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진순분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비움의 美學, 구도적인 詩 쓰기

운산 최의상 2013. 5. 21. 11:04

진순분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

 

                     비움의 美學, 구도적인 쓰기

 

                                                                                               詩人   임 애 월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無爲自然.

진순분 시인의 시를 읽다보니 이 말이 시인이 추구하는 삶과 상통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쓰기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조차 절제된 생각으로 구도자적인 길을 스스로 선택해 놓고 그 길을 운명처럼 걸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여덟 편의 시조작품을 읽다보면 도교적인, 혹은 불교적인 색채로 말갛게 정제되어 고요하게 산굽이를 돌아나가는 가을 계곡물 같은 고요함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느껴진다.

  <빈들>이나 <佛影寺에서> <디오게네스> <단풍나무 설법> 등에서 보이는 시어들의 공통점도 비어서 가득 찬 충만’ ‘생각 비워 마음 비추는’ ‘벗을수록 욕망은 깨달음에 이르듯’ ‘제 부피를 줄이고 수액마저 비우면, 욕심의 더께를 비워야 한다고 설법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모든 작품에서 행마다 띄어쓰기를 한 연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시조 형식의 작품들은 왠지 기품이 있어 보인다. 같은 이야기도 시조의 형식을 빌렸을 때 운율의 미는 물론이고 단아하고 정갈한 절제의 미까지 돋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 하늘 저토록 눈부시게 맑은 까닭은

 

생각 비워 마음 비추는 사람들 있으므로

 

부처님 그림자까지 맑게 떠오른 불영사

 

계곡물에 손 담그며 돌 위에 앉아보면

 

오래전에 떠나보낸 추억 한 잎 떨어지고

 

하늘에 고단한 머리 맡겨 면벽하는 소나무

 

저무는 산사에 만등인 듯 달이 떠오를 때

 

초승달처럼 걸려 그 마음 비춰본 적 있나

 

저 심연 푸른 고요가 화두로 일렁인다

                                              -<佛影寺에서> 전문

 

  부처님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쳐 佛影寺라는 이름을 얻은 사찰은 마당의 소나무조차 면벽수행을 하는 고적한 산사이다. 사계절 푸르른 기상을 보여주던 소나무도 가끔씩 고단한지 명상에 들고 만등처럼 달이 떠오르면 호수 같이 맑은 하늘에 머리를 맡기고 제 마음 비추니 화두 하나 고요하게 다시 일렁인다’.

  산에 들면 누구나 부처처럼 자비로워진다고 하던가.

이 작품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생각으로 올곧게 세상을 살아내는 소나무와 시인의 모습이 동일시되고 있다. 시인은 오래전추억마저 내려놓고 맑고 고요한 자태의 소나무와 자신의 마음을 교감하며 명상에 든다. 고요화두는 아마도 시인의 정신세계를 숙성시키고 있는 비움이었으리라.

  ‘자를 파자해 보면 말씀 과 절 자로 나눌 수 있다. 란 절에서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수행하듯이, 절제의 미를 살려 맑게 이야기한다는 의미. 그러니까 쓰기는 결국 지적인 구도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진순분 시인은 가장 충실하게 시인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망초꽃 이울고

 

풀벌레도 사라진

 

빈 들녘을 서성인다

 

저승꽃 홀씨 눈 뜨면

 

가슴 속

 

애태우던 일

 

적막처럼 사그라들 때

 

이제는 숨 고르듯

 

순하게 엎드린 들녘

 

해질녘 억새는

 

노을빛으로 빛날 뿐

 

비어서

 

가득한 충만

 

뼛속까지 으늑하다

                                 - <빈들> 전문

 

  늦가을 들녘은 고요하다. ‘망초꽃도 이울고 풀벌레도 사라진 빈 들녘에 서면 적막처럼세상근심도 사라지고 을 벗어내린 사물들은 그저 시시각각 자연스럽게 빛날 뿐어떤 인위적인 연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게 시인의 추구하는 삶, 즉 무위자연이다. 그렇게 다 비워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뼛속까지 으늑충만감을 맛볼 수 있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결국은 그 욕심으로 인해 상처 받고 무너지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시인은 일찌감치 그 진리를 터득하고 비울대로 다 비워두어 더 이상은 그 무엇도 구하려 애쓰지 않기 때문에 평온한 시간을 누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햇살을 쬐는 남자

 

나무통 속에서 살며 퀴온이라 불리었던

 

그대는 푸르른 賢者 누더기 옷 눈부시다

 

벗을수록 욕망은 깨달음에 이르듯

 

한 점 햇살도 고마운 무소유의 향기

 

진정한 디오게네스는 이 땅 어디 있는가

 

훤한 대낮 등불 켜들고 거리를 헤매이듯

 

몸 낮춰 어둠 밝힐 그가 그리운 지금

 

누천년 정직한 영혼 시대의 새가 난다

                                           -<디오게네스> 전문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감출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 원리에 어긋나는 관습은 반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가난하지만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 생활을 실천하던 그가 일광욕을 하고 있을 때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소원을 물었다. 그 때 디오게네스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제발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 시대는 진정한 철학자들을 알아보고 예우해 주던 시대였으므로 왕이 몸소 나가서 소원을 물어보았겠지만, 지금 시대에 디오게네스 같은 현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기는커녕 아마 정신이상자나 무능한 노숙자 취급을 할 것이다. 시인은 고대 그리스의 현자 디오게네스를 부활시켜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는 현대인들의 탐욕스런 정신세계를 정화시키고 싶어 한다. ‘진정한 디오게네스는 이 땅 어디에 있는가’ ‘몸 낮춰 어둠 밝힐 그가 그리운등의 시구에서 보이듯이 시인은 이 땅의 진정한 현자를 찾고 있다. 물욕·권력욕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비움을 실천하는 영혼이 진정 아름다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사실 우리 모두 그렇다. 혼돈의 시대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주어야 그래도 현대인들은 가끔씩 그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산맥들 야위는 늦가을 문수사 숲길

 

하늘이 키운 빛 붉은 애기 단풍나무

 

소슬한 바람이 불 때

 

알았네, 빈 몸임을

 

제 부피를 줄이고 수액마저 비우면

 

단풍 쌓인 길 지우며 무위가 되는 눈물

 

살아서 가벼움이란

 

모든 것 내려놓는 일

                                            -<단풍나무 설법> 전문

 

  자연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애기 단풍나무까지도 스스로 제 몸을 비운다. 그게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지혜이다. ‘제 부피 줄이고 수액마저 비워 두어야 새로운 계절에 꽃이나 잎을 다시 피울 수 있다.

  즉 인간세상도 눈앞의 욕심을 내려놓아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시인은 단풍나무 설법을 빌려 낮은 어조로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참 그다운 방법으로 無爲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일러주고 있다.

  ‘하늘이 키운 빛마저 스스로 지우는 역설적인 과정을 통해 내면세계 사유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데 그조차도 살아서 가벼움이란//모든 것 내려놓는 일로 귀결되어 비움의 철학을 완성하고 있다.

 

바람으로 떠돌던 태고 적 슬픈 뿌리

 

삼나무 편백나무 어둠의 실록 받쳐 올려

 

한 맺힌 조선통신사 만공산 문을 연다

 

경상도 계림에 속해있던 대마도

 

본래 조선 땅이 왜인들의 소굴이 되고

 

역사는 울분 토해낸 꼭두서니 눈물바다

 

목련 피고 벚꽃 피어 먼저 온 봄 때문이랴

 

조국의 혼 서슬 푸른 뿌리의 이름으로

 

현해탄 절벽을 넘어 울음들이 돌아온다

                                                   -<뿌리의 본적> 전문

 

  부산에서 대마도까지의 거리는 50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날씨 좋은 날은 전망대에서 육안으로도 서로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일본은 요즘 독도마저 저들 땅이라고 이상한 짓들을 벌이고 있는데 대마도도 원래는 우리 땅이다. 땅이 척박하고 바닷길이 험해 죄수들이나 수용하는 곳이어서 그냥 방치해 두었더니 왜인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는 사이 일본 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시인은 대마도에서 어둠의 실록 받쳐 올삼나무의 뿌리처럼 우리 역사의 슬픈 뿌리를 보고 있다. 아니 조국의 혼 서슬 푸른 뿌리의 이름으로잃어버린 역사 찾기를 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한 나라는 역사가 바로 서야 그 미래가 밝고 나라의 뿌리도 튼튼해진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칫하면 역사의식이 부족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정책적으로라도 민족적인 자긍심과 뿌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새벽 강이 안개 속에 파르라니 눈 뜰 즈음

 

갈대꽃 흰머리 풀고 강물 속을 걸어간다

 

깊은 곳 문이 열리고 바람 타는 공후의 노래

 

강을 건너 떠나가는 시간의 물 그늘 속

 

백수광부 뒷모습 따라가며 아, 公無渡河

 

죽어서 닿고 싶었던 公竟渡河 환한 그리메

                                                       -<公無渡河歌> 전문

 

 

  이승과 저승 사이에는 그 경계를 가르는 강물이 있다고 한다. 우리 설화에도 저승으로 가는 길에 황천강이 있고, 서양에서도 레테의 강, 스틱스 강 등 몇 개의 강을 건너야 저 세상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물은 탄생의 의미도 있지만 때론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여행지의 밤, 잠 못 들어 뒤척이다 새벽 강가로 나간다.

  하얀 갈대꽃이 새벽 강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시인의 상상력은 수천 년 시간의 계곡을 거슬러 올라 고조선 적 한스러운 이별의 현장으로 내달린다.

시간의 물 그늘 속으로 백수광부가 기어이 걸어 들어가고, ‘죽어서도 닿고 싶환한 그리메를 따라 백수광부의 아내는 오로지 임을 향한 순정한 마음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서라도 그를 따라가고 싶어한다.

  시 속의 화자는 아스라이 잊혀져가던 한스런 어떤 이별을 새벽강가의 갈대꽃을 통해 다시 끌어낸다. 수천 년 전 백수광부의 처를 불러내고 그와 동일시되어 公無渡河’, 임에게 제발 그 강(죽음)을 건너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혹은 그들의 슬픔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강변에서 흔들리는 갈대의 흰 꽃을 보고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건 시인이므로 가능하다 하겠다.

괴변 같지만 사랑은 이별이 있어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먼 시골 노모 생각에 코를 푸는 새벽녘

 

전라도 고창 땅으로 전원생활 떠나신

 

어머니, 큰딸 보듬어 꿈결로 오셨네

 

풋고추 택배 상자 속에 따 넣으신 단감 몇 개

 

쟁반에 앉혀놓고 그림인 듯 바라보면

 

한평생 피땀 흘리신 소처럼 우직한 삶

 

터 잡은 그곳엔 산수 좋고 공기 맑아

 

온갖 새들 날아와 청량하게 운다는데

 

큰애야, 어서 오너라 여기는 쓸 거 많다

                                                  -<쓸 거 많다> 전문

 

  

  이 작품은 콧날이 시큰해지면서도 따뜻하고 맑은 정감들로 가득 차 있다.

시인도 새벽마다 노모 생각에 코를 푼다고 했는데 그 마음 백배 공감한다. 어머니는 그 이름만으로도 눈시울이 젖어드는 존재인데 계신 곳이 거리상으로 멀어지면 마음이 더욱 아리다. 더구나 오랜 세월 가까운 곳에 사시다가 어느 날 문득 멀리 전라도의 시골로 이사하셨으니 새벽녘뿐이겠는가,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풋고추 택배 상자 속에 따 넣으신 단감 몇 개//쟁반에 앉혀놓고 그림인 듯 바라보면//한평생 피땀 흘리신 소처럼 우직한 삶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큰딸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은 여자의 자리보다 어머니의 자리를 매우 굳건하게 지켜오셨다. 어렸을 적에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딸들이 자라 자신도 어머니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다.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소처럼일만 해 오신 어머니 앞에서 자식들은 모두 죄인들이다.

  마지막 부분의 큰애야, 어서 오너라 여기는 쓸 거 많다詩句에서는 자연을 닮은 어머니의 품성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시골에 가서도 한 달을 못 견딘다고 하던데 시인의 어머니는 힘든  와중에도 시골에는 글감이 많다고, 정말 시인의 어머니다운 말씀을 하신다.

큰애야, 어서 오너라 여기는 쓸 거 많다는 문구는 아마 앞으로 명문으로 오래오래 남을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시 쓰는  딸에게 시골에는 글감이 많으니 어서 와서 詩想을 많이 얻어가라고 딸의 글쓰기까지 걱정하시는 그 여운이 가슴에 짠하게 남는다.

 

 

너와 나의 이 아픔

 

뜨겁게

 

눈멀고

 

캄캄히

 

귀 먹도록

 

찰나의 불꽃으로

 

황홀히 타오르고 싶다

 

한 생애에 단 한 번

                                -<폭죽> 전문

 

  누군들 세상살이 아픔이 없겠나.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으며 사는 거지. 어쩌면 그게 사람의 한살이이기도 하지. 그러다 한번쯤은 어느 순간에 뜨겁게 모두를 불살라 황홀하게 타오르고 싶기도 하겠지.

  ‘너와 나의 이 아픔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화자의 아픔이 사랑인지 아니면 현실문제인지, 또는 대승적 차원의 중생구제인지는 모르지만 버리고 비우다가 그래도 한 조각 미련이 남거들랑 한 생애 단 한 번강렬한 폭발음으로, ‘찰나의 불꽃으로’, 활활 태워 흔적 없이 스며들고 싶기도 하겠다. ‘눈멀고//캄캄히//귀 먹도록’.

 

 

 

-한국시학 24호

 

 

 

 

 

 

출처 : 사단법인 한국경기시인협회/계간 한국시학
글쓴이 : 嘉南 임애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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