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관 기행

[스크랩] [나태주] 풀꽃

운산 최의상 2013. 9. 15. 16:17

 

 

             

 

 

 

  

 

우리 숲 해설가 협회에는 보석 같은 회원들이 많다. 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김 선생님도 그 보석 가운데 하나다. 그 선생님한테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서울에서 근무할 때에 있었던 일이란다. 초등학교 2학년 자연 과목 시험 문제를 냈다. 그중 한 문제.

 

문제: 해는 (    )쪽에서 떠서 (    )쪽으로 진다.

 

채점을 해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답인 ‘동’, ‘서’를 제대로 맞혔다. 그런데 한참을 채점하다 보니 어럽쇼, 한 녀석 답이 이상하다. ‘동’, ‘서’가 아니라 ‘4’, ‘5’라고 썼다. 이 녀석이 동서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바리한 녀석인가? 무어 이런 답이 있어. 4, 5가 뭐야? 도대체. 선생님은 혼잣말하며 틀렸다고 빗금을 그었단다.

 

채점을 다 마치고 끝내려고 하던 선생님은 왠지 꺼림칙했다. 동, 서를 4, 5로 답한 그 녀석은 ‘동서를 분별치 못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그 녀석 답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렇다면 문제를 잘못 보았나? 4, 5가 뭐지? 이상하게 여기던 선생님. 아하! 번득이는 게 있었다. 얼른 자연 교과서를 펼쳤다.

 

그러면 그렇지! 궁금해하던 답이 거기에 있었다. 해가 뜨는 그림은 자연 교과서 4쪽에, 해가 지는 그림은 5쪽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녀석이 답을 4, 5로 적어 놓았구나. 그 순간 담임 선생님의 가슴은 동해의 해돋이를 보듯 환해졌다. 틀렸다고 그었던 빗금을 동그라미로 고쳐 놓았음은 물론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고 하지 않고, 교과서 쪽수까지 정확히 알아 4쪽에서 뜨고 5쪽으로 진다고 답을 한 어린 영혼과 그 답을 틀렸다 하지 않고 맞게 채점한 선생님 모두 다 아름답다.

 

냉이, 꽃다지, 개불알풀, 씀바귀, 벼룩나물……. 길가에 쪼그려 앉든지 무릎을 꿇고서 들여다보아야 겨우 보이는 풀꽃들, 그들이 지금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 작품 출처 : 나태주 시집『이야기가 있는 시집』(푸른길, 2006)
 ― 국어선생님의 시 배달 : 윤석주 선생님  http://www.changbiedu.com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이온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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