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한국 문단의 현실-등단의 둘레-박현수 교수-

운산 최의상 2016. 9. 24. 12:10



한국 문단의 현실 - 등단의 둘레


2016.06.1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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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현실

#1. 한국문단사에 있어서 '한국시인협회'의 위상과 의의

#2. [나의 문학관] 한국문단의 현실과 신춘

#3. 한국 문단의 현실과 지방 문단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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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문단사에 있어서 '한국시인협회'의 위상과 의의

                                                                                                                                            박현수 교수



1. 한국시인협회 탄생의 간략한 요약1)

해방 이후 문단은 이전 카프 계열 문인들 중심으로 단체가 복잡하고도 다양하게 조직되었다. <조선문학건설본부>가 먼저 결성되고 이후 이에 반대하는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이후 하나의 조직, 즉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합쳐지면서 더욱 조직적인 문학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 두 단체가 생성ㆍ소멸하면서 수많은 산하조직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이 풍경에 대해서 우파 진영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

해방직후의 일이다. 8월 15일에 재빠르게도 종로 한청빌딩에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라는 간판이 나붙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각 부문별로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미술건설본부> <조선음악건설본부> 등등 7,8개의 산하 간판이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떻게 걸린 간판인지 아무도 몰랐다. 차차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것은 임화, 이원조, 김남천 등 몇 사람의 장난임을 알게 되었고, 또 공산당을 지지하는 노선인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창립협회니 무어니 하는 회의 한 번 안 열고, 자기네끼리 몇 사람이 내어 건 간판이 차차로 번성해 갔다.2)

몇 사람의 장난으로 치부하는 곽종원의 시선은 문인단체를 조직의 관점에서 볼 수 없는 우파 문인들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좌파 문인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몇 사람의 장난이 아니라 시국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를 치루는 세력으로 성장하자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우파 진영에서도 문인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전조선문필가협회>,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문학가협회> 등이다. 이 중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그리고 이것의 확대재편인 <한국문학가협회>는 이후 남한 문단의 성격을 결정짓는 순수문학론을 주요 이론으로 전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문단은 <한국문학가협회>에 의해 주도되었다. 예술원 선거를 계기로 문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여 문협에서 분리하여 <한국자유문학자협회>가 결성되었다. 이런 사분오열과 상위단체인 문총의 어용화에 반대하면서 <한국시인협회>가 독립적으로 결성되었다. 시인협회는 이전 단체들의 내분과 어용화에 반대하는 유치환, 조지훈 등의 비판정신을 견지한 시인들을 중심으로 모인 시인단체이다.

2. 한국시인협회의 문단사적 의미

한국시인협회의 역사가 1957년 창립 이후 지금 2007년까지 햇수로 50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해산, 재결성이 이루어진 2년을 뺀다면 48년의 세월을 지닌, 우리 문단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단체라 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녔다는 것 자체가 문단사의 중요한 사항으로 기록될 만하다. 본고에서는 창립 정신을 존중하여 창립을 전후한 초기 시협에 초점을 맞추어 문단사적 의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1) 최초의 시인 단체

시인협회는 우리 문단사 최초로 시인이 독자적으로 결성한 문인 단체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시협의 결성 취지의 첫 번째가 시인만의 단체 구성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시단체가 있어본 적이 없었으니, 이러한 시인의 모임을 우리는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기회에 시인의 단체를 만들면 시인만이라도 대동단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취지가 시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켜 단일문인조직으로 탄생하게 되었는 바, 초기의 이런 결집력과 공신력으로 인하여 이후 최고로 장수하는 문학단체가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협의 의의는 단순한 단일 장르의 단체라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상위조직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단일 장르 단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즉 상위 장르의 기구라 할 수 있는 문협이나 자유문협에 소속되지 않은 하위 장르 자체의 단체 결성이었다. 최초의 독립된 장르의 단체로서 시인협회의 위상은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다음과 같은 조연현의 회고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5ㆍ16 이전까지의 우리 문단은 <한국문협> <자유문협> <펜ㆍ클럽> <시인협회> 등 주로 네 갈래로 형성된 감이 없지 않았다. 물론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좀더 다양한 각종의 분파를 볼 수도 있지만, 큰 단체를 중심으로 볼 때는 그렇게 구분될 수도 있었다.3)

조연현이 파악한 당시 문단의 네 갈래 중 단일 장르의 문인들이 결성한 단체는 시인협회 하나밖에 없다. 소설, 희곡, 수필 등 기타 장르들이 많은 바 아니나 시 장르만이 이렇게 하나의 문단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시 장르에 대한 ‘문학 중의 문학’이라는 인식도 크게 좌우하였겠지만, 문학 활동이나 문단 활동에 있어서 중요 시인들이 문학사를 이끌어가는 중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시인협회는 결성 초기부터 시인들의 호응이 좋아 시협 결성 1년도 지나지 않은 1957년 12월 현재 회원 90명을 확보하였으니, 조지훈의 평가대로 “이는 실로 우리 시단의 거의 90%의 호응을 본 셈”이 되었다. 이런 호응도는 시협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표지가 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시인들의 내적 단결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이런 결속력에 힘입어 시인협회는 당시 문교부 행정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여 발표할 수 있었다. 앞에서 살펴 본 바처럼 상당히 강경하게 정부의 시책과 태생적 한계를 비판하는 성명서가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신문기사에 드러난 것처럼 당시 “120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단체였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2) 현실비판 정신의 보루

앞에서 살펴본 바처럼 한국시인협회는 당시 부패한 시대상에 대한 비판정신을 견지하며 비정치적 노선을 유지하였다. 기존의 단체들이 부정부패한 정권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어용화 논란에 빠져든 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시인협회는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하며 대사회적 비판정신을 늦추지 않았다. 이는 창립 당시 시인협회 임원의 구성과 그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간사: 유치환

사무간사: 조지훈

기획간사: 이한직

출판간사: 박목월

사업간사: 김경린

상임위원: 정한모(총무), 전봉건(기획), 김요섭(출판), 박태진(사업)4)


창립대회에서 선출된 대표간사 유치환이나 이후에 대표간사를 맡은 바 있는 조지훈은 특히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준열한 비판정신을 견지하며 시인협회를 이끌어온 시인들이었다. 이들을 구심점으로 하여 시인협회가 운영됨으로써 시인협회는 현실비판 정신의 보루 역할을 충실하게 하였다.

유치환은 1957년 창립에서부터 1960년까지 초기 시협의 대표간사 혹은 회장을 맡으면서 사회의 불의를 직시하며 비판적인 시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그는 그 전에도 비판적인 시를 발표하여 정부의 비판자로서 시대의 예언자 역할을 하였다. 가령 ‘제2대 국회의원입후보자 난립상을 보고’라는 부제가 붙은 「인민을 팔지 않은 자를」이라는 시가 그 예가 된다. 이는 1952년 한국전쟁 시기 부산에서 치루어진 국회의원 선거의 타락상을 통해 당대 정권의 부패와 부정을 고발한 작품이다.5)

자신이 시인협회 대표직을 맡고 있는 동안에도 유치환 시인은 비판적인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시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살펴보면 1958년 겨울에 발표한 다음과 같은 시가 대표적이다.


인간의 예지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존귀성이란 무엇인가?

윤리는 무엇이며 질서는 무엇이며

문화는 정치는, 국가는 다 무엇인가?

― 참 고운 깃발들이다

― 그 깃발들은 누가 들며 누굴 위해 있는 것인가

                     - 유치환, 「묻는다」 부분6)


윤리, 질서, 문화, 정치, 국가를 다루며 이것들이 부정적인 현실에서는 하나의 “고운 깃발”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하며 예의 현실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품이 1958년에 발표되면서 앞에서 살펴보았던 문교부와의 마찰이 표면화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 외에도 그 해 여러 편의 비판적인 시들이 발표되었다.

유치환은 1960년 4ㆍ19 직후까지 대표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1960년 5월 27일에 시인협회 임시총회에서 대표간사로 조지훈이 선임되면서 대표직을 그만 두게 된다. 그는 바로 직적에 문학사에 길이 남을 예언적인 작품을 발표한다. 즉 1960년 3월에 3.15 부정선거 직전에 선거의 부패상을 비판하는 유명한 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발표하는 것이다.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지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부분7)


4ㆍ19를 예언한 듯한 이 시에는 유치환이 지니고 있는 준열한 정신, 고고한 예언자적 자세가 잘 드러난다. 당시의 부정적 현실은 “거짓의 거리”로 명명되며, 이 속에서 인간들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자신의 곧은 자세를 견지하면서,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에 자신의 뜨거운 노래를 언 땅 속에 묻는다. 그러나 이 묻는 행위를 시로 다룸으로써 이 시는 묻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4ㆍ19 정신의 기준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조지훈 역시 올곧은 자세로 부정과 부패로 가득한 현실을 비판하였다. 그의 글 중 현실비판 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문장으로 평가받는 「지조론」이 발표된 것도 유치환의 현실비판적 시들이 발표되던 즈음이다.

신단재(申丹齋)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野黨)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어 있다.

                                                                                                 - 조지훈, 「지조론-변절자를 위하여」 부분8)



이 글은 조지훈이 1960년 3월에 발표한 글이다. 이승만 정권 말기에 부정부패로 가득한 현실을 보고 견디지 못하여 풀어낸 비분강개의 문장이다. 변절을 일삼으며 타락의 길로 뛰어드는 교활한 정치가들을 비판하며 지조라는 것이 지닌 시대적 가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유치환, 조지훈 외에도 비판의식을 담은 시와 산문이 이 당시에 여러 편 발표되었으며 이들은 시인협회 소속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4ㆍ19 기념시집이 시인협회에서 발간된 것은 문학사적으로나 문단사적으로 시인협회의 현실비판의식을 공포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시인협회는 이 시대의 양심 세력으로서 진리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있던 외로운 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3) 전후 시문학 자료의 축적

전후 시인협회가 문단사 혹은 문학사에 있어서 지니게 되는 의의 중의 하나는 많은 시문학자료를 하나로 모아 발간한 데 있다. 여기에서 주로 다루는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의 자료들은 당시 출판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들이 혼란한 시대상황에 의해 제대로 보관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문학잡지에 흩어져 있던 작품들이 시인협회의 앤솔로지를 통하여 수습되어 독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후일의 문학사료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9)


(1) 기관지 《현대시》발간

시인협회의 기관지 《현대시》는 전후의 최초의 시전문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훈은 후기에서 “그 동안 수많은 문학지가 나타나고 또 없어졌으나, 한 단체의 기관지로서 창간된 문학지는 역시 우리 《현대시》가 처음이다”10)고 하면서 그 의의를 부여한 바 있다. 연 1회 발간을 목표로 하였으나 2호까지 나오고 말았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기관지의 편집진은 다음과 같다.

발행인: 최영해

주간: 유치환

편집위원: 유치환, 서정주, 장만영, 조지훈, 박목월, 이한직, 김경린

편집: 전봉건11)


(2) 연간 앤솔러지 발간

시인협회에서는 연간시집 『시와 시론』을 발간하였다. 첫 번째 책은 1958년 5월 25일에 발행되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회원의 시 중에서 선정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였는 바 이 책에는 구자운의 「청포도」 등 시인 71명의 작품 92편이 실렸으며, 송욱의 「현대시의 반성」 등 4편의 시론이 수록되었다. 이 책의 간행사에 따르면 시인협회는 이 책을 해마다 발행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와 시론』은 앞으로 해마다 한 권씩 계속하여 간행될 것이니, 이 책은 『시와 시론』 제1집인 동시에 <한국시인협회>의 연례사업의 하나인 『한국시문학연감』 1958년판에 해당한다. 우리 시문학에 관한 문헌적 정리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이 이 연감을 편찬하는 근본이거니와…

제2집은 1959년 5월 30일에 발행되었다. 여기에는 시인의 이름에 따라 가나다 역순으로 작품이 실렸는데, 고 황석우의 「웃음에 잠긴 우주」, 황금찬의 「국한한 지역」 등 103편의 시와 평론 서정주의 「시의 내용이 되는 것들」, 박두진의 「1958년 시단총평」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1958년판 시집 시론 일람표」가 붙어 있는데, 여기에는 홍성문의 『꽃과 철조망』, 조병화의 『석아화』 등 총 21권의 시집과 시론집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이런 작품집은 간행사에 나온 바처럼 “우리 시문학에 관한 문헌적 정리”의 의미가 있다. 그 예로 제2집에는 김종삼의 어느 전집에도 실리지 않은 새로운 작품이 실려 있는데, 자료의 가치를 위해 여기 옮겨본다.


立地 같다.

금이 가 있던 현실에서 생긴 조각이 난 것들을 모아 놓고 그린다.

灼泉이 오래 가도록 어렵지 않게 겪으며는 차례로서는 어쩌다가 그림 하나 되었다는 奇蹟을 해설해야만 하는 地方이 된다.

지나가는 것을 하루에 달구지 하나쯤―.

                              - 김종삼, 「…하나쯤」 전문12)


현재까지 이 작품은 알려진 적이 없다. 이미 두 권의 김종삼 시전집이 발간되었지만 그 어디에도 이 작품은 실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출전이라 밝혀진 『문화시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앤솔러지는 이런 작품을 수록함으로써 문학사에서 사라질 작품을 보관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외에도 더 많은 미발굴 작품이 이 앤솔러지에 실려 있으리라 생각한다. 연구자나 해당 시인에 관심 있는 이라면 이런 앤솔러지에 주목하기 바란다.

제2집 이후 『시와 시론』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나 이와 유사한 앤솔로지는 1960년 12월에 다시 나온 바 있다. 『나의 시 나의 시론』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시와 시론이 각각 한 편씩 실려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는 15명의 시인이 참여하고 있는데 그 목차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고 원, 오늘은 멀고/ 시작 노우트에서

김경린,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서울/ 현대시의 제문제

김광림, 양지/ 주지적 서정시 소고

김원태, 허구의 층층계에서/ 나의 시 나의 시론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 나의 시 나의 시론

김현승, 나의 시 나의 시론

박두진, 오도(시와 시론)

박희진, 한편의 시가 써지기까지/ 한국어와 시인의 고충

신석정, 작은 짐승/ 나는 시를 이렇게 생각한다

유치환, 낮석점/ 수공업적 장인

장만영, 애수적인 미의 추구

장수철, 춘설/ 양수에 젖은 자화상

장 호, 채석장/ 시와 현실

정한모, 여장/ 현대시 노우트

조지훈, 시의 비밀13)


(3) 사월혁명 기념시집 발간

‘사월혁명희생학도추도시집’으로 간행된 『뿌린 피는 영원히』(1960)는 시인협회의 정신적 지향이 부정부패한 정권과 사회에 대한 올곧은 비판 정신의 확립에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내용에 대해서는 정한모의 기록이 있으므로 참고삼아 제시한다.

4ㆍ19 학생의거 1개월 뒤인 1960년 5월 19일 추도시집 『뿌린 피는 영원히』를 춘조사의 협조를 얻어 발행하고 그날 저녁 7시부터 3.1당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제1부 학생편으로 주문돈․김재원․정진규 등 각대학 시단을 대표한 학생들의 작품 22편과 제2부 조지훈․김수영․고원 등 17명의 시인들의 추도시로 장식되었다.

추도시집 발행에서도 장만영의 노고가 컸으며, 4․19 직후 3․1당에서의 추도낭독은 의의깊은 것이었으며, 시와 일반독자와의 거리가 이때만큼 가까웠던 일도 없을 것이다.14)

3.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까지 한국시인협회의 문단사적 위상과 의의를 살펴보았다. 창립 당시와 196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살펴볼 때, 시인협회는 몇 가지 점에서 문단사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 최초의 독립적인 시인단체라는 점, 둘째, 현실비판 정신의 보루였다는 점, 전후 시문학 자료를 축적하였다는 점이 그것이다.

창립 당시 시인협회는 단순한 친목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는 유치환, 조지훈 등이 보여주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올곧은 비판정신이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60년대 이후부터 2014년 지금까지 한국시인협회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창립 시기의 이런 정신을 잘 계승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런 성찰을 토대로 할 때 한국시인협회는 더욱 권위 있는 단체로 발전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단체이든지 창립 정신, 그 초심의 유지가 조직 성쇠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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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기존의 글을 본 잡지 기획특집의 취지에 맞게 재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2) 곽종원,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해방문학 20년』, 142쪽.

3) 조연현, 「개설」, 『해방문학 20년』, 24쪽.

4) 『동아일보』, 1957. 1. 27.

5) 오세영, 「실존 그리고 허무의 의지-유치환론」, 『한국현대시인연구?, 월인, 2003, 250쪽.

6) 『지성』, 1958. 동계호. 이 작품은 시집에 실릴 때 「네게 묻는다」로 제목이 바뀐다.

7) 『동아일보』, 1960. 3. 13.

8) 『새벽』, 1960. 3.

9) 자료를 구하지 못한 것이 많으므로 정한모의 다음 글을 참고로 하였다. 정한모,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편, 『해방문학20년』, 정음사, 1966.

10) 정한모, 위의 글, 154쪽.

11) 『동아일보』, 1957. 3. 29.

12) 시 말미에는 <文化時報, 9. 5>라는 출전이 밝혀져 있다.

13) 한국시인협회, 『나의 시 나의 시론』, 신흥출판사, 1965.

14) 정한모, 앞의 글, 155쪽.

박현수

1966년 경북 봉화 출생.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가 있다. 평론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다.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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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의 문학관] 한국문단의 현실과 신춘

                                                                                                                                                    이 재일

프랑스의 도발적 시인 "아서 랭보"가 상징주의 거장 폴.베를렌에게 "당신은 어떻게 詩를 쓰는지 알지만 나는 왜 쓰는지 안다"고 일갈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요컨대, 본질과 형식을 반사적으로 다룬 이 말에는 시를 쓰는 것은 형식, 즉 기술적인 어떤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곧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나 글을 씀에 문장의 유려함이나 어법보다 내용과 사상이 튼실하고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풀이가 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작금의 문단 현실은 너무나 쉽게 문인들을 양산하고 있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진정한 예술혼이나 문학관도 없이 글을 쓰는 문인들이 많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흔히 시인이나 작가를 일러 언어의 마법사니 연금술사라고 말하지만 문학은 미사려구로 독자들을 현혹하거나 기만하는 마법도 아니요 연금술처럼 언어를 기능적으로 다듬는 것 또한 아니다. 글은 글을 쓴 사람의 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쓴 글을 거의 수정하지 않는다. 물론,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다듬고 정리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그러다 보면 처음의 내 생각과 느낌외의 불순한 미화나 수사가 머리를 들기 때문에 본연의 순수한 문학과는 일정한 거리가 생기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문장을 다듬는 것보다 생각을 가다듬고 더 길고 깊이 하는 측이다.길을 걸으며 반짝 떠오른 시상을 놓치지 않고 핸펀 문자로 저장하거나 카페에 글을 올릴 때도 바로 글쓰기에 들어가는데 오,탈자 수정이 내 퇴고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래서 글을 굉장히 빨리,그리고 거침없이 쓴다는 주변 문인들의 말을 자주 듣는데,이것은 글쓰는 이의 취향이요 습관일 뿐,장,단점은 별도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작활동을 하면서 산고를 느낀다고 하는데 혼신을 다한다는 의미외에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모르는 소리일 지 모르지만 나는 글쓰기가 즐겁다. 글쓰는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 세사가 그러하듯 무엇이든 물흐르듯 자연스레 흘러야 무리가 없기 마련이다.

안 나오는데 쥐어 짠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가.이럴 때는 오히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여행을 떠나거나 창작에 도음이 되는 독서를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자연스레 물흐르듯 하지 않는 과정에 자꾸만 손길이 가게되고 나중에는 억지로 끼워 맞춘 어색한 글이 되는 되는 것 아닌가.

또 하나, 혹자는 문학이 우선 읽혀지기 위해서는 흥미를 유발해야하고 그 다음으로 교훈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견, 일리 있는말이다. 읽혀지지 않는 글은 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선 문학이란 적어도 어떤 정신문화를 선도하고 바람직한 가치의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흥미위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대체로 찬동한다.

그러나,해독이 불가능한 시가 시일까? 독자로부터 외면당하는 시와 글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논리의 적용 이전에 우리는 우선 독자와 작자간의 간극을 좁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 하여 나는 오래 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신춘에 시선을 맞추어 나의 문학관을 피력하고자 한다.


신춘시가 한국시를 망치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

좀 심한 소리지만 근거가 아주 없는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최근 4,5년 동안에 신춘에 뽑힌 시들을 보면 대개 비슷비슷해서, 포즈가 공연히 비장하고 내용이 모호하다.또 억지로 만든 자국이 역력하여, 이미지도 상징도 생경할 뿐더러 리듬감도 없어, 살아 있는 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산문형태의 시가 많대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하긴 내재율 따위는 말할것도 없고 콤마나 피어리어드를 무시하는 등 어법을 어김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유치한 시도도 신춘시에서 비롯된 대목이 없지 않다.

이런 시들을 선자들이 계속 뽑아 놓으니까 좋은 시의 전범처럼 되면서 , 신춘 응모시들이 이런 시 일색이 된다.나아가서 이것이 한국시가 독자로부터 멀어지는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2003 세계일보 신춘시 심사평 유종호,신경림>>


이상은 몇 해 전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을 가감없이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사실,이 지구상에서 신춘문예라는 애매한 제도를 채택하는 몇 안되는 나라에, 글줄이나 꿰는 문인들은 차치하고 ,작품을 선정하는 심사위원조차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먹겠다는 ,이 신춘의 흐름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모르긴 해도 아마 권위주의의 극치나 치열한 경경체제에서, 튀어야 산다는 강박과 보상심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사회적 큰 이슈가 된 사법판결문이나 판례가 그 좋은 보기가 될것이다. <아니한 것을 아니한다 아니할 수 없지 아니하므로 >라는 식의 부정과 부정의 중첩으로,쉽게 전달할수 있는 논지를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풀어냄으로써 억지가 되는 권위의 유치함이 그렇고, 정형,규격화된 입시나 각종 시험제도가 또한 그렇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시험이란 특목적성 때문에 떨어 뜨리려고만 하다보니 문제자체가 점점 모호해지고 수험생입장에서도 모호한 해답을 할 수 밖에 없다. 필요이상으로 시험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 극점에 달하면 선문답식의 질문과 해답이 오가는 것이다. 굳이 예술의 쟝르에 이르기까지 이런 규격,정형화된 수험의 성격이 필요한것일까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하며 가슴벅찬 감동을 안을수 있는 고고한 흐름이 아쉽다. 아무나 쉽게 따라부르고 울고 웃을 수 있으면 대중가요 ,어렵고 난해한 것만이 정통 클래식 이라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다.

푸쉬킨의 詩처럼 ,소월과 만해의 노래처럼,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언제나 가까이에서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주옥같은 문학은 떠나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허공을 떠돈다. 전체적인 흐름이 이러하니 모두들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다가도 도리없이 우르르 큰 흐름쪽으로 몰려 간다 .

에라 모르겠다. 나도 등단부터 하고 보자 하는 심리가 신춘심사평에서 지적한 바대로 개성도 예술혼도 없는,붕어빵 찍어내 듯 천편일률의 모양새가 되고 마는것이다.

등단을 하지 못하면 또 어떠랴. 입지나 활동공간은 협소하겠지만 민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향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술이 심사라는 도구를 통해 규격.정형.획일화 된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상품가치에 다름 아니다.

작자 자신만의 개성과 영혼의 울림과 목소리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풍토와 큰흐름이 못내 아쉽다.

문학공간 9월호

[출처] [나의 문학관] 한국문단의 현실과 신춘 |작성자 해월 정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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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문단의 현실과 지방 문단의 미래


사회 :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귀한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우리 문단은 넘치는 문예지의 지나친 난립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문단의 현실을 짚어보고 지방 문학의 미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한국 문단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탄없이 좋은 말씀들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구인환 : 지금 21C는 풍요속의 빈곤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인이 만 명이 넘게 배출되었고 문예지도 300가지 이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문체를 보면 빈곤감이 느껴집니다.


김종상 : 양적인 팽창에 비해 질적인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정확한 지적입니다. 문학단체나 문예지가 많은 것은 패거리를 만들어 세를 확장하려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조직을 가지고 행세도 하고 선거 같은 때에 자기 표를 과시하기 위해서지요. 그렇게 해서 단체장에 자기 사람을 앉히고 상왕 노릇을 하기도 해요. 이런 현실 때문에 문학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어나지만 작품의 질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옛말에 ‘닭이 천 마리면 봉이 하나 나온다.’ 했는데 지금은 작가가 늘어날수록 ‘비루먹은 ㅇㅇ같은 작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사명감을 갖고 좋은 작품 쓰기에 애써야 합니다. 감투나 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문단 정치꾼 패거리 속에 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동춘 : 네. 등단의 길도 많고 너무 쉽게 문인이란 간판을 주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고 쉽게 등단하고 보니 작품 쓰기도 소홀한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기왕 등단한 문인이 되면 사람다운 사람, 선비다운 선비정신으로 겸손하게 알찬 작품, 수준 높은 작품을 써야 든든한 문인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구인환 :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고 지금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삶의 지표를 제시할 수 있는 작품 활동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다작이 아닌 진정한 장인 정신을 가진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지난날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50년대(年代) 『자유부인』, 『60년대 광장』, 70년대 『별들의 고향』, 80년대 『인간시장』, 90년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000년대 『늑대의 유혹』 같은 작품이 안 나옵니다. 문인들의 심오한 작가정신의 깊이가 얕아지고 장인정신보다는 유희적 자세로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동춘 : 문단의 감투나 대학의 보직까지 거절하고 오직 선비정신의 인격과 학덕을 높이 쌓고 돌아가신 박두진 시인, 황순원 소설가 같은 선배 문인이 우리에게 모범을 보인 스승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문인들은 오늘의 문단 현실과 자신의 선비정신에 대해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정신이나 훌륭한 작품세계를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병무 : 문단이나 문학 인구는 대풍이지만 쓸모없는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감동을 줄 좋은 창작품을 보기가 힘들어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작가를 등단시킬 때는 그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검증하여서 내놓아야 합니다.


오동춘 : 문인이야말로 사회로 등불로 밝게 앞장서가는 정신적 지도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손끝으로 쓰거나 남의 글을 훔쳐 쓰는 비굴한 사이비 문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문인은 선비입니다. 먼저 선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시로써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잘 드러낸 정몽주, 성삼문 같은 시조시인의 선비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쉽게 문인이 되어 수준 이하의 작품을 쓰면서 감투에만 연연하고 문단의 선후배도 몰라보는 무질서한 풍토가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사회 : 지금 하신 말씀은 문인이면 누구나 가슴 깊이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구인환 : 한 가지만 더 추가하면 작가수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작가정신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기술만 있는 장인이 아닌 진정한 작가정신 말입니다.


사회 : 네. 문인이라면 꼭 진정한 작가정신과 선비정신을 갖추어야 되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문단 현실을 보면 대한민국은 모두 같은 문단인데 중앙 문단, 지방 문단으로 이분화 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있다고 으스대고 지방에 산다고 해서 움츠리는 일이 있다면 안 되겠지요. 중앙과 지방의 관계와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봤으면 합니다.


조병무 : 문학에서 지방과 중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리적으로 다를 뿐입니다.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작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질이 다르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현상도 다변화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방은 중앙과는 다른 생활환경이 있어 나름대로 특색 있는 작품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제 문학 역시 다변화해야 합니다.


김종상 : 말은 낳으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지만 문학 활동은 서울이 지방보다 유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아동문학을 보면 일직의 K, 천안의 S, 경주의 H 씨 등은 지방에만 살았지만 늘 빼어난 작품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히려 지방 작가는 작품에 몰두하는데, 중앙에서는 패거리를 만들어 대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가로서 순수성이나 정체성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 단체 사람끼리 책을 내고, 상을 주고받고, 저희끼리만 문학 잔치를 벌이니, 어디에나 끼어야 합니다. 그래서 문학단체끼리 소모적인 경쟁으로 갈등을 겪고 빈축을 사는 일이 많습니다. 문학상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어느 원로 시조시인은 그것은 수십 년 전부터 일반화된 상식적인 일인데 이제 그런 소리해서 누가 귀 기울이겠느냐고 했습니다.


구인환 : 문단의 인구가 적을 때는 없던 문제가 생겨난 거죠. 문인들이 글 쓰는 작업보다는 활동에 역점을 두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을 써서 발표하는 일도 문학상을 받는 것도 어디에 줄을 달고 끼어야만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동춘 : 서울과 지방은 행정적, 지리적으로 여건이 다른 점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서로 인정하고 열심히 해야죠.


조병무 : 문학작품 자체보다는 문단 규합 세력의 횡포 탓입니다. 아무래도 중앙 문단이 그런 일을 하기에는 여건이 좋기 때문이겠죠. 중앙에서 나오는 잡지에 등단해야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중앙에서 나오는 문학잡지나 등단제도가 다분히 개인적인 것이 너무도 많은 현실입니다.


김종상 : 지방 작가들은 중앙에서 세력이 있는 문학단체 쪽에 줄을 서야 상도 받고 명함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사실이 그렇기도 해요. 매년 문학상을 받은 작품집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보면 작품으로 상을 받았는지 줄을 잘 서서 받았는지를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이런 재미로 중앙의 몇몇 정치적인 원로들은 자기 세력의 확장을 위해 기존의 단체가 있는 지역이나 지방에까지 자기 사람을 내세워서 새로운 문학단체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문단 화합을 내세우며 같은 지역의 작가끼리 서로 비방하고 반목하여 지역 주민의 빈축을 사게 한 예도 있어요. 그래서 문어발 같은 마수를 여러 문학단체로 뻗쳐서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요.


오동춘 : 김종상 선생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문인들은 그러한 사례를 듣고 보고 있습니다. 지역이나 지방 문학단체의 분열에는 힘 있는 중앙 문인의 입김이 작용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서울 중앙 문단이 문화 여건도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에서 어떤 조건을 내세우면 거기에 따라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첨단의 과학시대로 신문, 방송, 잡지, 영화 등의 대중매체가 눈부시게 발전해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서 중앙, 지방, 구별 없이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부심과 선비정신으로 알곡의 글만 잘 창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자신의 개인 작업이므로 뼈를 깎는 노력과 아픔을 통해 불굴의 명작을 창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리라 기대해봅니다.


사회 : 앞에서도 부분적으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바로 말하면 한국문협에서 각 지역 지회를 만들려 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잘 하고 있는 기존의 단체가 있는 지역에 또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서 지역 작가끼리 서로 분열하고 반목하게 만드는 데 문단 화합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김종상 : 현재 문학단체로서 사단법인체는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세계문인협회 세 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어느 단체는 지방지부까지 없애서 전국을 하나로 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념이 다르면 같은 지역에서도 문학단체를 따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가 혹시라도 자기 세력을 확장해서 대접받고 군림하고, 문학단체장 선거 때 자기 표 확보하고, 책장사하고, 상 팔아먹고, 무슨 접대를 생각해서라면 이건 문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지탄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문단 풍토가 이러니 어느 군소 문학단체는 자기 사람이 단 한 명 있는 지방에도 그 사람에게 지부장, 지회장 하는 감투를 주고 명함을 찍어 돌리게 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건전하지 못한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단체일수록 중앙의 회원들은 모두가 무슨 위원장, 무슨 부장, 전문위원 해서 ‘전군의 간부화’가 되어 있고 회장은 종신회장입니다. 문학상도 열 손가락을 꼽을 만큼 많이 만들어서 나눠주고 있는데 종이 상장 하나만 주고 오히려 단체의 발전기금을 받기도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문학단체의 난립이 그런 목적을 깔고 있지 않길 바랍니다.


조병무 : 또한 문학단체의 회장 자리를 놓고 싸움이 많은데 지방에서 특히 심합니다. 그런 회장 자리는 누구든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역의 문인이 모두 모여 전원의 생각을 듣고 전원이 직접 투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구인환 : 맞습니다. 작가수업을 통해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인간성을 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회장을 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덕망 있는 사람이 회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는 이유는 자기 사람을 많이 만들어서 그것을 선거 때 표로 이용하는 게 문제이지요. 그런 꾼들이 우리 문단에 있습니다. 작가정신을 갖고 과거를 지키고 오늘을 직시하며 미래를 간지하는 문인이 된다면 이런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런데 이런 꾼들 때문에 서로 화합을 시키는 게 아니라 싸움을 붙이는 경우가 더 많아 안타깝습니다.


오동춘 : 지방은 문학 인구가 중앙보다 적다는 것이 행사나 운영에 문제가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지방에서도 알찬 문화행사를 하면 서울에서도 많이 내려갑니다. 지방으로 문학기행도 많이 갑니다. 김영랑을 만나기 위해 강진을 가고 김유정을 만나러 춘천을 갑니다. 박경리를 보러 하동을 갑니다. 문학 활동에는 중앙, 지방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김종상 : 그렇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만, 어느 곳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을 말해서 미안합니다만 제가 쓴 동시로 교과서에 실린 「짐수레」, 「아기잠」, 「어머니」 등은 모두 시골에 있을 때 썼습니다. 문학은 자기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서정의 꽃이지, 지역이 가꾸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또 문학은 사람의 꿈을 나르는 날개가 달려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쓰든 훌륭한 작품은 좋은 향기로 모든 사람의 가슴에 가서 닿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지구마을 인간가족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지금은 중앙과 지역이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최근에 어느 지방 작가가 자기는 작품도 좋고 중앙 문단에서도 공이 인정될 만큼 활동을 했는데 단지 지방의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상 하나 받지 못했으니, 상을 받게 해달라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조병무 : 저 역시 지방에서 활동했습니다. 어느 단체든 권력을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지방이고 중앙이고 관계없이 문학의 정통성이나 순수성은 깨지고 맙니다. 문단활동은 친선을 도모하고 좋은 글을 함께 나누는 단체이지 작당을 하여 세력다툼이나 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런 일이 있어서 문제인 것이지요.


사회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으로 문단의 윤리와 앞서 얘기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인환 : 중앙, 지방 모두의 문제입니다. 문인이 문인다워야 합니다. 문인들이 문학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오로지 문인다운 자세로 글을 쓰는데 전력해야 합니다. 그것 외에는 어느 방법도 없습니다. 또 위계질서 같은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즘 문인의 서열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문단에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김종상 : 작가라면 어느 분야보다도 작가적인 윤리를 지키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구 교수님 말씀대로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무시되고 있습니

다. 글이 뜨면 원로작가도 무시하는 무례한 작가도 있습니다. 또 단체의 세력 확장과 단체가 발행하는 기관지(책) 장사를 위해 매호마다 신인들을 제빵기로 국화빵 찍어내듯이 양산하고 보니, 그 신인들은 자기를 작가로 만들어준 단체장의 글이나 자기가 등단한 잡지나 사서 읽을 뿐 다른 선배들의 좋은 작품을 읽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선배도 모르고 좋은 작품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도 좋은 작품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오동춘 : 네. 그렇습니다. 선배는 후배를 사랑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배문인들은 후배문인이 배우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또 신인은 신인다운 순수와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구인환 :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방에서 작가들을 브랜드화 하는 곳이 많은데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인다운 문인입니다. 중앙 문단에서는 지방 문단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지방 문단을 지배하려 들면 안 됩니다. 한국문협에서는 왜 지부를 많이 만들려고 하는가? 결국은 통제입니다. 모든 문인을 한 손아귀에 움켜잡자는 것입니다. 문학인 개인이나 각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김종상 : 중앙의 단체가 지방에 지부를 늘리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가 회장이 못 되니까 새 단체를 만든 작가도 있고 문학단체를 밥벌이의 수단으

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단체가 자꾸 늘어납니다. 문인들은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정신적 해탈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맑은 글, 아름다운 글이 나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단체를 만들기보다는 나누어진 단체들도 서로 하나로 통합해야 합니다. 저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이 되었을 때 분파되어 있는 세 개의 아동문학 단체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명분이 뚜렷하니까 모두 찬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한 단체의 장이 자기 단체는 통합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작품을 잘 써서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쓴 노랫말이 히트해서 행세를 하는 그 단체의 회장은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그 단체의 양식 있는 몇 분만 통합에 합류했습니다. 그때 통합된 단체가 현재의 한국 아동문학인협회입니다.


오동춘 : 중앙 문단이나 지방 문단이 조그마한 이해관계나 조직의 감투 때문에 갈등을 빚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펜클럽한국본부나 한국문인협회에서 정치성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중앙이나 지방 문단이 잘 발전해가도록 해야 합니다. 문인은 글로써 자기 평가를 받게 해야 하며 바람직한 문단 풍토로서는 선후배가 하나 되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화합의 선비사회, 사회가 바라보는 등불 같은 존재로 크게 인정받는 문인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밝고 미래가 크게 보이는 희망의 한국 문단을 만들어 갑시다.


사회 : 네. 오늘 나오셔서 좋은 말씀들을 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 문단이 더욱 건강해지고 아름답고 좋은 글들이 별처럼 쏟아지길 바라면서 오늘의 좌담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 강서문학 좌담회

때 : 2008년 11월 10일(월) 오후3시

곳 : 강서문화원

참석자(가나다순)

구인환(소설가․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김종상(아동문학가․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오동춘(시조시인․전 연세대 사회교육원 교수)

조병무(평론가․전 동덕여대 교수)

사회 : 김성렬(수필가․강서문협 회장)

기록 : 김명희(수필가․강서문협 수필분과위원장)

사진 : 이경자(수필가․강서문협 사무국장)

[《강서문학》제15호 수록]

[출처] 한국 문단의 현실|작성자 해월 정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