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제5회 한송 문학상 수상작
~~수상자: 엄한정 시인~~
자갈길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뒤에서 산그림자 어깨를 누르고
골짜기 물이 신을 벗으란다
길은 질곡의 자갈길
소 모는 머슴처럼 귀소하는 길
낮은 곳에서 기다리는
다섯 쌍의 눈망울
배낭을 뒤져본다
빈 그릇을 들고 오히려
남의 밥그릇을 걱정하는 아이들이다
진달래꽃 몇 가지 꺾어온 가장
육십에 능참봉처럼
패거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자갈길에 황소걸음이다.
눈길
눈이 내린다
하늘은 은은한 쑥꽃빛
구름 밖에 달이 떠 환한 밤이다
구름에 가린 달도 밝아서
홀린듯 하느재를 넘을 때
부엉이는 목이 쉬었다
아득한 곳에는 알전등 불빛
이런 밤은 겨울 달도 따스하니
우산 없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
빨간 지붕 양철집에도 함박눈이 쌓이고
참새들이 대수풀 눈을 털고 있다
까만 머리 향긋한 그 댁 아가씨
적적한 내 발길 따라 나오시려나
밤새워 걷고 싶은 길이다
얼마를 가면 달에 갈 수 있을까.
낫을 갈 때
볼품없지만 대물림한 돌이다
낫은 여러 개를 바꿔 갈지만
숫돌은 하나
낫을 갈 때는 초동이 된다
산 너머를 그리워하는 초동이 된다
뜸북새 내리는 논두렁 길에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는 산 너머 뭉게구름
낫을 갈 때는 낫보다
숫돌이 얼마나 고마운지
숫돌에 흐르는 물이 촛농처럼
가슴 저린다
낫을 가는 지금 나는
저 산 너머의 그 너머를 내려간다
추석 밑에 벌초를 위해
낫을 가는 나를
아들 형제가 비켜보고 있다.
소로의 집
데이비드 소로의 집은 바람의 집
숲 속 호반에 있다
아무라도 와서 주인이 되는 집
나무들이 빽빽하게 집을 둘러 있고
친구인 듯 바람이 말을 걸어오면
나무들은 합창을 한다
한결같이 시원한 소리
해가 지고 바람이 불면
달과 별이 호수에 내려와 수를 놓고
들리지 않는 가락에도 춤을 춘다
소로의 집은 바람의 집
하늘을 지붕 삼아
나고 듦이 자유로운 무법의 집
세속을 멀리하고 산에 드는 사람들
화롯불 가에서 수다스러워도
책을 읽는 모습보다 아름답다
*헨리데이비드 소로:19세기 미국의 철학가
속달 주막 할머니
달 속의 달이 속달인가
수리산 자락 오막살이
추녀가 닿는 마당 끝 도랑물 소리
장독대에 소담하게 눈이 내리면
할미꽃처럼 허리 굽은 주막 할머니
길손을 불러 막걸리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언제인가
그래 먼 옛날
이웃집 할머니처럼 말했다
중신 들 테니 장가 가라고
설한에 꽃 본 듯이 반가운 말씀.
*속달: 군포시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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