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운산 최의상 2015. 10. 3. 17:25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작가
우치다 타츠루
출판
갈라파고스
발매
2010.10.05

리뷰보기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다른 글에서도 종종 밝힌 부분이지만, 저는 철학과입니다—2학년까지 마치고 휴학 중이죠. 제 생각에 철학과는 대학에 설치된 과중에서 이공계의 물리학과와 쌍두마차로 달리는 굉장히 흥미로운 과인데, 그게 배우는 학문의 난해함 때문인지도 몰라도, 그 구성원들의 개성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괴상함을 보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천재 같은 애도 있고요, 반대로 용케도 수능을 뚫고 여기 들어왔구나 싶은 바보도 있고, 예술가 유형의 탕아(蕩兒)가 있는가하면, 또 그냥 자폐아 같은 놈들도 있습니다. 아, 물론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특성상 학과구성원의 대부분은 그저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에 온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과에 비해 괴짜의 비율이 높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어쩔 땐 같이 대화하고 있는 얘가 사실은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라서 취직을 하지 않아도 햇볕만보면 광합성을 할 수 있는가 보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현실도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일 때가 많거든요. 이를테면 점심도 거르고 인간존재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궁극적 귀결점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 없는(그러니까 독단적인) 설전을 벌이다가, 저녁에 돈가스집에 가서는 그냥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생선가스를 먹을 것인가에 대한 극심한 고민에 빠지는 유형일까나요? 이게 똑똑한 건지, 아니면 극도로 멍청한 건지…….

 

 어휴, 적다보니까 갑자기 우리 과 흉을 보게 됐군요—하지만 난 알아, 니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기분 나빠하기 보다는 웃으면서 마조히즘 같은 쾌락을 탐닉하려고 들 것을. 다시 본 글의 본심으로 돌아옵시다. 제가 이런 글을 적은 이유는, 특이한 유형의 인간들이 있다 보니까 이들이 각기 빠지는 철학들이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합리주의로 무장한 운명론자가 있고요, 다른 쪽에는 반사회적인 정치철학(반사회적인데 어떻게 ‘정치’가 성립한단 말이야?)을 전개하는 인간도 있지요. 중에서 좀 고전적인 스타일은 플라톤의 철인왕을 포기하지 않은 놈도 있고요, 반대로 세련된 친구들은 비트겐슈타인이나 정신분석 계열의 학문들을 접하면서 반(反)철학을 개진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굉장히 다양한데(혹은 난잡한데), 그 중에서도 굉장히 넓은 의미에서 집합을 이루는 철학사조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난해한 녀석들을 아주 포괄적인 의미로서 하나로 엮어볼 수 있는, 그런 큰 개념들.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조주의입니다.

 

 사전에 구조주의에 대한 정의를 검색해보면, 단연 굉장히 일목요연하면서도 두루뭉술한 말이 나옵니다.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로서가 아니라 전체 체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여, 개인의 행위나 인식 등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총체적인 구조와 체계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 현대 철학 사상의 한 경향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여서, 어쩌면 구조주의의 생각은 굉장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적 동물이니까 당연히 사회적으로 무언가가 결정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구조주의라는 게 이렇게 넉살좋게 정의된 거였다면, 수많은 철학도들이 여기에 불나방처럼 달려들지 않았을 겁니다. [철학과에는 구조주의자 못지않게 반(反)구조주의자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돈가스집에서 고뇌한다는 것이죠. 그 빌어먹을 돈가스 메뉴판에서.]

 

 대개 논쟁은 구조주의의 견해를 극단까지 밀어붙였을 때 발생하는데, 이를테면 구조주의자가 인간의 행동, 인식, 혹은 그 상상력까지 그 사람이 처한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고 칩시다—혹은 사회가 중점을 가질 수밖에 없음. 당연히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그리고 중에서도 사대부 계급으로 태어났으면 유교질서를 내면화할 것이고, 때문에 유교질서 바깥의 무언가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면서 적대시할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일견은 옳은 견해인 것 같으면서도, 정말 모든 게 다 구조 안에서 결정되어버리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저 인간이 구조가 주입하는 요소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자동인형에 불과하다면, 역사의 변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흔히 문명 이전에 성립되는 본능과 같은 것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질문이 이쯤가면, 결국엔 좋든 싫든 자유의지를 따져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오, 자유의지, 철학의 영원한 주제여—.] 인간의 변혁가능성을 믿는 추종자들은, 구조주의에 의해 인간 전체가 결정되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는 현실적 문명질서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의 지점들이 존재할 수밖에는 주장을 펼칩니다. 본능이나 역능力能 같은 걸 과연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가(일련의 계몽주의들과, 그 필두 칸트가 입에 거품을 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에 대한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이 말인즉 인간에겐 구조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어떤 자유의지의 가능성이 긍정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에덴이고 나발이고 인간은 과감하게 선악과를 씹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런 주장을 자꾸 밀고가다 보면 애초에 구조라는 것이 어떤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점에서, 구조주의 이전에 그 구조를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를 상정해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반문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나오면 구조주의자 쪽에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구조주의에 대해 주조된 것을 자신의 자유의지라고 믿는 “정신병적 주체”(여러분, 이 말은 인격모독이 아닌 실제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철학용어입니다)의 다름이 아니라는 비판을 가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인이 자유롭다는 착각이 들 뿐이지, 그 선택지들이 오지선다형으로 정해져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보기에서 빠져나가는 6번이나 7번 선택지를 떠올릴 수도, 선택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그런 식의 주체는 주체가 아니라는 반문이지요. 그러면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는 조금 클래식한 마르크스식 견해나, 언어학에 대한 얘기들을 꺼내서면서 소쉬르-레비스트로스로 이어지는 얘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이 다음에는 푸코나 라캉 같은 철학자들의 견해도 이어서 쏟아지지요(부산대 철학과에선 롤랑 바르트 얘기는, 아마도 전공자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으나, 좀 잠잠한 편입니다). 개인적으론 제가 푸코 얘기를 자주 꺼내는 편인데, 개인적으로 전 지금도 한 시대의 인식범위라는 게 그 시대의 지식권력이나 담론적 축적으로 형성되는 “인식성(episteme)”에 종속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시대 주류가 정상이라고 외치는 게 정상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구조주의를 밀고가다 보면 매우 높은 확률로 보편성이 박살나 버리는 상황을 목도하게 됩니다. “아, 보편성은 권력이었어!”하는 푸코식 깨달음.]

 

 그래서 이 토론의 결론은? 당연히, 안 납니다—나기는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개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토론이 끝나죠. 하지만, 그럼에도 ‘구조’라는 키워드에 서로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는 점은 확실한 듯합니다. 그게 반대하든 천성하든, 확실히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구조에 의해서 내가 결정되고 있다는 식의 발상 자체가 주는 흥미로움이란 게 있는 법이거든요. 그걸 밝혀내는 재미와 더불어, 그것과 투쟁해서 진정한 자유 같은 가치(이런 점에서 철학과생들은 놀랍게도, 다들 하나씩은 낭만적 구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를 부르짖고 싶은 당위와 충동들이 엮여 들어갑니다. 그래서일까, 구조주의자든 반(反)구조주의자든 상관없이 일단 구조주의의 기본적 논리들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죠—마치 자본주의에 가장 적대적인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가장 관심이 많은 묘한 역설이랄까요?

 

 이 책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은 “쉽게 읽기”라는 제목처럼 구조주의에 대한 입문적인 교양강의를 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어투가 강연체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 맞게 구조주의의 핵심개념들을 나긋나긋 말로 풀어놓고 있기 때문에 구조주의가 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픈 책이네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소쉬르,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라캉까지를 총망라하면서 구조주의의 심플한 계보에 대해서 언급해주니, 마치 약식철학뷔페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철학과 학부전공생들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복수전공하는 타과생은 옵션. 요즘 학부생들이 자꾸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던데, 교양수준도 모르면서 현대프랑스철학이나 문화철학강의를 수강하는 건 강의의 질을 떨어뜨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토론을 해야 하는데 상대방에게 개념을 일일이 설명하고 있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되겠죠? 성적을 맞춰온 관계로 별 생각 없이 빈둥거리는 철학과생이야 어쩔 수 없다만—그게 무슨 소용인지는 모르겠으나, 헬스장 가서 아령이나 마저 드시기 바랍니다—그런 게 아닌 철학도들은 공부하도록 합시다.

 

 이상, 철학과 뒷담으로 시작해서 꼰대질로 끝나는 글이었습니다.

 

 

 이만 마칩니다. 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