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강희동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 리뷰

운산 최의상 2013. 5. 21. 11:07

강희동 시집 리뷰지금 그리운 사람

 

               미니멀리즘적인 누드의 해학

 

                                                                                                                     시인   임 애 월

 

  음악이나 시각예술에 있어서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추구한다.

미니멀리즘은, 복잡하면서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흐르는 예술양식에 반발하여 생겨난, 낯선 것들을 탐색하기 위해 형식적이고 세련된 표현들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즉자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의 형태이다.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감각적인 문화예술이 넘쳐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일반적인 시문학 독자들은, 난해한 시보다 읽으면 바로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시들을 선호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쉬운 시는, 형식적으로는 쉽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은 깊고 풍부한 시, 독자들의 정서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있는 미니멀리즘적인 시를 말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독자와 소통하기 위한 시를 쓰려면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해한 표현은 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근래 일부 시인들이 쓰는 추상적인 관념들을 나열한 난해한 시들은, 기교적인 면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독자들은 용이하게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평론가들이 선호하는 잘 쓴 시(?)가 일반적인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와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조금은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강희동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지금 그리운 사람>을 읽으면 저도 모르게 먼저 미소를 짓게 된다. 순박하면서도 호쾌한 그의 이미지와 걸맞게 시편들이 미니멀리즘적인 솔직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들을 읽다보면 가장 원초적인 누드기법 속에 삶의 해학이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월에

산 뻐꾹새

절규

 

뚝 떼어

산 빛 좋은

마루에 널었더니

 

녹음 몰래

분단장한 계집이

이 산 저 산 막 타네.

- 진달래전문

 

  산촌의 툇마루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4월 한낮, 제 짝을 부르는 뻐꾸기 소리 천지사방에 질펀하게 깔리고, 진달래 지천으로 핀 앞산 뒷산의 생동하는 봄 풍경이 청각과 시신경을 자극하며 삼삼하게 그려진다. 거기에 화사하게 차려입고 이 산 저 산 막 타분단장한 계집진달래의 농익은 분홍빛 자태로 봄은 바야흐로 절정으로 내달린다.

  작품 속의 시어들은 겉치레나 형식적인 제스처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사람냄새 짙게 풍기는 시인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다.

 이런 원초적인 표현들은 다분히 의도적인 시적장치로 보이는데 그런 시어들은 여러 시편에서 만날 수 있다.

 

아주 늦은  귀가길

블록 담벼락 틈에

내 연장 뜨거운 속물 솟구칠 때

용케 살아남은 달맞이꽃

빙긋이 날 쳐다보며 하는 말

-오또 아직 살아 있느냐!”

정신이 몽롱한 환청에도

하얀 포말이 넘쳐흐르고

나 또한 혀 꼬부라진 취설로

니는 내 오줌꽃이야!”

달도 없는 어중간한 허리춤

노란 꽃 대가리에 걸죽한

오줌맞이 꽃 우습다고

흐흐흐

비틀비틀

- 취자 선문답전문

 

  진짜 득도한 선승은 모든 언행에 있어서 거칠 것이 없다고 한다.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가, 선문답이란 제목을 붙여 놓고 내 연장’ ‘-오또 아직 살아 있느냐’ ‘니는 내 오줌꽃이야’ ‘노란 꽃 대가리등의 원색적인 표현에서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본연의 누드를 만나는 것 같아 오히려 이상한 친근감이 앞선다. 물론 여기서는 정신세계의 누드를 상상해야지, 육체적인 누드를 상상했다면 곤란하다.

  현대사회에서 포장하지 않은 누드의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과 만나는 일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마음속까지 비어가는 12월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새벽까지 대폿집에서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공허한 낭설들을 늘어놓아도 담담히 들어줄 사람, 가끔씩 말다툼을 하면 또 어떠랴. 그러다가 한쪽이 먼저 쓰러지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밤새 지키고 있어줄만한 그런 친구가 목마르게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어디서든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교양 있어 보이지만 표정이 인형처럼 늘 똑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서글프다. 가끔씩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는 사람냄새 나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사람들 사이에 거리를 두고 신비주의 차단막을 드리우게 하는 게 뭔지 알 것도 같지만 누구도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게 편하고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볼 때 강희동 시인에게선 진한 사람냄새가 난다. 우선 그 특유한 억양의 화법과 사투리에 정감이 간다. 애써 멋지게 꾸미려 하지 않아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그의 최고의 매력이다. 시에서도 그런 그만의 독특한 화법이 보인다.

그의 누드 시편들을 조금 더 만나보기로 한다.

 

내 변이

익어 문드러진 똥이 안 되고

말라빠진 짜장면으로 밀어내면

변란이 시작되고

기어이 똥틀이 고장나는구나

노랗게 하늘이 일그러지고

웃음도 노여움도 똥틀의 안부 앞에

속절없이 낙엽이 되는구나

매일 흘러내리는 변기통 위에 걸터앉아

힘겨운 일상 밀어 내기에 힘주고

잘 익은 된장을 기다리며

또 하루 똥틀의 안부를

아침, 물소리로 내린다

- 변의 안부전문

 

  모든 예술행위는 카타르시스와 유관하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의 창조자는 배설의 욕구를 작품으로 분출하고 수혜자는 작품을 자기 방식으로 공유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화시킨다. 문화적 카타르시스가 잘 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카타르시스의 직접적인 행위를 표현한 위의 시에서도 그의 천연덕스러운 누드기법이 돋보인다. ‘똥틀’ ‘밀어 내기’ ‘잘 익은 된장등의 시어에서 이제는 다소 익숙해진 그 특유의 누드화법이 잘 익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침마다 변의 안부부터 체크해야 하는 시대, 오늘도 의 안부를 먼저 살피며 아침, 물소리로 내리는 하루를 시작한다. 익어 문드러지면 잘 빠진 이고 그렇지 못하면 가늘고 검은 짜장면이 되는 변의 안부로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인들의 고단한 아침.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변비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제 분수에 맞게 살며 채식을 위주로 하던 농경사회의 변의 안부는 늘 쾌청.맑음이었다. 언제부터였나 잘 먹고 잘 사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람들은 어제 먹은 과분한 것들이 탈이 나지는 않는지 아침마다 조바심을 해야 한다.

  수 년 전부터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과식하다가 결국 탈이 난 어느 행정 관료가, 요즘 신문의 지면을 독차지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그저 씁쓸할 뿐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잘 다스리면 창조의 길을 열기도 하지만 때론 파멸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추락시키기도 한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시인이 이 시에서 표현하고자한 것이 단순한 대장의 순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의 탐욕스러움을 해학적으로, 은유적으로 꼬집고 있다고 본다. 먹어서는 안 될 것까지 넘보며 과식하는 위인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끌어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시를 쓰는 사람들이 그저 내 뱃속의 안위만을 걱정하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때 강희동 시인의 는 사실은 누드를 가장한 깊숙한 은유의 골짜기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겠다.

 

내장 순환이 되지 않아

불끈 핏줄 선 게이트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다

가지 말라고 차단기 내려지고

저장된 돈길을 따라 아우성으로

더 빠른 소통을 위한 하이패스 진행을 재촉한다.

- 고혈압 2부분

 

  사람 몸속 혈관의 길이는 약 12Km라고 한다. 이 길이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6. 초고속으로 운행을 하는 피돌기, 그러다가 동맥이나 정맥 등 중요한 도로가 막히면 그야말로 대형 사고이므로 사람은 맥없이 쓰러지고 만다.

  언제 막힐지 모르는 12Km돈길을 따라 아우성치며 내달리는 하이패스형 인간들의 질주는 오늘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달도 찌그러진

늦은 밤

취자 왈

학문은 똥구멍이요

- 이는 오줌 떨치는 소리라

흐흐흐-.

- 취자시론醉者詩論전문

 

  이 짧은 시에서도 고상하게 윤색하지 않은 미니멀리즘적인 누드기법이 돋보인다. 달이 이지러진 밤이 아니라 찌그러진밤에 거나하게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길, 담벼락에 대고 시-하면서 어떤 詩論을 곱씹었는가, 학문은 항문과 발음이 같으므로 학문은 똥구멍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서슴지 아니한다. 물론 이 시의 화자는 취자이므로 그런 표현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겠다.

  취중 진담이라고, 시 속의 화자는 죽은 학문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행세깨나 하려하는 자들, 미숙아가 된 를 껴안고 그래도 제 새끼만은 잘 났다고 으스대는 팔불출시인들을 질타하는 것으로 보인다. 돌아서며 홀로 흐흐흐-’ 웃는 대목에서는 저절로 함께 미소를 짓게 된다. 시인의 평소 분위기를 떠올리면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의 해학적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매우 서정적이면서 고요한 시편들도 많이 보인다.

 

너무나 쓸쓸하여 내가

나에게 편지를 쓴다

 

누군가가 잊혀 오랜 지난 날

삐걱이는 목조 교실 벗어나는 풍금소리나

초가지붕 굴뚝을 오르는 아련한 연기 같은

떨림이 조금씩 살아올라

문풍지 우는 두근거림으로 손 내밀 때

떨림은 쪽마루를 내려와 이내 뒷담장 댓잎을 흔들고

마을 고샅을 휘돌아 추운 세상에 맞서 사시나무로 떨며

삭막과 암담에 몸 움츠리다 비로소

오래 떠나 감감한 기차소리를 듣는다

 

길이 끊기어진 기차와 간이역

먼 모습과 환청으로 오가는 엽신

 

너무나 쓸쓸하여 나에게

오래 머무르던 편지를 보낸다.

- 엽신전문

 

  가슴 두근거리던 청춘의 간이역에서 강물이 풀릴 때쯤에 누군가를 짝사랑했거나 그리워한 기억 하나쯤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부끄러워 친구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괴로워하며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목조교실 벗어나는 풍금소리’ ‘떨림이 조금씩 살아올라’ ‘나에게 오래 머무르던 편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자체발광이라는, 빛나던 청춘을 아슬아슬하게 건너왔다.

지금은 오래 떠나 감감한 기차소리가 된 지나간 추억의 강물소리를 환청으로 듣는 쓸쓸한 계절이 다가왔을 뿐이다.

 

겨울반달 머무른 월정사 다한 자락

매운 바람마저 고요히 머무는 날

나목의 빈 가지에 새벽달 걸리고

잔잔히 별빛 부수는 소리

미몽을 흔드는 범종의 울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막히고

문수보살 옷자락 달빛 쓸어담으면

파랗게 얼어가는 동자승 바알간 볼

꽃불처럼 가늘게 떨다가

포르릉 동박새 한 마리 되어

세상 밖으로 묻힌다.

-월정사전문

 

  이 시의 분위기는 사뭇 고요하다. ‘바람마저 고요히 머물고 나목의 빈 가지에 새벽달이 걸린 겨울 山寺의 새벽, ‘미몽을 흔드는 범종소리에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고 화자는 말하고 있지만 기실은 스스로 세상으로 향한 덧문을 닫아걸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요한 겨울의 산사에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복잡하고 치밀한 세상을 잊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문수보살 옷자락에 내리는 달빛처럼 청정심으로 세상의 오욕을 깨끗이 닦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은 아래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내 살아가는

부대낌의 흔적

얼룩진 옷가지

낯 붉어지는 음밀함 가리고

돋보이고자 형형색색 드러낸

빛바랜 시간의 흔적 빨아낸다

 

노란 일상

마뜩해지려고

허술해지려고

부셔대는 세탁기

 

겨울나목도 얼어있는

하늘 파랗게 입고

눈발은 세상을 하얗게

빨아내고 있는 것이다.

- 빨래전문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세상을 하얗게 빨아내는 세탁기를 연상하는 시인의 시각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낯 붉어지는 음밀함 가리려고 눈이 내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늘 떳떳하고 맑기만 하겠는가. 가끔씩 알게 모르게 죄업을 쌓아가며 사는 게 인생이지. 그러다가 한번쯤 모든 업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세탁기는 돌아가리라. 얼룩진 부끄러운 흔적들 하얗게 지우며 지상의 어두운 곳으로 함박눈은 밤새 내리리라.

 

훌훌 김이 디스코 추는

설설 끓는 가마솥에 누워

못 먹어 툭 튀어나온 주둥아리와

두 귀 쫑긋 치 세우고도 좋은 소식 안 들린

전 생애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죽어서도 국밥이나 되어 남의 시장기 속에

소주 더불어 애꿎은 울분이나 달래다

새우젓 청양고추 얼얼한 세상맛에 버물어

내장이나 간덩이 제 살 다 주고도

욕심 없는 돼지국밥이나 되어 장터 허름한

빗방울 낡은 썬팅 유리 사이로 던지는 선지국밥집에서

후후 불어 씹어 후루룩 목젖 너머로 넘겨 살아 오르는

저 춤추는 김발 더불어 돼지국밥이나 될까

누군가의 살아가는 힘이 되는 장터

돼지국밥이나 될까

- 돼지국밥이나 될까전문

 

  돼지국밥은 장터에서도 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먹거리 중의 하나인 전통음식이다. 오일장이 선 읍내 장터 한 구석의 가마솥 위로 훌훌 김이 디스코 추는겨울 한낮, 일 년 내내 힘들게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때문에 기운 빠지는 농민들은 소주 더불어 애꿎은 울분이나 달래며 돼지국밥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일 년에 재산이 수십억씩 불어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육신 아끼지 않고 죽어라 일해도 자식 등록금 내주기는커녕 목구멍에 겨우 풀칠이나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말로만 무성한 더불어 나누는 삶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요즘, 경제대국인 미국의 월가에서부터 시작된 경제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것을 아침마다 헤드라인 기사로 보면서,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분배가 잘 되고 복지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는 요원한 것일까.

  돼지는 먹는 욕심 외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하지만 마지막엔 내장이나 간덩이 제 살 다내어주는 욕심 없는 돼지국밥이 되어 육보시로 삶을 마감한다. ‘두 귀 쫑긋 치 세우고도 좋은 소식 안 들린 전 생애를 마지막 피 한 방울마저 남을 위해 선지국밥으로 기꺼이 털어주고 떠나는 돼지의 삶에서 제 욕심만 차리는 인간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고 시인은 질책하고 있다.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게 없으므로 서민들의 장터에서 기꺼이 춤추는 김발 더불어 돼지국밥이나 되고 싶다는 화자는 누군가의 살아가는 힘이 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를 염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 반성할 일이다.

 

종은 제 몸을 때리며

청아한 소리 토한다

 

누군가 때리는 자 있어

소리로 살아 종이 되었다

 

맞을수록 넘치고 번져

오래 맴도는 여운

 

나 누구에게 예배당 종처럼 맞아

청아한 제 소리 낼 수 있을까

 

스스로의 울음으로 날아가

미몽을 깨우는 종소리 될 수 있을까

- 시인전문

 

  이 시에는 스스로를 낮추고 자책하며 혹독한 자기수련을 통해 시인다운 시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나타나있다.

  시만 잘 쓴다고 시인다운 시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시인은 영혼이 아름다워야 한다. 정신세계가 맑고 깨끗해야 시인다운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저 자신을 위한 욕심으로 가득하다면 독자들은 참 실망스러워 할 것이다.

  얼마 전, 시쳇말로 잘 나간다는 모 시인의 강연을 듣고 온 한 지인이, 강연하는 내내 그 시인의 거드름이 하늘을 찌를 정도여서 정말 안타까웠다는 이야기를 내게 전해 주었다. 서글픈 일이다. 시인의 이름 하나만으로 이미 훌륭한 위치에 이르렀으니 조금 더 겸손해지면 금상첨화일 텐데......

요즘은 자기를 알리는 속칭 자기 PR’시대라고들 하지만 사람은 겸손할 때 더욱 아름답다. 스스로의 미몽을 깨닫지 못한 채 오로지 저 잘난 것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이려고만 애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사는 셈이 된다. 잘난 사람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잘나 보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가 보다.

  그런 틈바구니에서도 시인 자신은 제 몸을 때려서라도 청아한 제 소리를 간직한 시인다운 시인,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갈망은 다음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사람의 그늘에서도

늘 푸르게 서 웃는 함박꽃

새삼 사람이 그립다

 

촘촘히 삶을 바느질하는 사람의 마을

재봉틀로 바삐 지나간 시간의 흔적 속

오래 머무름 없이 그리운 사람 있다

 

세상 모퉁이 이마 맞대다보면

부드러우며 단호하고 바쁘게 여유로운

문득, 반듯하게 단정한 사람 냄새 젖어온다

 

꽉 찬 여유, 동양화의 여백으로 그냥

그 자리에 허허로운 듯 진솔한 그런 사람

지금, 그리워진다.

- 지금 그리운 사람전문

 

  사람은 많다. 이 지구상의 인구는 약 70억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하루 24시간을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새삼 사람이 그리운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이 바라는 세상은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람 냄새풍기며 사는 그런 세상이다.지금 그리운 사람을 이 시집의 제목으로 쓴 이유도 그런 시인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까닭이다.

이 시대의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는 까닭이다.

  ‘오래 머무름없어도 반듯하게 단정한 사람 냄새’ ‘동양화의 여백으로꽉 차지 않아 허허로운 듯 진솔한 사람이 그리운 까닭이다.

 

 시인의 바람처럼 시인다운 시인, 사람다운 사람으로 계속 건재하시길 빈다.

 

출처 : 경기문학인협회
글쓴이 : 嘉南 임애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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