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운산 최의상 2016. 12. 7. 12:10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 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읽고-

                                                                 최의상

이 시는 저항시다. 독재에 항거한 것이 아니고

시대에 저항한 것이라 본다. 시대가 독재를 만들고

독재를 하는 자들은 독재가 아니라 나라의 소명이라고

한다. 반면 다른 시각에서는 독재로 본다.

나라 잃었다 광복이 되고 정부 수립은 하였으나

문맹자가 90%이상인 신생국가에서 앞에서 끌어야 하는

시대이고 국민은 좋으나 나쁘나 끌려 가야 했다.

권력은 저항을 싫어한다. 문맹자가 줄어 드는 반면

저항세력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마찰은 당연히 발생한다.

권력은 저항을 인정하지 않는다. 권력을 깨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저항은 그것을 알면서도 저항한다.

그것이 저항의 속성이다. 계란을 수십 개, 수천 개, 수억 개

던지면 바위도 쪼개지는 날이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고 한다. 저 계란이 부서져

노란 피가 붉은 피가 되도록 부서지는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독재자가 미워서가 아니다. 독재의

속성을 깨자는 것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무엇을 썼는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생물과 같다

시대에 따라 민주주의도 발전한다.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하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립운동부터 시작하여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들의

권력은 항상 새로운 민주주의에게 저항을 받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 저항하여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새로운 민주주의가 자기들 구미에 맞는 민주주의가 올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2~3년이 지나면 또 실증이 날 것이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찾을 것이다.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 찾는 민주주의는

세상의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가아니라 이상향의 민주주의라고 본다.

그러기에 그는 현실에서

자기 이익을 구하고자 송장같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툭하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을 경멸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 아래에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소개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