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4)
잊혀진 여자
마리 로랑생
갑갑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여자는
쓸쓸한 여자예요
쓸쓸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여자는
앓아누운 여자예요
앓아누운 여자보다
더 한층 가엾은 여자는
버림받은 여자예요
버림받은 여자보다
더욱 더 가엾은 여자는
의지할 곳 없는 여자예요
의지할 곳 없는 여자보다
보다 더 가엾은 여자는
쫓겨난 여자예요
쫓겨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여자는
죽은 여자예요
죽은 여자보다
한층 더 가엾은 여자는
잊혀진 여자예요.
마리 로랑생(1883-1956)은 한 사람 특색 있는 프랑스의 화가이며 시인이었던 인물이다. 그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그림의 분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원근감이 별로 없어 보이는 평면적인 화폭구성에 꿈꾸는 듯 멀고도 커다란 눈매를 가진 인물들 말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당대의 아름다운 시인이었던 기욤 아폴리네르와 연인 사이였던 사람이다. 뿐더러 그 자신 몇 편의 시를 남겨 시인이기도 했다.
위의 시는 많이 알려진 시이다. 얼핏 보아 단순히 여성사의 일면을 나타낸 감상적인 시로 보이지만 그 실에 있어는 인생의 진면목을 담고 있는 글이다. 일단은 <가엾은 여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주제를 중심으로 그 대상이 반추되어나간다. <갑갑한 여자→쓸쓸한 여자→앓아누운 여자→버림받은 여자→의지할 곳 없는 여자→쫓겨난 여자→죽은 여자→잊혀진 여자>의 순이다. 처음 이 시를 대할 때 나는 왜 이러한 순서가 잡혔는가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시를 쓴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인생관이 작용해서 그러했겠지만 문제는 가장 나중에 나온 <잊혀진 여자>에 대한 것이다. 그 어떤 여자보다도 불쌍한 여자가 <잊혀진 여자>라? 쉽게 승복이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고 안타깝고 슬프고 불행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세상에 그 많은 누군가의 기념관들. 무덤조자도 하나의 조그만 기념관이었다. 미국에 그렇게 많은 링컨 기념관을 생각해본다. 이거야말로 링컨을 잊지 말자는 미국사람들의 한 결의가 아니겠는가!
꽃 가운데는 물망초(勿忘草)란 이름을 가진 꽃이 있다. 영어로는 forget me not이다.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 얼마나 애절한 생명과 사랑의 부탁이리요.
*마리 로랑생의 위의 시 원본은 번역되어 우리에게 통용되는 시와는 사뭇 그 내용이나 형식이 다르다.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애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종군을 하고 있을 때 바르셀로나에 머물면서 쓴 시라고 한다.
지루하기 보다는/ 슬픈 것이/ 슬프기보다는/ 불행한 것이/ 불행하기보다는/ 병든 것이/ 병든 것보다는/ 고통스러운 것이/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세상에서 외로운 것이/ 외로운 것보다는/ 망명생활이/ 망명생활보다는/ 죽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잊혀진다는 것이……
-출처:http://cafe.daum.net/KEAA(재미수필문학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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