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시집 『하동』 펴낸 이시영
짧은 산문처럼 리듬감 없는 구절들
“통념의 시를 거부하기 위해 쓴 것”
- 질의 :어떤 작품은 시가 아니라 짧은 산문 같다.
- 응답 :“짧은 행간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지.”
- 질의 :시 아닌 것처럼 쓰는 형식 실험인가.
- 응답 :“통념의 시를 거부하기 위해 쓴 시들이다, 말하자면.”
- 질의 :시는 무언가.
- 응답 :“시를 규정하는 순간 시는 사라진다.”
“김수영 시인의 시론으로 시 공부를 많이 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농부는 삽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거장 말라르메의 시론(詩論)처럼, 기량이 정점에 도달한 발레리나가 춤을 출 때 자신이 춤춘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듯 시인이 시 쓴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쓸 때 비로소 뛰어난 작품을 얻게 된다는 얘기였다. 과거 김종삼, 요즘 논란이 인 서정주, 살아 있는 시인으로는 고은의 몇몇 작품들이 그런 수준에 올랐다. 무심함의 강조는 이씨 표현으로는, 일부 요즘 시인들의 ‘시의식 과잉’인 작품들에 대한 경계와 반성이라는 의미도 있다.
다음은 시집을 감상할 차례. 시집에 실린 90편 가까운 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선시나 일본의 하이쿠 같은 느낌의 여백 많은 짧은 시와 과거 인생 체험에서 포착한 신문기사 같은 산문시.
‘오늘 하늘이 저처럼 깊은 것은/ 내 영혼도 한때는 저렇듯 푸르고 깊었다는 것’. 짧은 시 ‘하늘을 보다’는 좀 심심하다. 같은 짧은 시 가운데 ‘그네’ 같은 시에 눈길이 좀 더 머문다.
‘아파트의 낡은 계단과 계단 사이에 쳐진 거미줄 하나/ 외진 곳에서도 이어지는 누군가의 필생’.
이씨 세계의 진면목은 산문시인 것 같다.
‘1972년 겨울’ ‘학재 당숙모’ ‘전차’ ‘여수행’ 같은 시들이 그렇다. 기막힌 과거 우리 현대사, 인생의 서늘한 골목길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음이 움직인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다시는 관습적으로 ‘비슷한’ 시집을 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