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수상문학 2014년 겨울호 詩 계간평
시적 화자(話者)의 어조(語調)와 그 감도(感度)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계절의 향훈은 새로운 활력으로 우리들의 심신(心身)을 요동케 하면서 시 창작에도 폭넓은 이미지로 봄(혹은 계절적인 시간성)과 접맥(接脈)시키고 있다. 일찍이 독일의 시인 하이네(h. heine)는 그의 작품「즐거운 봄이 찾아와」에서 ‘즐거운 봄이 찾아와 / 온갖 꽃들이 피어날 때에 / 그 때 내 가슴속에는 /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네 // 즐거운 봄이 찾아와 / 온갖 새들이 노래할 때에 / 그리운 사람의 손목을 잡고 // 불타는 이 심정을 호소하였네’라는 서정적인 감성(感性)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시인 박남수도 그의 작품 ‘봄의 환영(幻影)’에서 ‘복사꽃 피면 복사꽃 내음새가 발갛게 일렁이는 시골에서 / 하품을 하다가 놋방울이 흔들리면 꼬리 한 번 치고 / 황소는 취할 듯이 꽃잎을 먹고 육자배기 한 가락, / 음매--- 얼굴을 쳐들며 들녘이 온통 흔들리는 아지랑이, / 꽃 아지랑이 붉은 저편에 / 시커먼 기동차가 뽀오 지나가는 봄이 있었다’라고 봄의 환희를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 겨울호에서는 ‘다시 읽는 명시’에서 마종기의 ‘초겨울 주변’과 김요섭의 ‘어느 겨울의 악수’를 수록하여 겨울 정취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겨울은 맨 먼저 / 혼자 쓸쓸히 / 내 팔장에 오고 // 조용히 바람소리 내고 / 손 바닥에 흘로 내린다’라거나 ‘쏟아지는 / 찬 비 / 겨울은 어두웠다 / 램프가 켜진 헛간 // 무엇을 기다리는가 / 꽃씨들이 잠든 땅이여 / 어느 겨울의 악수’라고 겨울 이미지가 살아 넘치는 작품을 대할 수가 있었다.
대체로 작품 속에서 상황이 전개되거나 주제를 창출하기 위해서 그 작품을 흡인(吸引)시키는 주체가 있는데 이를 우리는 시적 화자(persona)라고 하고, 그 화자가 이끌어가면서 사용하는 언어를 어조(tone)라고 해서 시 읽기와 주제의 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화자가 작품의 지향점이나 향방을 제시하고 시인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어떤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시정신(poetry)의 범주에서 공감의 영역이 확대하는 좋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어린 뒤뜰의
앵두나무 그늘에 서면
아
너무 오래
고향(故鄕)을 잊어온 것 같다.
-최계락의 ‘봄밤’ 중에서
너를 보내고
견디다 견디다
마지막 나려앉은
내 가슴 소리다
아,
잎이 지듯
잎들이 지듯
후둑 후둑
-이창호의 ‘그 소리’ 중에서
이번 특집 ‘다시 읽는 명시’ 중에서 발췌한 위의 두 작품들에서 알 수 있는 화자 ‘내’ 혹은 ‘너’라는 인칭 대명사에서 나와 너가 작품 전체를 어떤 언어를 통해서 내용을 심화(深化)시키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내 / 어린 뒤뜰’과 ‘너를 보내고 / 견디다 견디다’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거기에 전개되거나 들려주려는 어조를 파악하게 되고 그 내용에서 주제-시인의 정신과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부르고 싶고
마음으로 보듬고 싶은 사랑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아픔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이었습니다
-박종식의 ‘어느 불행한 시인의 첫사랑’ 중에서
사랑을 알고 있는 나이에
사랑도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연약한 미숙아여라
너와 나의 뒤늦은 사랑
가슴에 담지 않고서는 아
이 가을 어찌하란 말이냐.
-이성미의 ‘가을 사랑 담으리’ 중에서
그렇다. 이 두 작품에서 구체화시키는 화자는 ‘당신과 나’이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이다. 이들 화자가 어떤 진실을 적시(摘示)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작품의 흐름과 내용이 무엇을 우리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실체를 확인하게 되고 우리들은 그 작품에 흡인되거나 거부하는 두 가지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왕영분이 ‘그대 아직도 /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구나(「그대 아직도」중에서)’ 또는 ‘오늘도 난 / 너를 닮고 싶어 안달이 난다.(‘나무가 되고 싶다’ 중에서)’라거나 김종임이 ‘내 고향인 것처럼 정이 들까-중략-흔들며 퍼져 나가는 하얀 구름 같은 내 마음(‘가을날 하얀 구름’ 중에서)’ 그리고 ‘나를 벗고 마음 비워 / 생애에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 그대 가슴 빈 곳 비집고 들어서면(‘이 세상 사는 마음’ 중에서)’과 같이 많은 시인들이 이 화자의 어조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작중 상황은 작품 속에 전개되는 (또는 나타나는) 시적 상황(situation)을 말하는데 이것은 시 읽기에서 무엇보다도 작품 속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화자가 지금 어떤 공간과 시간에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극을 감상할 때 우리는 눈앞에 있는 등장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가 그의 위치와 주변 상황과 그 상대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과 같이 우리 시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먼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된다.
대체로 서정시는 사건이 없고 간단한 장면만 제시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장면의 모습도 일정한 상황을 이루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 하자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령 춘향전에서는 춘향이를 비롯해서 이도령, 월매, 향단이, 변사또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작중 화자가 표면화하고 있고 이들이 전개하는 사건이나 대화 내용이 작품의 진행과 거기에 내재된 진실을 파악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유명 교수는
성스런 이야기를 하고
여인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자2는
자꾸만 칭찬을 받아 마시며
콧등을 붉히고
한 여인의 해원(日圓) 값은 무거웠다
-김기진의 ‘6월 19일에’ 중에서
여기에서 화자는 ‘유명 교수’와 ‘여인 그리고 ’‘남자2’이다. 이 세 사람이 모여서 시 한 편을 구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남자3’이 있다. 이들이 벌이는 스토리가 결국 시적 진실을 유로하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김기진은 작품 ‘송암 선생 어머니’ 중에서도 ‘어머니는 힘쓰시라 용채 쥐아 주시는 / 송암 선생 건강하시어 / 봄의 완성 보십시오.’라고 ‘송암 선생’과 ‘어머니’를 화자로 설정하여 상황을 전개하면서 작품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밖에도 강은혜의 작품 ‘장흥계곡’ 중에서 ‘근데 / 베토벤의 운명을 / 악기도 없이 연주하는 / 너’ 또는 박채선의 작품 ‘인연을 꿈꾸고 싶다’ 중에서 ‘내 심장속을 외로움이 파고들어 / 얼룩진 상처가 시련으로 남아 있어도’라고 ‘나’와 ‘너’를 화자로 내세우지만 주응규의 작품 ‘쑥부쟁이’ 중에서 ‘청순가련한 여인의 / 올곧은 흠모의 정은 / 한결같건만’이나 채 린의 작품 ‘방과 기다림’ 중에서도 ‘고양이와 두루마리 화장지 숟가락과 입 사이 / 집시여인의 손과 가방 그 가방에 든 숨 쉬는 시어 한 마리’라고 해서 ‘청순가련한 여인’과 ‘고양이’, ‘집시여인’ 등과 같이 인칭 대명사가 아닌 제3자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 등도 시적 화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잊어질까
좀 더 멀어지고 싶어
바닷가로 떠나왔건만
지지리도 못살게 괴롭힌다
잊으면 된다는 걸 왜 모를까마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머릿속 뇌를 꺼내어
기억 장치를 망가트리면 모를까
까맣게 어둠 깔려
자리에 돌아누워 두 눈 감아도
창문 밖 서성이며
내리는 빗방울처럼 툭툭
창문 두드리며 떠나지 않는 걸.
그러나 박종식의 작품 ‘그리움이라는 것’ 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칭 명사나 특정 인물의 화자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화자 없이도 작품의 상황 설정과 전개는 특수한 시적 효과를 제공해 준다.
이처럼 작품 속에 시적 화자가 없고 어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작중에서 무언으로 어디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대체로 시적 스토리가 아닌 경우에는 ‘나’와 ‘너’ 등의 인칭명사의 화자를 배제하고 순전히 시인의 지향적인 의식의 흐름만으로 창작하면 숨어 있는 어조의 감도는 더욱 명징(明澄)해져서 좋은 작품이라는 요즘의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송배 약력
한국문인협회 수석부이사장. 월간 ‘심상’을 통해 등단하여 KBS방송문화센터․문협문예대학․여성문예원․삼성반도체사원연수원 등에서 시창작 강의. 현재 청송시창작 아카데미에서 후진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다. 저서로는 ‘시가 보인다, 시인이 보인’ ‘김송배 시 창작교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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