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와 문학

[스크랩] 2013년 제5회 한송 문학상 수상작 엄한정 시인의 시

운산 최의상 2015. 6. 30. 12:20

 

 

 

2013년 제5회 한송 문학상 수상작

 

~~수상자: 엄한정 시인~~

 

자갈길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뒤에서 산그림자 어깨를 누르고

골짜기 물이 신을 벗으란다

길은 질곡의 자갈길

소 모는 머슴처럼 귀소하는 길

낮은 곳에서 기다리는

다섯 쌍의 눈망울

배낭을 뒤져본다

빈 그릇을 들고 오히려

남의 밥그릇을 걱정하는 아이들이다

진달래꽃 몇 가지 꺾어온 가장

육십에 능참봉처럼

패거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갈길에 황소걸음이다.

 

 

눈길

 

눈이 내린다

하늘은 은은한 쑥꽃빛

구름 밖에 달이 떠 환한 밤이다

구름에 가린 달도 밝아서

홀린듯 하느재를 넘을 때

부엉이는 목이 쉬었다

아득한 곳에는 알전등 불빛

이런 밤은 겨울 달도 따스하니

우산 없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

빨간 지붕 양철집에도 함박눈이 쌓이고

참새들이 대수풀 눈을 털고 있다

까만 머리 향긋한 그 댁 아가씨

적적한 내 발길 따라 나오시려나

밤새워 걷고 싶은 길이다

얼마를 가면 달에 갈 수 있을까.

 

 

낫을 갈 때

 

볼품없지만 대물림한 돌이다

낫은 여러 개를 바꿔 갈지만

숫돌은 하나

낫을 갈 때는 초동이 된다

산 너머를 그리워하는 초동이 된다

뜸북새 내리는 논두렁 길에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는 산 너머 뭉게구름 

낫을 갈 때는 낫보다

숫돌이 얼마나 고마운지

숫돌에 흐르는 물이 촛농처럼

가슴 저린다

낫을 가는 지금 나는

저 산 너머의 그 너머를 내려간다

추석 밑에 벌초를 위해

낫을 가는 나를

아들 형제가 비켜보고 있다.

 

 

소로의 집

 

데이비드 소로의 집은 바람의 집

숲 속 호반에 있다

아무라도 와서 주인이 되는 집 

나무들이 빽빽하게 집을 둘러 있고

친구인 듯 바람이 말을 걸어오면

나무들은 합창을 한다

한결같이 시원한 소리 

해가 지고 바람이 불면

달과 별이 호수에 내려와 수를 놓고

들리지 않는 가락에도 춤을 춘다 

소로의 집은 바람의 집

하늘을 지붕 삼아

나고 듦이 자유로운 무법의 집

세속을 멀리하고 산에 드는 사람들

화롯불 가에서 수다스러워도

책을 읽는 모습보다 아름답다 

 *헨리데이비드 소로:19세기 미국의 철학가

 

 

속달 주막 할머니

 

달 속의 달이 속달인가

수리산 자락 오막살이

추녀가 닿는 마당 끝 도랑물 소리 

장독대에 소담하게 눈이 내리면

할미꽃처럼 허리 굽은 주막 할머니

길손을 불러 막걸리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언제인가

그래 먼 옛날

이웃집 할머니처럼 말했다

중신 들 테니 장가 가라고

설한에 꽃 본 듯이 반가운 말씀.

 

*속달: 군포시 마을 이름

 

출처 :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는 곳
글쓴이 : cann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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