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김용길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제주 바다의 隱喩

운산 최의상 2013. 5. 21. 10:59

<김용길 신작 소시집 작품해설>

 

                           제주 바다의 隱喩

                                                                                           임 애 월 시인

 

 

  김용길 시인은 들의 섬 제주에서 태어나 군복무 시절을 제외하고는 6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를 쓰며 살고 있다. 등단한 지 50여 년 가까운 반세기 동안, 그는 제주바다의 고유한 빛을 살아 숨 쉬는 대상으로 육화시키며 향토성 짙은 작품들을 써내고 있다. 서귀포 바다의 깊은 속성까지 잘 아는 시인, 그의 에는 서귀포 바다의 깊은 체취가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려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신작시 10편도 모두 제주의 바다와 섬을 소재로 쓴 작품들이다.

넘실대는 바다를 앞마당 가득 들여놓은 시인의 세계는 그래서 기름지고 풍요롭다.

 

  바다는 생명을 상징한다. 생명체가 처음 생겨난 곳이 바다라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바다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원초적 고향인 바다를 꿈꾼다.

  순종과 겸손의 상징인 일반적인 의 이미지와 바다는 다른 의미성을 지닌다. 바다는 창조와 생명의 신비로운 상징이기도 하지만 때론 혹독한 고난과 시련을 동반하기도 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끝없이 새로운 의미를 재창조해 내는 immortal적인 경외의 대상이다.

 

수 천 수 만 개의 뼈들이

일어서고 있다

어둠을 찢고

날 세운 바다의 흰 뼈들 사이

갈퀴 같은 손들이 기어 나와

섬을 갉아대었다

 

섬이 돌아눕는다

알몸인 채로

등 푸른 襁褓에 싸여

밤새 뒤척이더니

이제 바람 흐르는 海霧

서서히 일어나는 섬

 

바다는 섬을 업고

건너오고 있다.

             ·새벽 바다전문

 

  위의 시 새벽 바다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읽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시작은 역동적이고 능동적이다. 주체적인 의지를 상징하는 들이 일어서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다시 일어서는 삶은 수동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고 바로 세울 수 있는 자존적인 삶이다. ‘어둠을 찢고날마다 새롭게 알몸으로 태어나는 섬들의 푸른 강보를 걷어내는 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너스가 탄생한 바다의 거품을 연상하게 한다. 거품은 생겨나자마자 금세 사라지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타자의 새로운 탄생을 거들고 도와주는 모성본능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바다가 잉태한 생명체들을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파적인 존재이다. 그 결과 바다는 건강하게 순산한 섬을 업고어둠을 건너 새벽을 연다.

 

그런가 하면 바다는 섬사람들의 생활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물때 좋은 날은

속바다 깊이를

눈으로도 알 수 있네

바닷물 빛 하늘가에 닿고

섬 발바닥 물 밖에서 보이네

 

낚시줄 드리우는 소리꺼정 들리네

팔팔 뛰는 섬의 가슴살

물비늘 벗겨 내리는 햇살 맞고도

저 혼자 둥둥 뜨는 섬

 

섬 하나 끌고 오는 날은

수평선 노을 그림자

우리 사는 마당 안까지

따라와 서네.

·섬 낚시전문

 

 ‘깊이를 눈으로도 알 수 있울 정도로 맑은 제주바다.

물때 좋은 날을 골라 낚시 드리우면 그 끝에 달려오는 팔팔 뛰는 섬의 가슴살들이 앞마당까지 따라와 어느 날은 식구들의 소박한 저녁 찬거리가 되기도 한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눈빛 맑은 사람들에게 바다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보듬어 품어주고 먹거리를 제공하고 끝없는 詩想을 물이랑 사이에 띄워놓기도 한다. ‘우리 사는 마당 안까지 따라와어머니의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섬의 발바닥이나 낚시줄 드리우는 소리’, ‘팔팔 뛰는 섬의 가슴등의 시어에서 시각·청각·촉각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감각적인 심상이 돋보인다. 푸른빛이 도는 배경에 섬과 바다와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풍요로운 온기도 느껴진다.

 

제주 해녀들은

밤마다 바다를 끌어안고 잔다

 

새벽이면 바다를 깨우고

바다를 끌고 섬 가로 내려간다

<태왁> 그물 가득히

섬의 발톱을 캐어 넣는다

때로는

섬의 안살 비늘을 떼어넣고

숨비 소리 하나로 고개 돌려 웃는다

 

제주 해녀들은

바다를 지고 돌아온다

그들 사는 뜨락에

밤새 뒤척이는 파도바람

날개 치는 소리.

                                       ⌜제주 해녀 바다전문

 

  바다를 농토 삶아 일구며 사는 해녀들에겐 꿈속까지 바다가 따라온다. 아니 밤마다 바다를 끌어안고 잔다’. 새벽이면 바다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 바다가 밤새 키워둔 소라, 멍게, 전복 등 바다의 살점들을 숨비 소리도 상쾌하게 태왁 그물가득 채워 돌아온다. 바다를 떠난 그들의 삶은 없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 기대어 바다를 키우고 지키며 산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바다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제주 섬

바다에서는 맨 먼저

억새풀 쓰러지는 울음을 들었다

 

해변을 덮는 물안개

한라산 능선 한 줄기

끊어질듯 이어 내려와

바위섬 뿌리가 되었다

 

허연 종아리 살 드러나도록

청빛 치마 걷어 올린 채

철벅철벅

바다 건너오는 소릴 들으며

 

억새풀들 서로 엉키어

한 몸 되는 바람 뜨는 섬

섬에서는 맨 먼저

파도처럼 달아나는

억새풀 울음을 들었다.

                                      ⌜제주 섬 바다전문

 

  제주 섬엔 억새풀이 많다. 가을이면 섬의 어느 곳을 가나 억새꽃들의 하얀 손짓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꼿꼿한 자태의 억새는 가늘지만 날카로운 잎을 지니고 있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제주의 정신을 상징한다. 거친 바람이 흔들어대면 그 혼들이 서로 한 몸 되쓰러져속울음으로 남을지언정 그 곧은 정신력은 꺾이지 않는다. 바람에도 휘지 않는 억새의 곧은 꽃대는 올곧은 제주 사람들의 삶이며 자존심이다.

섬을 떠나와서도

청보리 새순 물빛 옷깃에 묻어

등 가려워라

돌아눕는 밤

청치마 펄럭이는 소리

귓청에 머물러

물 먹은 가슴앓이

몇 날 앓더이다.

                                       ⌜가파섬 청보리밭을 다녀와서전문

 

  가파도, 마라도, 우도, 비양도, 추자도 등, 제주에는 섬 속에도 섬이 많다.

시인이 섬을 떠나 또 다른 섬 가파도의 청보리밭으로 가는 길에도 청치마같이 펄럭이는파도소리는 따라오고, 깔끄러운 까락에 몇 날며칠을 봄의 물 먹은 가슴앓이로 잠 못 이루는 걸 보면 시인은 아직도 열여섯 소년의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나보다. 봄은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시간이지만 섬에 사는 시인의 가슴을 밀고 들어오면서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되어 시인으로 하여금 몇 날게 만든다.

실제로 만나보면 그는 순수하고 소박하다. 맑은 눈빛과 소탈한 웃음이 소년 같은 이미지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아마도 아름다운 섬에서 바다와 함께 살아 세상 빛에 덜 바래어서 그런 듯하다.

 

성산포에 가거든

우도 가는 뱃길

마음에 그려놓고 오너라

 

거품질 해대는 소() 혓바닥 같은

파돗길 새겨놓고

팔만대장판 觀音의 바다

엎드려 눕거든

펄럭이는 장삼 한 자락

구름발 불러

바위틈에 접어놓고 오너라.

우도 가는 길전문

 

  우도는 성산포 앞바다에 떠 있는 섬이다. 이 시에서 불교적인 색채가 짙게 배어나오는 이유는 섬의 이름 때문인 것 같다. 우도는 섬의 형상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심우도는 불교에서 나오는 그림이다. 우리나라 어느 절에서나 소를 찾는 그림 즉, 심우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야생소를 발견하고 길들이는 일에 비유한다.

  시인이 우도 가는 뱃길에서 만난 觀音의 바다는 생로병사를 짊어지고 가는 삶의 바다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바다에서 무엇을 구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말고 펄럭이는 장삼 한 자락(종교)’마저 벗어 바위틈에 접어놓고와야 비로소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인의 시적인 세계는 어떠한 구속에서도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이 비록 종교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넘어서야 진정한 자신만의 시세계를 세울 수 있다.

 

내 어찌 달래랴

끝섬에 와서

천 길 海壁

바득바득 기어올라

퍼질러 눕는 울음을

 

하늘 한 쪽 빗어내어

활시위 당기듯

팽팽한 수평선

날아온 빛줄기

온 몸 맞고도 꿈쩍 않더니

저 혼자 밤새 깊어지는 울음

여기 끝섬에 와서

海風에 날리는 것을.

끝섬에 와서전문

 

  끝섬은 이름에서도 서글픈 기운이 느껴진다. 섬만으로도 고립된 외로움이 충분하거늘 섬 중에서도 끝섬이라니…… 천 길 海壁/바득바득 기어올라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섬. ‘활시위 당기듯/팽팽한 수평선을넘어와 망망대해 홀로 떠 있는 섬.

하긴 인간은 누구나 세상이라는 바다에 저 홀로 뜬 끝섬인지도 모른다. 바람과 파도에 흔들리며 거친 바다 가운데서 위태로운 밤을 깊은 울음으로 보내고 새벽을 기다리는 끝섬 말이다.

 

한 겨울 지내는 동안

한라산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은

몇 안 된다

산간지역 폭설 경보가 내려도

산간도로 교통 두절 되어도

서귀포 바다는 무사태평이다

푸른 허릿살 드러내고도

시원하다는 소릴 내지르는

섬 곁에서

눈 흘기는 처녀아이들

손님을 부르고 있다

놀당 갑서예.”

<구쟁기> 바구니에

햇살 가득하다

                             ⌜서귀포의 겨울바다전문

 

  제주도의 겨울은 눈 덮인 한라산을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한라산은 늘 구름에 쌓여있어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이 몇 번 안 되지만 신비하도록 짙푸르고 넉넉한 그 품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일은 경이롭다. 제주도는 애월읍 고내리 한 곳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마을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다. 그 높고 깊은 산에 폭설이 내려 쌓이고 산간도로 교통 두절되어도바다에 눈이 쌓이는 일은 없으므로 서귀포 바다는 무사태평이다

  ‘놀당 갑서예쉬시다가 가십시오’ ‘구쟁기소라의 제주방언이다.

서귀포의 겨울바다의 분위기를 스케치하려면 제주 방언이 제격이다. 따뜻한 겨을 햇살을 등에 지고 관광객들에게 갓 잡아 올린 해삼이나 구쟁기등을 팔고 있는 눈이 까만 처녀애들의 사투리와 그 어깨너머로 펄떡거리며 들숨과 날숨으로 살아 움직이는 서귀포 바다의 푸른 허릿살’, 그 은유적 시간과 공간이 역동적이다.

 

아직도 처녀인 제주 바다

섬 곁으로 오라

끊어내고 끊어내어도

이어지는 물굽이 주름살

한 삼천년 묵은 三神女 할망들이

목 쉰 바람소리

火山壁 뚫어도

처녀적 바다의

푸른 가슴을 알지 못하네

 

수평선 한 지름 잘라내어

허리에 묶고

海深 수십 리

헤집고 다닌들

용궁 속 거북이

그 붉은 혓바닥 냄새를 맡지 못하네

 

아직도 처녀인 제주 바다로

그대 바람처럼 오거든

섬 밖 그늘에 누워보아라

베갯머리에 출렁이는 햇살 터지는 소리

몰래 돌아눕는 어깨 틈으로

그대 푸른 살의 애무를 받을 수 있으리니.

아직도 처녀인 제주 바다로의 초대전문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초대하는 아직도 처녀인 제주 바다로 떠나고 싶어진다. ‘한 삼천년 묵은 三神女 할망들용궁 속 거북이들이 기다리는 곳. 제주 바다의 푸른 살애무해 주는 서귀포 바다로 바람처럼예정 없이 떠나고 싶어진다.

  가서 한 삼천년만 그 출렁이는 바다를 베고 누워’ ‘햇살 터지는 소리듣고 싶어진다.

끊어내고 끊어내어도/이어지는 물굽이에 눈길을 주다가 문득 서귀포 바닷가에 아예 정착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출처 : 사단법인 한국경기시인협회/계간 한국시학
글쓴이 : 嘉南 임애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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