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박병두의 해남 가는 길
- 삶을 기억하는 세 가지 자세-
유문선(한신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1.
흔히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는 허균은 기실은 매우 다채로운 빛살을 뿌리고 있는 인물이다. 서자도 아닌 얼자인 길동과 달리 허균은 청백리 허엽의 적자였으면서도 길동의 생각에 바탕을 이룬 혁명적인 사유를 펼쳤고, 유가에 해박하면서도 불교와 도교에 조예가 깊었으며, 스스로 많은 시문을 남기면서 동시에 역대의 적출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밝은 감식안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당시 세상의 그릇으로 담아내기에는 넘치는 재주와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한쪽에서는 유유자적한 은둔자들의 삶의 일화를 모은 ������한정록������을 펴내기도 하였으니 채 오십에 세상과의 인연을 끊은 사내로서는 참으로 얼굴이 많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정록������에는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화들이 많은데 다음도 그 하나.
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老子)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가르침이 없으신지요?”
“고향을 지나거든 수레에서 내리거라. 알겠느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나거든 종종걸음으로 가거라. 알겠느냐?”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알겠느냐?”
“강한 것은 없어지고 약한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한 상용은 돌아누웠다. - 정민, ������한시미학산책������에서 인용함
양생(養生)의 길을 터놓는 노자에게조차도 스승은 삶의 자세야말로 천하의 일이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긴다. 삶이란 그리도 무거운 것일까?
박병두의 ������해남 가는 길������을 읽으며 허균과 ������한정록������의 한 구절을 떠올린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재와 다정을 갖춘 시인과(머리시 「자화상」을 보라) 삶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묻는 시집이 호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2.
고향 지날 때 수레에서 내리기.
노자는 이를 고향 잊지 않기라고 풀었다. 고향을 잊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고향이란 말에는 여러 겹의 층이 쌓여 있다. 먼저 그곳은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다. 그 곳에서의 생활 방식이, 의식과 무의식의 향배가, 그리고 말의 질서와 쓰임새가, 몸과 마음과 입에 착 달라붙기에, 대부분의 경우 더할 나위 불편한 지금 낯선 곳에서의 생과 대비하여 겹쳐 두고 수시로 불러낸다. 그 특수성이 한껏 과장될 때 우리는 그것을 향토 혹은 토속이라고 부른다. 한편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온 세상의 종족이 역사의 유년기를 유토피아로 상정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가없는 그리움의 정서 속에서 환기한다. 그 삶이 넉넉했든 팍팍했든, 구체적인 편린들이 사라졌든 남아 있든, 그리움 속에 함뿍 담는다. 또한 고향은 생의 근원적 규정이기도 하다. 그곳은 단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인문지리적 환경 및 사회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그곳을 고향으로 갖는 사람들을 즉자적·대자적으로 규정한다. 이 규정성은 삶이 부평초와 같아진 지금의 나날에도 생이 종점에 이를 때까지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자적 인식 속에서 생의 출발점은 바로 현재적 생의 존재 근거를 끊임없는 묻고 답하는 잣대가 된다. 노자의 고향 잊지 않기란 아마도 이를 두고 이르는 것일 터이니 고향이란 결국 현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해남 가는 길������의 화자가 태어나 자란 곳은 물론 전라남도 해남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에는 전남에서 가장 큰 행정 구역인 해남 땅이 너무 넓다. 좀더 자상한 눈길로 살펴 보면 시집 속에 상공리, 덕호리, 연호리, 금송리, 해월리, 초송리, 우황리 등 정겨운 리 단위의 명칭들이 보인다(리 단위의 지역 명칭은 어찌 그리 한결같이 정다운 것인지!). 이쯤 되어야 ‘고향’이라 할 만할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해남군 산이면과 황산면에 있는 마을들이다. 산이와 황산은 해남 읍내에서 오른쪽, 그러니까 진도나 목포를 향해 나가는 길 쪽에 있는 곳으로, 공룡 유적지가 있는 우황리(우항리)를 제하고는, 내륙의 외지인들이 쉬 들를 수 있는 곳들이 아니다. 서해 바다에서 끝도 없이 많은 크고작은 물길들이 스며들어 논밭 사이를 갈라놓는 곳이다. 해남 읍내를 거쳐 국도를 타고 땅끝으로 가는 관광객들의 귀에는 좀체 들리지 않는 바닷물 소리가 ������해남 가는 길������에서 쉼없이 철썩거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록으로 무장한 고향 들녘에 일어서는 풀과 같이, 곱게 물든 단장(短牆)들을 지나,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며 황토 흙먼지 일으키고 해남으로 달려간다. 어머님 병환으로 눈물 흘리며, 리어카 거북이걸음도 바쁘게 울던 날, 유년의 아픈 추억들을 클래식 선율에 실어 해월리 바다에 묻는다. 어머님 밥숟가락으로 호되게 밥 먹던 누나의 세월도 옹고집으로 울어대며, 뱃머리언덕에서 줄행랑치던 등굣길, 내 추억의 바다는 이제 없다. 깊은 잠에 취해 있는 밤, 무엇이 서러워 옹달샘은 멈추지 않고 바다로 애정을 다 흘려버렸을까, 밤새워 연애하던 친구 하나둘 소식과 동네어른 안부를 물어볼라 치면 철썩철썩 파도가 모래사장을 휩쓸고, 밀물썰물 다녀간 뒤로 하나둘 사라진 추억, 해남 가는 자동차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어디로 갔을까」 부분)
해(海)와 육(陸)이 접한 이 곳에서의 삶이 어떠했을까는 그야말로 불문가지이다. 위 인용시에서도 보이듯 그것은 병환과 눈물과 아픔과 서러움과 흐느낌과 그리고 죽음과 등가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인정들”, “향수보다 짙은 우리만의 노래”, “살 부대끼며/애정을 나누던 시간”으로 애써 기억하며 「설원」, 「자취방」, 「소풍」, 「뱃머리 바다」의 세계를 불러낸다. 이 모순은 오로지 그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 고향은 그러나 지금의 시인에게는 부재중이다.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낯선 도시의 신작로/어둡고 긴 터널길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작로 끝, 터널길 밖에서 시인은 어떠한가? 시인은 스스로를 들꽃이라 부르며 “들꽃이여, 유랑의 시간이 즐거운가”라고 중얼거리듯 반문의 형식으로 답한다. 도대체 “생이란 어차피 모천을 찾아가는/연어 한 마리의 일생” 혹은 “저물면 새떼가 갈대숲에 내려앉”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향(離鄕)의 삶이 즐거울 리 없다. 그러하기에 그 마음은 바로 고향을 향한다.
해남 가는 길
소금꽃 끝없이 피어나는 가슴
낙타등 같은 하루를 두드리며
해남 가는 길
발바닥에 물집 잡히듯 잡히는 그리움
해남 가는 길
가면 갈수록 끝없이 목마른 그 길 (「해남 가는 길」 부분)
아쉽게도 그는, 그러나 거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이, 온전히 해남으로 자신을 보내지 못한다. 해남으로 가는 것은 ‘그리움’뿐이다. 머리는 해남에 가 있지만 몸은 의연 ‘낯선 도시의 신작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정이 그러하니 가면 갈수록 목마른 길이고, “끊어질 수 없는 길”이지만 동시에 “끝날 수 없는 길”이다. “몇 켤레 그리움을 갈아 신으며” 갈 수 있을 뿐이고, 오롯이 그리움만이 남을 뿐이다. 하기야 돌아갈 수 있다면, 가서 그리움을 지워낼 수 있다면, 누군들 ‘예전 고’(故)자를 써서 고향이라 부르겠는가?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만을 남긴 채 시인은 자신의 삶을 자기조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고향 지날 때 수레에서 내리기’의 참 모습이다. 고향 잊지 않기 혹은 해남 사람으로 살아가기의 온당한 자세이다. 그리움으로 가득 한 해남 가는 길은, 현실에서는 “순풍이 사라진 바다…해난의 길”이다. 다소 극적으로 말하자면, 바닷가에 붉게 피어난 해당화를 바라보면서 “누가 저리 피 철철 흘리며 갔나”를 떠올리는 곳이다. 그 정점에 “금남로에서 총알 밥이 되어간/대학생이었던 사촌형이 스스로 분신하는지” 오월과 비명이 불타올라 “마늘 순마저/붉디붉게 타오르”는 고향이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만을 떠올리는 것은 과도한 독법 혹은 근시안적 단견이리라. 죽음의 너울이 깊게 일렁이는 땅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보다 근본적으로는 호남이 겪은 근대 백년의 격동일 것이고 나아가서는 누천년 이곳에서 살아온 민초들의 숨결이었을 것이다. 이 격동과 숨결이 지금 시인의 삶을 근원적으로 규정할 터인데, 그러나 시인은 더 이상의 말을 아낀다. 아무리 곡진하다 하여도 그 이상은 사족이요 췌언이라는 것일까? 대신 그 자리에서 시인은 “저 죽음마저 삭히고 삭혀/기어코 죽음을 툭툭 털고 일어나/녹음 방초로 부활하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것이 “불멸의 사랑”, “불멸의 청춘”으로 가는, 곧 “불멸의 길”임을 선언한다.
3.
높은 나무 아래에서의 종종 걸음.
노자는 이를 노인 공경하기라고 풀었다. 노인 공경하기란 무엇일까? 인간과 가장 닮았다고 하는 영장류에서조차 늙은 개체는 공경의 대상이 아니다. 커녕 뒷전으로 밀려나 모진 배제와 하대에 놓이기 일쑤이다. 인간사에서도 이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윤리적 층위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 문명이란 것이 집적 위에서의 전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 극점에 이르면 노인은 마침내 절대적·초월적 존재로 화하게 된다. 전란의 와중에서도 신줏단지를 목숨처럼 모시고 다닌다든지 이스라엘의 족장이 늘그막에 얻은 외아들을 번제의 희생물로 선뜻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필경 이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인식의 결정화 과정에서만 윤리를 생각하는 것은 대체로 부로(父老) 즉 아비로 표상되는 측면만을 살피는 반쪼가리에 지나지 않을 터, 늙은 어미에 대한 다함없는 공양은 또 무엇인가? 문명화의 인자로서의 아비와 달리 어미는 바로 생명이다. 나의 생을 존재하게 한 근원이니 그것은 아비의 맥락보다도 오히려 더 근본적이다. 그리고 무의식에 닿아 있는 즉자적 존재이자 감성적 존재이고 직접적으로 대타화된 표상이다. 우리의 오래된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에서는 이 둘을 합하여 ‘부생모육지은’이라 일렀지만, 여기서 생·육의 각각의 주체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터이고, 결국 노인 공경하기란 시간의 축 위에서 사회화된 종족의 구성원으로서의 ‘나’와 생물학적인 개체로서의 ‘나’의 의미를 새삼 묻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 점 공간과 연관된 ‘고향’과는 대비되면서 또한 상보의 관계에 놓인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해남 가는 길������의 특징은 어머니가, 그것도 어머니의 죽음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아버지의 전화」에서처럼 아들을 걱정하거나 혹은 지청구를 하는 모습으로 가끔 전경화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루엣처럼 존재한다. 대신 집안의 살림과 가족의 생계 그리고 생육과 교육을 도맡고 있는 것은 어머니이다. 시인은 끊임없이 그런 어머니를 내세우고 또 고생 끝에 영결한 어머니에게 애틋함과 죄송함을 숨김없이 전한다.
마른 가지처럼 야윈 어머니
그 주름진 손 한 번 변변히 잡아드리지 못하고
고향 떠나던 날
하늘이 대신 진눈깨비로 울어주었네.
첫 월급 타서 내의 사드린다는 약속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버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런 상여 옷 한 벌 해드렸네.
눈송이처럼 가벼워진 어머니
어이야 디이야 땅 아래 쌓이고
언 땅에 누이고 돌아오니
하늘이 먼저 아시고 흰 이불 덮어주셨네. (「눈길」 전문)
오버랩되고 있는 내의와 수의와 흰 눈은 어머니의 고생스러운 일생, 그리고 거기에 시리게 바치는 때늦은 보은의 표상이다. “거센 파도는/슬픔의 푸른 갈기를 달고/방문을 두들기며 서럽게 울다가/바다로 돌아”간다며, 어머니를 두고 시인은 끝없는 자책감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그리움과 자책감이 도드라진 데는 아마도 시인의 개인적 사실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은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아비와 달리 어미는 직접적이고 또한 감성적인 대상이며, 저 무정형과도 같은 생의 표상이기에 ‘살아있는 어머니’는 송가의 대상은 될지언정 시적 대상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고전적인 품격으로 지어진 위당의 「자모사」가 그러하고 반짝이는 슬픔으로 형용된 박재삼의 「추억에서」가 또한 그러하다. 문제는 아비의 부재인데, 이는 고향이 그리움으로 호출되는 사실과 안팎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 또한 우리 시사가 일반적으로 내보이는 양상이어서 ������해남 가는 길������의 시인에게 탓을 물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니다.
4.
약한 혀와 강한 이.
노자는 이를 약한 것은 남고 강한 것은 사라진다고 풀었다. 좀더 일반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유능제강(柔能制剛)이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나무 뿌리가 돌을 파고 드는 형국이다. 삶의 역설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말이니 그 결과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과정 혹은 자세를 내세우고자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해남 가는 길������ 특히 제2부는 고향과 어머니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경찰관으로 살아가는 시인 자신과 그 동료들의 애환과 고뇌가, 혹은 그의 반려자나 혈족에 대한 사랑이, 또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이웃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때로는 재미있게도 뉴타운 정책 같은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날선 발언들도 있지만, 그 요추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나’이다. 서정시가 근본적으로 나의 예술인 이상 이 사실 자체야 그리 대수로운 것일 수 없다. 문제는 그 자세와 정서일 터.
겨울,
빈 벌판 같은 휑한 가슴들
눈물로 출렁이고 출렁여
은빛 이랑 하나 이루었네.
세상에
누구인들 울면서 태어나지 않았겠느냐.
누구인들 홀로 울어보지 않았겠느냐. (「혼자 울지 않기를」 제3연)
이같은 세계 인식과 자아 설정은 적어도 시집 내에서는 완강하게 유지되면서 ������해남 가는 길������을 지배하고 있다. 주로 어둠이나 겨울 혹은 험상궂은 바다로 표상되는 세계에 맞서는 시인에게 세상살이는 “거친 파도 위에서 원치 않던 험난한 항해”이고 항해하면서 “바람과 싸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삶은/한낱 세상과의 끝나지 않은 싸움”이며 그 속에서 필경은 “누구나 한번은 홀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 된다. 그런 만큼 세상을 같이 하는 타인들과의 관계는, 오고 가는 상하행 철로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 있”는 길, 혹은 “회신해 주지 않”는 질문과도 같은 것 또는 “사랑과 이별의 애잔한 그리움이 교차”하는 양상이 된다. 결국 가장 큰 적은 험난한 세상도, 고달픈 나날도 아닌 바로 외로움이다.
외로움의 경도(硬度)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나는 하염없이 기다린다”라거나 “내 어리석음을 그윽하게 바라보는/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차라리 통상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때로는 “단단히 입을 다물고 있는 우편함 속에서/열리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같은 견고한 심상을 만들어 내기에까지 이른다. 그런 눈길로 바라보는 세상은 “신음을 음표로 삼아/침묵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세계이어서 “빈 거리에 비바람 불고/어디론가 끝없이 사람들 날려가네.…오늘은 어느 길 잃은 새가/둥지를 잃고 비에 젖는가”라는 탄식과도 같은 목소리를 자아낸다. 이 비관과 탄식은 자칫 시인의 영혼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치유의 기제가 필요하다. 도저한 고독으로 인한 폐쇄와 비탄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 것인가? 그 지양이 처세론적인 담론이나 인생론적 명제 혹은 의례적인 자기 위로나 자기 기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찬바람이 쓸고 간 겨울밤
어느 이름 모를 사내들과 술잔을 피해 걸어간다.
벽면 유리틀 사이로
내 몸 일부가 삶에 끼워지고
투시한 내 모든 감성들이 쓰이면서
날이 무딘 시어들을 찍찍 긋고 수정하면서
내 고독은 이름하여 슬픈 얼굴이 되었다.
책상 유리면에 반사된 얼굴과 마주하고 소주잔 두 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겨울밤은 깊어만 갔다.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처럼 점멸하는 시어들
밤하늘엔 눈송이들이 날리고
눈은 쌓이고 쌓여
온 세상이 새하얀 원고지처럼 덮이고
겨울밤, 나는 시 한 편을 쓰고 있다. (「겨울밤에 쓰는 시」 전문)
그것이 바로 시 즉 문학이었다. 세상 만물과 나와 성정을 모두 원고지에 쏟아부음으로써 시인은 거짓 없는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박병두에게 문학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자기 고백이자 자기 치유이다. 그러하기에 “빗물과 함께 흘려보내는 사람들의 눈물 속에는/욕심도 집착도 분쟁도 분노도 없다.”는 진술은 더할 나위 없이 진솔하고 절실하다.
세상과 맞선 시인은 위태로운 경로를 통해 고백이자 치유로서의 문학에 도달하고 그로써 자신을 비울 수 있었다. 물론 그 비움이 얼마나 영속적일지는 그 누구도, 심지어는 본인도 장담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문득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문학의 힘을, 텅 비움의 위력을 보는 것이니 이와 유능제강 사이에는 참으로 틈이 없을 것이다.
5.
뱀을 그리다가 발까지 그려 술잔을 앗긴 종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복숭아나무 오얏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밑에는 길이 난다는 것까지도[桃李不言,下自成蹊]. 기껏 더 해 볼 수 있는 일이란 해남 바닷가의 푸른 물결이나 한 번 더 보는 것이었을 것을.
추천사
박병두 시인에게 해남 가는 길은 또 다른 ‘무진기행‘이다. “물집 잡히듯 잡히는” 그립고 아픈 길이며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영원으로 통하는 길이다. 오죽하면 “죽으러 가고 싶어진다”고 고백을 할까. 이 길을 지배하는 상상력은 붉은 상처의 이미지에서 나온다. 가난이 드리워진 가족사, 말하지 못한 역사의 뒤편, 그리고 정훈관이라는 현재의 신분과 시인으로서의 고뇌 사이에도 이 단심(丹心)이 작용한다. 마음이 뜨거운 시인은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살고 있지만 실은 늘 해남으로 가고 있다. 남도 사투리가 그의 몸을 떠나지 않고 그의 정신을 이끌고 가는 것처럼.
- 안도현(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멀리 있는 것은 다 그리움이다. 타지를 떠도는 이방인이라는 자의식 속의 시인에게 “있어야 할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던” 그 태어난 곳과 그곳의 어머니는 그리움의 대상이자 그리움의 모태이다. 어릴 적 “이유 없는 꿈을 키우며 부르주아 냄새에 이념도 없이 아파했”던 그는 비로소“해남 가면 꿈꾼다”.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치르는 곳으로, 부재하는 사람들의 혼들을 불러내는 성소다. 언젠가 그는 “넓은 곳의 바람과 풍랑과 세상의 풍성함에 대한 이야기를 가득 싣고”귀향할 것이다.
- 이윤훈 시인
고향을 등지고 사는 요즈음 고향인 해남을 향한 이 징한 노래인 박병두의 시세계는 이 시대에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나직한 목소리이나 해남으로 가면서 질곡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그는 해남으로 가면서 질박한 표현을 얻어내고 시의 본질을 충족시키고 있다. 해남 가는 길을 통해 폐쇄적이고 금기적인 세상을 마음껏 노래하는 절대자유도 보여주고 있다. 해남으로 가는 그의 시 보폭과 길을 뜯어 변주해 내는 시는 잘 삭은 홍어처럼 깊은 맛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의 낮은 노래는 낮기 때문에 우레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오늘도 내일도 내내 해남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그가 해남으로 가고 있기에 우리시의 영역은 넓어가고 잊고 있던 역사의식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치열할 수밖에 없고 남도의 노래처럼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흥이 있는 것이다. 김왕노 시인
해남은 지식인이 스스로를 유폐하는 공간이다. 고산 윤선도가 스스로 해남의 금쇄동에 갇혀 세상과 이별하였듯이 지식인에게 해남은 고통의 땅이다. 그런 해남에서 세상에 대한 고통과 문학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정조의 꿈과 이상이 담긴 수원으로 올라온 이가 바로 박병두 시인이다. 고향을 떠나온 시인은 세상과 냉혹한 현실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루기도 한다. 해남의 민중성과 수원의 진보성을 결합시킨 그는 다시 생명의 승화를 이루고자 해남 가는 길과 시인의 장편소설 그림자밟기 영화를 통해 박병두 시인만이 지닌 사람냄새 나는 따뜻하고 진솔한 가슴으로 독자와 만나게 될 것이다.
- 김준혁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문학 > 詩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성수 시인 첫 시집 「개척자」 리뷰 / 임애월 (0) | 2013.05.21 |
---|---|
[스크랩] 진순분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비움의 美學, 구도적인 詩 쓰기 (0) | 2013.05.21 |
[스크랩] 김용길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제주 바다의 隱喩 (0) | 2013.05.21 |
시는 왜 쓰는가? (유희봉) (0) | 2013.03.19 |
[스크랩] 시란 무엇인가-시인 44인의 깨달음 (0) | 2013.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