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최의상 詩人 詩室

우리집

운산 최의상 2013. 2. 5. 14:08

 

 

 

 

            우리집

                                        최의상

 

 

창 밖에는

시간을 토하며 함박눈이 오고

창 안에서는

시간을 흡입하며 밤이 깊어간다.

아무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는 밤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아들은 불집개로 땅에 글씨를 쓴다.

잠든 딸의 얼굴 예쁘기만 한데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소리다.

 

 

신문 접고 창밖을 보는 눈에

시베리아같은 어둠의 설원을 걷고 있다.

눈이 많이 오나요?

분명 아내의 낭랑한 울림이었는데

아내는 거의 움직임 없이 뜨개질 중이다.

깊은 인연 있는 목소리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향나무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 설경

이 밤 지나고 먼동이 트기만 기다려진다.

뜨개질이 멎고

땅글씨 쓰기도 멎고

딸의 숨소리만 달콤하다.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

아련히 꿈에 산다.

 

                             1980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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