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5)
유월이 오면
로버트 부리짓스
나는 그 때 온종일 순이와 함께
향긋한 건초더미 속에 앉아 있으려네
그리고 솔솔 바람 부는 하늘에 흰구름이 지어놓은
눈부시게 높은 궁전들을 바라보려네
순이는 노래 부르고 나는 노래 지어주고
그리고 온종일 아름다운 시들을 읽으려네
마른풀로 지은 우리들의 집에 숨어 누워서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이 시를 처음 만난 것은 공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공주에는 대학생이 흔치 않았었다. 오직 단과대학 형태인 공주사범대학이 유일한 대학이었다. 종일 공주 시내를 다녀도 대학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대학생이 대학생인 줄 알았느냐고? 그렇다. 그 때는 대학생들도 감색빛깔의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공주의 길거리에서 여학생 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굉장한 화제꺼리가 되곤 했다.
같은 집 하숙생 가운데 공주사범대학에 다니는 형이 있었다. 그는 매우 친절하고 유순한 사람이었는데 그 형이 배우는 대학교재에 위의 시가 나와 있었다. 문장의 시작이 휀 준 이스 컴(When June is come)으로 되어 있었다. 소년적 천진과 호기심이었을까? 담박에 그 시가 좋아졌다. 그래서 그 시를 노트에 베끼고 외웠다. 시를 외울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아, 인생이란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나는 시에 나오는 여성대명사(그녀)를 <순이>라는 구체적인 여자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흔해빠진 우리나라 촌 여자 이름의 표본 같은 이름이었다. 그랬더니 더 좋은 느낌이 왔다. 무엇보다도 <흰구름>이란 말에 마음이 끌렸다. <흰구름이 지어놓은 눈부시게 높은 궁전>이라니! 그 뒤부터 나는 흰구름을 볼 때마다 눈부신 궁전을 꿈꾸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로 사랑하는 누군가와 더불어 향긋한 건초더미에 누워 흰구름이 지어놓은 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는 인생이 있을까? 나는 비록 나이 먹고 늙은 사람이지만 결코 그런 인생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어디까지나 기다림이고 꿈이다. 살아서 그런 인생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죽어서라도 분명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유월이 가까워지면 이 시를 기억해내고 중얼중얼 입속으로 외우곤 한다. <오, 인생은 즐거워라 유월이 오면.> 지은이 로버트 부리짓스(1844-1930)는 영국의 계관시인이었고 비평가였던 사람이다.
-출처:http://cafe.daum.net/KEAA(재미수필문학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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