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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가마 길

운산 최의상 2012. 6. 20. 20:52

    꽃가마 길

 

 어릴 때 내가 사는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

저 산 넘어에 어느 누군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버스 구경은 가끔 하였으나 버스 한 번 타 본 적이 없는 나는

이웃 마을로 난 오솔길과 마차길만 보았고 걸어 다녔다.

그 길들은 이웃 마을에서 끝난다. 그래서 길은 끝이 있다고 생각했다.

 

6.25전쟁으로 피난을 가야 했다.

처음으로 고향을 등지고 길을 떠나 

높은 산 고개(진천 상백고개)길을 넘어

산 속 길을 걷다가 지방빨갱이를 만나기도 했다.  

들판을 걷고, 논길을 걷고, 마을을 지나 한가한 장터에 닿으니

여기가 천안 삼거리라고 한다. 정말로 세 갈래 길이 넓게 트였다.

 

또 걸었다. 길이 끝나는가 하면 또 다른 길로 가야 했다.

그 길이 어디서 끝날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옥천에서 군 의무병들과 같은 집에서 잠을 자게 되던 날

한 군인이 내일 이원역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여 처음으로

군 앰브런스를 타고 이원역까지 왔다. 자동차 길을 차를 타고

생전 처음 달렸다. 이원역에서 기름탱크 화물 기차 난간에 매달려

기차길을 달려갔다. 긴 굴을 통과하면 가관차에서 내뿜는 석탄연기로

숨을 쉴 수가 없으며 얼굴색이 검둥이가 되었다. 그런 기차길을 달렸다.

가끔 "그때 그 시절"에서 피난민 열차 사진이 나오면 내가 타고가던 그

기차라고 나는 단언하고 있다.

 

김천에서 하차를 하여 전라도 방향으로 피난하려고 하였으나

그곳이 벌써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팔공산을 넘어 낙동강에

이르러 배를 타고 도강했다 

 

전쟁으로 인하여 자동차 길도 달렸고 기차길도 다녔다.

뱃길도 달렸다..내가 아는 길이 점점 다양해지고

길은 끝이 없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서 터득하게 되었다.

 

 

 

1.4후퇴로 그 추운 겨울에 또 피난 길로 나섰다.

이번에는 보은 쪽으로 해서 팔공산에 이르렀다.

팔공산을 넘어가니 낙동강이 꽁꽁 얼었다

피난 행렬이 이쪽에서 강건너쪽까지 이어졌다

피난행렬 중에는 황소들도 섞여 있었다.

얼음 길을 걸어 갔다.

 

이제 길은 끝난 것이라 생각했다.

많은 세월이 흘러 퇴임을 하고 호주 여행을 위하여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무려 11시간의 비행기 길이었다.

  

마을길만 다니던 아이는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길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며 유년에서 노년에 이르렀다.

이제는 길은 비행기길로 끝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고 최동식교장선생님 빈소를 다녀 오면서

아직 새로운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천국으로 가는 꽃가마길이 있음을 알았다.

살아 있는 우리의 길이 비행기길로 끝나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꽃가마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비행기길에서 꽃가마길로 환승하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늘을 아름답게 살다가 꽃가마길로 환승하는 것이다.

 

                               ----  운산   최의상 ----

출처 : 본오초등학교20회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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