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와 문학

[스크랩] 시인 박목월 - 자연을 노래한 한국 문단의 나그네

운산 최의상 2015. 2. 4. 20:52

 

 

민족 정서를 노래한 시인

'천재 시인' 이상(李箱)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박두진(朴斗鎭)을 추천으로 시단에

등단시킨  정지용(鄭芝溶)은  1940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박목월(朴木月)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에는 소월이 있더니, 남에는 박목월이 있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지만 목월도 못지 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로 발현하기까지 고심이 크니, 그 민요적인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박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


전통적인 7·5조의 민요풍의 리듬 속에 동양의 심상을 최고의 격조로 수용해 높은 평가를 받은 박목월.
그는 어떤 시로 세상을 노래했기에...
박목월의 시가 곧 '한국 시'라는 평가를 받은 것일까?

조금씩 다가선 시의 길

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鐘)으로 1916년 1월, 경상북도 월성군(현 경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수리 조합장을 지내는 등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 박목월은 개화 사상이 투철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대구에서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박목월은 독서와 습작으로 고독을 달랬고, 17살이 되던 해(1933년), 아동잡지에 동요를 투고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동시「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면서 문단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1935년 계성중학교 졸업 후 가세(家勢)가 기울자 고향으로 돌아와 동부금융조합에서 입사했는데,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박목월은 동향(同鄕) 사람이자 문인인 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해방 이후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목인 김동리(金東里)로 두 사람은 막역한 우정을 나누며 문학을 논했다.
그러던 중 1935년, 김동리가 <화랑의 후예>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에는 동아일보에 소설 <산화(山火)>로 당선되자 박목월은 대구 계성중학교 시절, 교정 나무에 ‘시인’이란 글을 칼로 새기고 ‘커서 시인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던 시절을 떠올렸고 그 시절의 꿈과 맹세를 잊지 않기 위해 다시 원고지를 폈다.

시는 향수를 달래는 그릇


이 시기, 시인의 인생에 일대 분수령을 이루는 잡지가 나왔다.

1939년 2월에 창간된 문예종합지 <문장(文章)>으로 이 잡지는 1년에 한 번의 기회뿐인 신춘문예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소설 이태준, 시 정지용, 시조 이병기를 내세워 신인 추천제를 실시했는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필명(筆名)을 '목월(木月)'!
즉 민족 시인인 수주(樹洲) 변영로(卞榮魯)의 '수(樹)'를 나무 '목(木)'으로 고치고 김소월의 '월(月)'을 따와서 지은 이름으로 바꾸고 <문장>지에 응모한 박목월은 1939년 9월, 시 <길처럼>과 <연륜>으로 등단했다.

그러나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일본어 강요 등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심해지면서 1940년 8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폐간되고 1941년 <문장>과 <인문평론>도 사라지는 등 박목월은 시를 써도 발표할 곳이 없는 처지가 됐는데, 두 번 다시 시를 놓을 수 없었던 박목월은 노트 가득히 시를 적으며 외로움과 답답함을 달랬다.

또 1942년에는 목월의 고향인 경주를 찾아온 시인 조지훈과 조우하며 조지훈은 목월에게 <완화삼>라는 시를, 목월은 화답으로 <밭을 갈아>를 주는 등 시심(詩心)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경주에서 닷새를 함께 지낸 후 고향 영양으로 돌아간 조지훈을 생각하며 박목월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시작하는 <나그네>를 지었는데, 그의 대표작, <나그네>처럼 삶의 고단함은 강물에 흘려보내고, 시 속에 민요 가락의 향토색 짙은 서정... 소시민의 생활 속 소박함과 담담함...
토속적 시어에서 묻어나는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담아낸 박목월은 마침내 해방 후인 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해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줬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간 나그네

이후 1955년 첫 시집 <산도화(山桃花)>를 펴내며 제 3 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 박목월은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 많은 시집을 펴냈고 1953년 홍익대학교 교수, 1962년 한양대학교 교수 등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그렇게 평생, 이전의 한국 문학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며 담담하게 삶을 응시하던 박목월은 1978년 3월 24일, 새벽 산책에서 돌아온 뒤 ‘구름에 달 가듯이’ 영면하니 밤하늘의 별들이 속삭이고 가는 얘기를 쓰려고 시인이 됐다는 박목월.


그는 지금도 별과 별 사이를 오가며 자연을 노래하는 우리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지 않을까...

출처 : 이것이 역사다
글쓴이 : 시리게푸른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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