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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12)

운산 최의상 2013. 9. 15. 16:16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12)

 

 


오손도손 귓속말로

                                                                            임진수


 

나무 위의 새들이 보았습니다.

해질 무렵 공원은 어스름한데

할머니와 또한 그렇게 늙은 아저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나무 위의 새들이 들었습니다.

인생은 황혼

집은 없어도

흐르는 세월에

다정을 싣고

오손도손 그렇게 살아가자고

귓속말로 사랑한다 했습니다.

 

나무위의 새들이 물었습니다.

사랑이란 그 무엇인가

그리고 또 인간이란.

 


 

임진수(林眞樹, 1926-2001, 본명 임진수(林鎭洙) 시인은 문단 출입이 활달했던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평생을 올곧게 살면서 자존을 지킨 시인으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다. 1926년 평남 진남포 출생. 1948년 박남수 선생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으며, 서울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와라와라』란 매우 개성적인 시집 한권을 남겼다. 시인의 시는 다분히 모더니즘 경향이고 실험적이기도 한데 위의 시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집 출간 이후 말년에, 신문에 발표한 글이 아닌가 짐작된다.

 

시의 배경은 ‘공원’이고 ‘할머니’ 한분과 ‘또한 그렇게 늙은 아저씨’가 주인공이다. 시간은 또 ‘해질 무렵’의 한 때. 그들은 ‘황혼’의 ‘인생’을 사는 분들로 ‘집’도 없는 처지다. 그러나 그들은 마주 앉아 ‘오손도손 그렇게 살아가자고/ 귓속말로 사랑한다’고 서로 고백하고 있다. 그 소리를 ‘나무 위의 새들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인가! 이런 장면 하나와 만나기 위해 우리는 때로 멀고 먼 거리를 덧없이 돌고 돌아서 오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더 아름다운 건 끝 구절이다. 시인은 ‘나무 위의 새들’의 입을 빌어 우리에게 묻고 있다. ‘사랑이란 그 무엇인가/ 그리고 또 인간이란’ 무엇인가? 과연 사랑이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 영원한 물음 앞에 우리 또한 망연자실하며 머언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임진수 시인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없다. 그러나 시인의 따님인 재미수필가 임정아(미국이름 이정아)씨와 아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2003년, 미국 엘에이를 방문해서 처음 만났다. 그 때 임진수 시인과 부녀관계가 된다는 걸 알고 매우 반가웠다. 그 뒤 내가 보관하고 있던 시인의 유일본 시집 한 권을 시인의 따님에게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위에 적은 시 또한 낡은 신문 스크랩에서 복사해서 보내드린 바 있다. 이런 관계로 우리는 아주 친근한 우인관계가 되었다. 인간의 인연이란 참 묘한 데서 싹트고 자란다 하겠다. 일면식 없는 선생을 뵈온 듯한 느낌이다.

 

 

 

- http://cafe.daum.net/KEAA(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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