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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 따라 떠나련다. 혜화동, 혜화동

운산 최의상 2014. 4. 9. 19:28

 

 

 

 

입력 : 2012.03.10 03:04

노랫말 따라 떠나련다 돌아가지 못할 그때로

혜화역 3번 출구. 서울대학교 병원을 지나 소방서를 지나치면 붉은색 벽돌 건물이 나타난다. 그 건물을 끼고 골목으로 깊숙이 돌다 보면 길이 하나 나오는데, 길 오른쪽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지었다는 건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그 건물을 나는 걸어서 올라갔다. 건물 3층에 회양목이 심어진 작은 정원이 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그 건물 4층에서 나는 'LIBRO'라고 적힌 초록색 푯말을 보았다. 그때는 그것이 라틴어고, 그것이 뜻하는 바가 '책'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책을 사려면 광화문의 교보문고까지 가던 때였고,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 장땡인 직업'이라는 친구의 말에 넘어가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가게 된 것뿐이었다. 전화를 끊기 전 친구가 말했다. "거기에 '꾿빠이 이상'을 쓴 김연수 작가가 일하잖아." 나는 문학 동아리방에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젊음과 낭만, 때로는 자유와 저항의 공간이었던 대학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샘터사옥의 파랑새 극장도 메테를링크의 동화‘파랑새’에서 이름을 따 왔다.
젊음과 낭만, 때로는 자유와 저항의 공간이었던 대학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샘터사옥의 파랑새 극장도 메테를링크의 동화‘파랑새’에서 이름을 따 왔다.
인터넷 서점의 면접을 보러 가던 날 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2월 21일. 내가 두 번째 직장의 면접 날짜까지 기억하는 건, 그날 좋아하는 초록색 털장갑을 잃어 버렸고, 일주일 후 서울대학병원에서 첫 조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첫 번째 아기가 2월 29일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란 얼굴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잔치를 어떻게 기념해줘야 할지 머리 꽤나 아팠을 거란 심각한 표정이었다.

"안 그래, 언니? 4년에 한 번이라니 너무 하잖아!" 아이를 낳고 퉁퉁 부은 얼굴로 누워 있던 동생은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아들이 2월 28일에 태어난 걸 진심으로 행복해 했다. 별 게 다 고맙고 행복했던 산모는 엄마가 공수한 기장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 한 사발을 깨끗이 해치우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17시간을 진통했으니 17시간쯤은 자야 한다는 얼굴로 말이다.

2월이 28일까지 있든, 29일까지 있든 별 상관없는 내게 조카의 생일과 직장의 입사일이 같다는 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나로선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몇 년간 고민해본 결과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조카의 꿈은 소설가다. 나는 그 애가 직접 타이핑한 무려 30페이지나 되는 (원고지 30매가 아니라!) 소설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했을 때, 2월 28일, 나의 첫 입사일을 기억해냈다. '리브로'엔 정말 작가들이 많았다. 회사에 다니던 한 시인은 "책 읽고 리뷰 쓰면 월급을 주는 이런 착한 회사가 세상에 있다니!"라고 감탄할 정도였다. 어린이팀 과장님은 동화작가였고, 파주 물류센터의 팀장님조차 여행작가이자 소설가였다. 내겐 꿈의 직장이었다.


	대학로를 상징하는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마로니에 나무는 아름드
리 고목이 된 지 오래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대학로를 상징하는 마로니에 공원.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져다준 마로니에 나무는 아름드 리 고목이 된 지 오래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초창기 회사는 정말이지 작은 동아리방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신나게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 책의 판매보다는 자신의 취향이 좀 더 반영되던 황당한 낭만이 있었다. 보스가 출장을 가고 없던 어느 날, 내게 '오늘의 책'을 걸 특별한 임무가 주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초기 러브크래프트 싸구려 소설 표지만큼이나 우중충한 '키친 컨피덴셜'이란 요리 에세이를 강력히 주장했었다. 인문서나 소설이 대세였던 '오늘의 책'에 난데없이 요리책이 걸린 건 아마도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번역된 '앤서니 보뎅'의 첫 책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 '오늘의 책'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요리는 일종의 기능이며, 훌륭한 요리사는 예술가가 아닌 장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건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럽의 대성당들을 지어낸 것은 바로 장인들이었다. 어떤 경우든 나는 자신의 전문가 정신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런 용병들을 예술가보다 더 지지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거칠고 섹시한 요리사를 나로선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인생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자면 나의 '리브로 시절'은 혜화동 시절이다.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으면 나는 별 수 없이 10년이 훌쩍 넘은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 내려 빨간색 소방차가 보이던 소방서를 지나가던 기억, 혜화동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때의 일, 소설가 김중혁이 '김중혁 과장'이고, 시인 강정이 '강정 대리'이던 시절의 일들을 말이다. 2007년에 내가 첫 에세이집을 냈을 땐, 소설가 김연수가 내 책의 추천사를 써주었다. 그때 나는 우스갯소리처럼 편집자에게 그의 프로필을 '소설가'가 아닌 '리브로 과장'이라 적겠다는 흰소리를 해댔었다. 한때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일했다는 사소한 우연 때문에, 작가가 되지 못해 괴로웠던 시절부터 나는 그에게서 친근한 동료애를 느끼곤 했다.


	[Why] [그 작품 그 도시] 노래 '혜화동'_혜화동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었다. '혜화동'은 어쩐지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있을 때 들어야만 할 것 같다. 움직이는 풍경 안에서 이 노래는 훨씬 더 자유롭게 향수를 자극한다. 나는 언제나 동물원 2집에 실린 첫 번째 곡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더 좋아했지만 '혜화동'을 들을 때 확실히 더 어린아이 같은 감정에 빠진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같은 가사를 듣고 나면 20대의 마지막을 보냈던 혜화동의 마로니에 공원과 조금이라도 싼 티켓을 사겠다고 줄을 서며 버티던 '사랑 티켓' 박스의 긴 줄과 바람에 흔들리던 마로니에 나무가 떠오른다.

친구와 혜화동 '연우무대'에서 처음 본 연극과 뮤지컬 '개똥이'. 추억이 가득한 파랑새 극장과 아름다운 벽돌 건물에 있던 샘터사, 마로니에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을 보며 동생과 처음 사먹었던 야릇한 이름의 '캬라멜 마끼야토'도.

●혜화동: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1980년대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그룹 동물원의 2집 수록곡. 동물원 멤버인 김창기가 작사·작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