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뚜르게네프의[첫사랑]을 읽고

운산 최의상 2015. 12. 16. 12:41
     
 
      
         
[[마음의 여백]] 뚜루게네프의 첫사랑| 談우리들의 이야기談





요 얼마 전에 두 아이들에게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어준 적이 있었다.


그작품.. 나는 중학교땐가 읽었는데
별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 읽어주다보니 꽤 '아픈' 작품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블라디미르는 열여섯 살의 내성적인

소년. 아버지는 젊고 스마트한 미남으로,
어머니보다 열살 연하인데 사실 아버지는
사랑보다도 순전히 어머니의 재산 때문에
결혼한 케이스였다.


어머니는 질투심이 많고 성질이 불같은
여자였지만 엄하고 냉랭한 아버지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모스크바 시내에 살던 그들이 근교의
별장으로 이사를 간뒤 바로 옆집에
가난뱅이 공작집이 이사를 온다. 그리고
나는 그집 딸 '지나이다'를 열렬히 사모한다.


사교모임을 통해 나는 지나이다를 사귀게
되었고, 그무렵의 어느날 저녁 산책길에
지나이다를 만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중
아버지를 만나 이들 셋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름답고 총명하고 귀족적인 품위까지 지닌
지나이다. 냉랭하리만큼 차갑고 자존심 강한
그녀에게는 늘 그녀를 흠모하고 숭배하는
대여섯 명의 숭배자들이 목숨이라도 바칠 듯한
자세와 각오로 그녀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


그 무렵에 나는 그녀가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음을
눈치챈다. 왜냐하면 그늘을 드리운 채 사색에
잠겨있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단편적인 행동들이 짝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는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내게 달려들어 내 머리통을
부여잡고 별안간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잡더니
그걸 뽑아낸다. 그리고는 소중하게 모아쥐고는
손가락에 감은 뒤 로켓(사진담는 목걸이)에
넣어서 늘 몸에 지니고 있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의 눈은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물 때문에..

사실 이 대목, 그녀가 블라디미르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뽑아서 로켓에 넣어가지고 다니겠다고
했을때 나는 우리 애들이 그녀의 심리적 정황을
눈치챌 줄 알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책을 읽은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애들이
아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고 웃으면서 사실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는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몰라서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단다. (귀여운 녀석들..)


내가 그토록 고통스럽게 사랑하는 여자가
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리고 (바람둥이인) 아버지 또한 한때 그냥
스쳐가는 사랑이 아니라 그녀를 진정으로
아프게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충격과 함께 절망에 빠져든다.



또한 그토록 스마트하고 감정의 절제력이

뛰어난 내 아버지가 그녀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았을 때..



채찍을 맞으며 울고 있어야 할 그녀는

희열에 들떠 있는 듯 보이고, 채찍을

휘두르는 아버지 쪽이 오히려 입술을

앙다문 채로 울고 있는 것 같은 기이하고도

불가해한 장면을 우연히 엿보았을 때..


(아, 이것만으로도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충분히 아프다.)


그때 주인공은 이런 생각을 한다.


<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안 사실은 도저히 내 힘에 닿지 않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끝났다. 내 마음의 꽃들은 한순간에
남김없이 꺾여 내 주위에 던져지고 짓밟혔다.>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나서 결국 그들은 이사를
하게되고 그녀와는 멀어진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른 뒤의 어느날
아버지는 한 통의 편지를 받은뒤 너무도
고통스러워 하다가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애걸한다.



아마도 편지는 지나이다가 가난 때문에 절망에

빠져 있다는 내용일 테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부쳐줄 돈을 좀 달라고 어머니에게 애원을

했겠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으며, 그로부터

사흘 뒤 아버지는 뇌출혈로 사망한다.



*


나이 들어 읽는 명작은 확실히 사춘기때와는

또 다르다. 이 작품을 읽은 뒤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나에게도 첫사랑이 있었던가?
그게 언제지? 대상은 누구였을까? 로 시작하여


사랑? 대관절 사랑이 뭐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흔히 사춘기 때에 되씹던) 그 의문이었다.


*


그 며칠 뒤에 에스를 만났다. 그날 에스는
전철역에서 버스를 잘못 타서 한시간 반동안
엉뚱한 동네를 헤맸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중엔 버스를 잘못 탔음을 알았지만
내리기가 싫어서 그냥 계속 앉아 있었노라고 했다.


크크, 어쩌란 말이냐, 대책없는 짓.. 사실 나도 간혹
저지르곤 한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이다.
잘못 탄 줄 뻔히 알면서도 내리기 싫어 무작정
버티고 앉아 계속 흘러가는 버스 노선에 몸을
맡기는 것. 그리고.. 집나와 이리저리 발길 닿는대로
그냥 가보는 것, 이렇게 계속 가면 어디가 나올까.


<판문점>이다. 나는 그저 우스갯소리처럼
막판에 이르러서는 판문점이 나온다고 말한다.


사랑이 뭘까. 결국은 그 당시의 가장 절박한 정서가
아니었을까. 뚜르게네프가 이 소설을 썼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역시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나이다나 내 아버지 그들 모두에게
사랑은 <판문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마음 속에서 끝까지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지나이다가, 그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내 아버지가 독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런 과감한 짓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대체 무엇을 목표로 했던
걸까? 뻔히 자기의 앞날을 망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써놓고 보니 자연스럽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할 수가 있다.


버스를 잘못 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대로 가면 판문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앞날을 망칠 거라는
것을 눈앞의 불 보듯 자명하게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것, 두려움이 없는것,
즉 두려움보다 더 큰 끌림, 더 강한
홀림,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 캔들리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