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최의상 詩人 詩室

흰눈 쌓이는 밤 우리집은

운산 최의상 2013. 1. 23. 14:23

 

 

 

 

 

 

       흰눈 쌓이는 밤 우리집은

       

                                        최의상

 

 

 

 

 

창 밖에는

시간을 토하며 함박눈이 오고

창 안에서는

시간을 흡입하며 밤이 깊어간다.

 

 

아무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는 밤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아들은 불집개로 땅에 글씨를 쓴다.

잠든 딸의 얼굴 예쁘기만 한데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소리다.

 

 

 

신문을 접어 두고

창 너머 시베리아같은 어둠의 설원을 걷고 있다.

눈이 많이 오나요?

분명 아내의 낭랑한 울림이었는데

아내는 거의 움직임 없이 뜨개질 중이다.

깊은 인연 있는 목소리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향나무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 설경

이 밤이 지나고 먼동이 트기만 기다려진다.

뜨개질이 멎고

땅글씨 쓰기도 멎고

딸의 숨소리만 달콤하다.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

아련히 꿈에 산다.

 

 

 

                                     1980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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