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눈 쌓이는 밤 우리집은
최의상
창 밖에는
시간을 토하며 함박눈이 오고
창 안에서는
시간을 흡입하며 밤이 깊어간다.
아무도 이야기를 걸어오지 않는 밤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내 옆에서
아들은 불집개로 땅에 글씨를 쓴다.
잠든 딸의 얼굴 예쁘기만 한데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소리다.
신문을 접어 두고
창 너머 시베리아같은 어둠의 설원을 걷고 있다.
눈이 많이 오나요?
분명 아내의 낭랑한 울림이었는데
아내는 거의 움직임 없이 뜨개질 중이다.
깊은 인연 있는 목소리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향나무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였을 설경
이 밤이 지나고 먼동이 트기만 기다려진다.
뜨개질이 멎고
땅글씨 쓰기도 멎고
딸의 숨소리만 달콤하다.
난로 위 주전자만이 푸- 푸-
아련히 꿈에 산다.
1980년 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