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11)
감각
아르튀르 랭보
푸른 여름날 저녁 때, 나는 가겠네, 보리밭에 찔리며,
오솔길로, 풀잎을 밟으며.
꿈꾸는 나는 느끼게 되리. 내 발에 스며드는 신선한 느낌을
나의 머리칼은 바람에 나부끼리.
나는 말하지 않으리, 생각하지 않으리.
허지만 끊임없는 사랑은 가슴속에 피어오르리.
그래서 나는 가리, 멀리, 아주 멀리, 떠돌이처럼, 자연 속으로,
— 애인과 같이 가듯이 아주 행복하게.
시인의 천재성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시인이 바로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Jean Nicolas Rimbaud, 1854-1891)이다. 짧은 생애 가운데 그가 시를 쓴 기간은 겨우 5-6년 정도, 15세에서부터 20세 까지가 전부이다. 그런 데도 그는 세계시사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공적과 영향을 남겼다. 그는 16세 때 이미 ‘시인은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가 말한 견자(見者, voyant)란 ‘무릇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를 말한다.
랭보는 무책임하고 방랑벽이 있는 아버지와 신앙심은 깊지만 융통성이 부족한 어머니의 여섯 자녀 중 한 아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모범생이었으나, 16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평생을 반항과 일탈의 삶으로 일관했다. 아무래도 랭보는 다중인격자(多重人格者)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인물이겠다. 그는 겨우 36세의 일기를 살았으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기행과 스캔들과 소문을 뿌리며 살았다. 죄수, 군대 용병, 곡마단 통역, 채석장 감독, 무기 밀매상, 인신 매매상, 마약 거래상 등,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신분을 더불어 살았으니까 말이다.
특히, 폴 베르렌(Paul Marie Verlaine)과의 기이한 우정과 동성연애 관계는 오랜 세월 사람들 입줄에 오르내린 일화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내용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토탈 이클립스」를 통해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위의 시는 랭보가 15세 때 지은 시라고 전한다. 15세에 이런 시를 썼다?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만큼 완벽하고도 조숙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시는 실상 하늘에 비딱하게 걸린 그 어떤 물체 같은 것이다. 어쩌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구조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만인에게 오해 없이 통하는 맑은 문장의 산문과는 구별되는 문장이다. 약간의 오해도 있을 수 있고 독단이 있을 수도 있는 문장이 시의 문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시적인 문장이 바로 랭보의 이런 삐딱한, 조금은 위태로운 문장 구조가 아닐까 한다. 문제는 이런 작품을 통해 시인이 원초적으로 느꼈던 감흥을 오늘날에도 충분히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시란 누가 뭐래도 항구적인 문장이라 하겠다.
- http://cafe.daum.net/KEAA(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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