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를 드리며 둔탁한 재질을 채찍질하여 계속 시 쓰기에 힘쓰려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7월 25일 운산 최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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