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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태주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3 - 멧버들 가려 꺾어 / 홍랑

운산 최의상 2013. 9. 15. 16:28

명시여행3

 


멧버들 가려 꺾어
                                                                        홍 랑
멧버들 가려 꺾어 보냅니다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오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조선조 선조 임금 때 함경도 홍원 땅에 홍랑이란 어여쁜 기생이 있었다 한다.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나이. 관기(官妓)였다고 한다. 당시, 관기는 관에 예속된 신분이라 제멋대로 살 수가 없었다 한다. 그런데 홍랑은 외모만 이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이뻐 시를 알았고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았다 한다. 그런 홍랑이 어느 날 서울서 내려온 선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다. 이름은 최경창. 나이는 34세. 백광훈, 이달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던 인물인데 북도평사(北道評事)란 벼슬로 경성에 내려왔던 것. 
 둘이는 만나 1년 동안 최경창의 막중에서 살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외지에서의 사랑은 언제나 뜬구름 같은 것. 1년 뒤 최경창은 다시 서울로 돌아가게 되고 둘이는 쌍성(雙城)의 함관령(咸關嶺)이란 곳에 이르러 이별을 하게 된다. 관기의 신분이라 더는 따라 갈 수 없는 홍랑은 문득 시조 한 수를 짓고 그 시조를 산버들 한 가지와 함께 최경창에게 보낸다.
 예부터 기생은 노류장화(路柳墻花)라 일러 왔다. 길가의 버들이요 담장 위의 꽃이란 뜻. 그래서 뜻이 있는 남정네라면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는 여인네로 여겨왔다. 홍랑은 이 글에서 자신을 버들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버들은 그냥 버들이 아니고 가리고 가려서 꺾은 산버들이다. 그 버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의 부탁은 그 버들을 당신이 잠을 자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입장이라 자신의 상징인 버들을 대신 주면서 그 버들을 침실밖에 심어두고 보아달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애절한 부탁이요 사랑의 호소인가! 나아가 밤비에 새잎 나거든 그 버들 나인가 여겨달라는 것은 더욱 목이 메이는 대목이다. 인간의 사랑도 이 정도면 말릴 수 없는 사랑이 되고 말리라. 도대체 이런 시조를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받고 최경창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러한 막중한 이별의 슬픔 앞에 우리는 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별 뒤에 최경창은 서울로 돌아가 병을 얻어 앓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주야를 단신으로 걸어 최경창의 집에 다달아 병구완을 자청하고 나서, 드디어 애인을 자리에서 일으키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최경창의 시 원고를 등에 지고 피난을 가 후세에 최경창의 시가 세상에 남도록 하는 공을 세웠다. 나아가 최경창이 45세의 일기로 죽자 그의 묘소 옆에 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최 씨 문중에서도 홍랑의 순정을 인정하여 최경창의 묘소 아래에 홍랑의 묘소를 만들고 그의 후손들도 즐겨 ‘홍랑 할머니’라 일컬어오고 있다 한다. 한국시사 전체를 통털어 홍랑의 이 시조 한 편보다 더 우렁차고 아름다운 절창이 어디 더 있을까 싶지 않다!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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