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좋은 시(詩)

황송문 시인의 시 5편

운산 최의상 2017. 2. 3. 18:35



황송문 시인의 시 5편 문학(시 2 )

2007.07.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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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영혼의 깊은 곳 | 마경덕
원문 http://blog.naver.com/gulsame/50019211619
 
 
오늘의 시인
 
 

 

                              황송문(黃松文) 시인


1941년 전북 임실 오수 출생
전주대 국문과를 졸업
1971년 「문학」지에 시「피뢰침」이 당선돼 등단
시집 「목화의 계절」「메시아의 손」「조선소」「그리움이 살아서」「노을같이 바람같이」「꽃잎」「까치밥」「연변 백양나무」
소설 「사랑은 먼 내일」「달빛은 파도를 타고」
수필집「그리움의 잔 기다림의 잔」「사랑의 이름으로 바람의 이름으로」
논저「문장론」「문장강화」「수필작법」
선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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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클래식>님 블로그에서

 

시래기국 / 황송문 

              

고향 생각이 나면

시래기국을 찾는다.

 

해묵은 뚝배기에

듬성 듬성 떠있는

붉은 고추 푸른 고추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노을 같이 얼큰한

시래기국물 훌훌 마시면,

뚝배기에 서린 김은 한이 되어

향수 젖은 눈에 방울방울 맺힌다.

 

시래기국을 잘 끓여 주시던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시래기국을 끓이고 계실까.

 

새가 되어 날아간

내 딸아이는

할머니의 시래기국 맛을 보고 있을까.

 

고향 생각을 하다가

할머니와 딸아이가 보고 싶으면

시래기국집을 찾는다.

 

내가 마시는 시래기 국물은

실향의 눈물인가.

 

내 얼근한 눈물이 되어

한 서린 가슴, 빙벽을 타고

뚝배기 언저리에 방울방울 맺힌다

 

 

보리를 밟으면서 /황송문

 

보리를 밟으면서

언 뿌리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해동을 생각한다

 

얼마나 교육을 시켜 주었느냐고,

얼마나 유산을 남겨 주었느냐고,

시퍼런 눈 들이대는 것은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뿌리를 위하여 썪는 것처럼,

사랑할 수록 무능해 지는 것을  

나는 안다

 

내 아이들이 대어들 듯,

어릴 적 내가 대어들면

말을 못하시고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보리를 밟는다

 

잠든 어린 것 옆에

이불을 덮어 주며

눈을 감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동전 두 닢의 슬픔 / 황송문

 

비가 오고 있었다

 

하늘에도

땅에도

내 가슴에도

 

공중전화 상자 속에서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꽃다발 같은 기대를  한아름 안고

전선줄을 타고 달려간

동전 두 닢이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보일 듯이 보이지않는

안개 저 쪽은 통화 중이었다

 

수화기를 놓자

두 개의 동전이 굴러 떨어졌다

 

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

수화기를 들었다

척박한 동전을 일으켜 올리고

결사적으로 다이얼을 돌렷다

 

그러나, 그러나,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견고한 궁성 저쪽은

통화중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나의 동전이 또 굴러 떨어졌다

 

그러나,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가난이

언제까지나

공중전화 상자에 머물 수는 없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전진을 계속하다가도

틈틈이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나 학고다산 (八甲田山)에서 얼어죽은

나의 동전이여!

 

다방에서도 건널목에서도

정류소에서도, 지하도에서도

우체국에서도, 서점에서도

나의 동전 두 닢은 밀려났다

 

떨어진 동전을 움켜쥐고

바라보는 창으로

비가 오고 있었다

 

 

       사진 <네이버 포토앨범>

 

망향가1 / 황송문

 

어매여

남녘의 어매여

바느질 뜸이 곱고

송편을 잘 빚으시던 어매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볼라요

 

어매 가슴 찾아

진달래 걸러 마신 노을 같이

얼근한 들녘을 가면서

삐비라도 뽑아들고 피리를 불라요

 

뜬구름 세월

흰머리 날리며

논두렁 밭두렁 구비 구비

풀피리 불면서 찾아갈라요

 

닐릴리 닐릴리 풀피리 불면

미영 따던 할매도 나오시것제

하얀 조선무로

동치미 잘 담그시던

가르마 고운 할매!

 

남도 땅 차진 흙을 밟아 볼라요

개나리 울타리로 인정이 오가던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

품앗이하던 이웃이랑

정겨운 꽃이 되어

논배미에 밟혀 썩어지는

차진 거름이 될라요

 

내 피와 살이 녹아

못자리에 밟혀 썩어지는

꽃다운 자운영이 될라요

 

 

  사진 <윤주영> 사진가

 

망향가(望鄕歌) 2 / 황송문


어매여, 시골 울엄매여
어매 솜씨에 장맛이 달아
시래기국 잘도 끓여주던 어매여

 

어매 청춘 품앗이로 보낸 들녘
가르마 트인 논두렁길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동지섣달 팥죽을 먹다가
문득, 걸리던 어매여

새알심이 걸려 넘기지를 못하고
그리버 그리버, 울엄매 그리버서
빌딩 달 하염없이 바라보며
속울음 꺼익꺼익 울었지러!

 

앵두나무 우물가로 시집오던 울엄매!
새벽마다 맑은 물 길어와서는
정화수 축수축수 치성을 드리더니
동백기름에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은
뜬구름 세월에 파뿌리 되었지러!

 

아들이 유학을 간다고
송편을 쪄 가지고 달려오던 어매여!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에 월매나 시장허꼬?
비행기 속에서 먹어라, 잉!
점드락 갈라면 월매나 시장허꼬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야!

 

돌아서며 눈물을 감추시던 울엄매!
어매 뜨거운 심정(心情)이 살아
모성(母性)의 피되어 가슴 절절 흐르네

 

어매여 시골 울엄매여! 
어매 잠든 고향 땅을
내 늘그막엔 밟아 볼라요!

 

지나는 기러기도 부르던 어매처럼
나도 워리워리 목청껏 불러들여
인정(人情)이 넘치게 살아 볼라요!


자운영(紫雲英) 환장할 노을진 들녘을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밟아 볼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