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이미지
운산/최의상
눈이 멎었다.
안방 작은 뒷문
살며시 열면
집 새들 포로롱 날아가고
장독 위 눈이
소리 없이 날리네.
눈이 몇 자나 쌓였나.
오늘 따라
봉분이 더 둥글다.
아버지의 아버지 바라보며
소리 없이 불러 본다.
아버지. 할아버지
큰어머니가 떠다 주시는
살얼음 동치미국물
마시고
호롱불에 코 속 끄리며
흰 눈 한 사발 퍼서
목마름을 해갈했지.
사십 가닥 전신주에서
찬 겨울 소리 들려도
동구 밖 최부자집
텃논에서
앉은뱅이 썰매 타는 소리
그 소리가 좋았지.
두터운 초가지붕 처마에
수정고드름 바라보며
프리즘색깔 속
공주님을 생각했었지.
공주님 구하러 가야한다고
다짐하면서,
한낮이 지났어도
발자국도 없는
신작로의 하얀 길이
천사의 전용도로처럼
신비로웠다.
신비로웠다.
생전처음
신작로에
버스가 개통하던 날
동네잔치를 했어요.
그 후 신작로에는
하루 두 번 바퀴자국이
한참은 생생히 남아 있었지요.
눈 오는 밤이면
사촌형들 따라다니며
국민 학교 향나무에서
참새도 잡고
이웃집 몰래 들러
씨암탉, 토끼 잡아먹고
“빌어먹을 놈들”
한 마디 말로 탕감되고
재미있다고 또 닭서리 하던
친구들
정말 빌어먹었어요.
200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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