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 열정문학강좌 - 시와 시적인 것
1. 왜곡된 문학 교육
저도 고교 시절 문예반 활동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시인 하면 좀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하죠. 비가 와도 우산을 안 쓰고 오는 비를 다 맞거나, 바람이 불면 쓰윽하고 머리를 쓸어올리는 사람(^^) 그런가요?
가을이면 해마다 백일장이 열리죠. 산문보다 시를 쓰는 학생들이 많죠? 빨리 쓰고 놀려고(^^) <가을>이라는 시제가 주어지면 어떤 소재로 글을 쓰나요? ‘단풍잎, 낙화, 낙엽, 귀뚜라미, 코스모스, 황금들녘’ 등등. 거기에 가을 들판이 나오고 허수아비를 세우죠. 허수아비 위에는 참새가 놀고... 허수아비는 참새를 쫓으라고 있는 건데, 꼭 참새가 날아와 놀아요. 귀뚜라미도 자주 등장하지만 늘 귀뚤귀뚤하고 울고요.
저도 교사 출신이라 선생님들을 보면 사실 좀 쫄아들지만, 국어교사, 문학수업하는 선생님들께 야속함을 느껴요. 오늘 좀 시비를 걸어보고 싶고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데, 잘못 가르쳐 온 거죠. 의성어 의태어를 섞으면 재미난 동시가 된다고···.
토끼는 깡충깡충, 거북은 엉금엉금 그렇게 가르치죠? 토끼가 산에서 깡충깡충 뛰는 것 보신 적 있나요? 저는 한 번도 없어요. 토기장 속에서 토끼가 엉금엉금 기는 것만 보았죠. 시냇물은 어떻게 흐르나요? 졸졸졸졸?
내가 슬프면 시냇물이 줄줄줄, 질질질 흐르죠. 기쁘면 방방방방 흘러가고. 그런데 시냇물은 늘 졸졸졸이에요.
봄에는 새싹이 파릇파릇
여름엔 햇볕이 쨍쨍
가을엔 단풍이 울긋불긋
겨울엔 흰 눈이 소복소복
이런 건 동시가 아니고 동시인 척하는 나쁜 글이죠. 글쓴이 마음이 하나도 없는.
나는 ‘시인이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고 시적인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2. 나만의 표현을 찾아라
가을에 대해서 쓸 때, 낙엽, 귀뚜라미, 코스모스·· 이런 것들 가지고 시를 쓰는데, 연탄을 가지고 써보자. 뜨거운 여름엔 연탄이 안 보이지만 귀뚜라미가 어디선가 울어댈 때, 여기저기서 낙엽이 떨어질 때, 들판에 누렇게 벼들이 익을 무렵 그 때 바로 연탄을 실은 트럭과 리어카들이 다니기 시작해요. 가을은 연탄으로부터 오는 거죠. 그런데 아무도 어떤 학생도 연탄에 대해서 쓰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썼어요(^^). 저는 연탄을 통해 어떤 희생도 노래하지 않았어요. 가을을 노래하고 싶었던 거죠.
저는 풀잎, 나무 등에 대한 시를 많이 썼습니다. 그 동안 제가 쓴 시가 전부 합치면 한 천 편쯤 되요. 30년동안 천 편이니 한 달에 두세 편을 쓴 셈인데, 아무도 제게 풀잎 시인이라 하지 않아요. 나무 시인이라 부르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연탄 시인’이래요.
시인이 한 장소나 사물을 선점하는 것은 영광입니다. 김용택 시인하면 섬진강이요, 섬진강 하면 김용택 시인이죠. 나는 영광스럽게도 연탄 하면 떠오르는 시인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이 시를 보고 내가 타인에 대한 헌신과 희생 정신이 뛰어난 사람인 줄 알아요. 아닙니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이 시를 희생 정신으로 노래하지 않았어요. 촛불과 하얀 연탄재를 비교해서 생각해봐요. 고요히 타오르는 촛불을 노래하면 시적이고 연탄재를 노래하면 왜 비시적이라 생각할까요?
촛불 함부로 입으로 끄지 마라
너는 한 번이라도
누구의 어둠을 밝혀본 적 있는가?
우리는 이걸 시적이라고 느끼지 않죠. 왜? 촛불은 당연히 어둠을 밝히는 것이니까.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니까. 이렇게 썼다고 촛불시인이라 불러주지 않습니다. 촛불에 대해서는 이미 신석정 시인이 썼어요.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져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 하였습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마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 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신석정,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누거 촛불에 대해서 써도 좋은 평가 받기 어렵죠. 앞으로는 누가 연탄에 대해서 써도 저를 엎을 수 없습니다. 시적인 것은 여기저기 널려 있지 않고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종이컵을 보고 종이컵은 하얀 꽃이다. 감동이 없지만 그렇다 치고 시를 썼을 때, 사람들은 꽃에 대한 이야기에서 감동 받지 않죠. 이미 김춘수라는 시인이 꽃을 선점했으니까. ‘시적인 것은 이처럼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고, 단 한 사람이 하나로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시적인 것이 어디 따로 있는 것은 아니죠. 우리 삶이 일상 생활에 채이고 바쁘지만, 잘 찾아보면 시적인 것도 많습니다.
3. 어깃장을 놓는 정신
30대 초반, 4년간 해직 교사 시절에 궁핍을 덜기 위해 글쓰기 고액 과외를 한 적 있습니다. (말이 고액이지 얼마나···) 초등학교 1학년 글쓰기를 지도하라고 누가 소개해주어서.
저는, 엄마가 자주 하는 말 다섯 개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씻고 밥 먹어라, 세수해라, 일찍 자라, 텔레비전 꺼라 등등. 한 여자 아이가 ‘꼴 베기 시러’라고 썼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의 어머니가 보고 놀라시대요.(아니 우리 아이가 맞춤법, 띄어쓰기도 모른단 말야!) 하지만 제 가슴을 뛰게 만든 유일한 글은 꼴 보기 싫다는 말을 자기 식대로 적은 그 말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가 서울대 경제학과를 갔으니, 서울대 가려면 맞춤법 띄어쓰기는 못해야^^)
시적인 것은 세상이나 기성세대가 이렇게 해라 할 때, 고개를 갸웃해보고 어깃장을 놓거나 딴지를 거는 그런 마음에서 나옵니다. 반항심이랄까···. 모두가 그럴 때, 아니다 하는.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개짓 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공양, 안도현)
여기서 일곱 근을 칠그람, 육십 평을 몇 제곱 미터 이렇게 쓰면 시의 맛이 어떻겠어요. 이 시는 도량형을 통일해서 아파트 몇 평 이런 말 쓰지 마라는 정부의 발표에 어깃장을 놓아보는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시적인 것과 비시적인 것이 있는데, 자장면과 짜장면 어떤 게 더 시적인가요? ‘자장면 먹으러 가자’는 사람보다 ‘짜장면 먹으러 가자’는 사람을 더 따,라가고 싶지 않은가요?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한게
뚫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려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 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배한권, 엄마의 런닝구, 1987. 5. 20. 경산 부림초 6학년)
런닝구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입니다. 이 시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메리야스? 속옷? 나시? 세상에 어떤 말도 런닝구를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바꿔도 이 시만 못한 거죠. 토란 잎에 공구는 물방울··로 알려진 ‘복효근’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전북 남원에 사는데, 출판 기념회에 갔습니다. 그 시인의 시 가운데 ‘목련꽃 브라자’ 라는 시가 있습니다.
목련꽃 브라자
복효근
목련꽃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 할까
고 가시내
내 볼까봐 기겁을 해도
빨랫줄에 널린 니 브라자 보면
내 다 알지
목련꽃 두 송이처럼이나
눈부신
하냥 눈부신
저……
딸 아이 가슴이 봉긋해질 나이, 깨끗이 쓰던 하얀 브래지어를 목련꽃에 비유한 시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브래지어’가 아니고 ‘브라자’냐? 토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그래요. ‘브라자’는 틀림없이 남원 시장에서 산 것이고 ‘브래지어’는 이마트에서 산 것이다. 아마 ‘브라’라면 백화점에서 산 것이겠죠(^^).
4. 시적인 마음과 창의성
삼겹살 먹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자세로 드시나요? 불판 주변에 앉아 불을 조절하고 자르고 굽고 권하는 사람이 있고, 젓가락만 들고 있다가 달랑 먹기만 하는 사람이 있죠. 삼겹살 먹으면서 고기 한 번 안 뒤집고 고기 먹는 사람은 싸가지 없는 사람입니다. 안동 방언으로 야마리 없는 사람이죠. 삼겹살을 잘 굽고 뒤집는 사람이 시적인 사람입니다. 삼겹살을 잘 구우면 언어영역 5점 높일 수 있어요.
여러분은 라면을 잘 끓이시나요? 신라면이 면발이 굵어서 좀 더 오래 끓이고 대부분의 라면 끓이는 법은 비슷합니다. 라면마다 봉지 뒤에 설명법이 다 써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같이 이렇게 되어 있지요.
‘기호에 따라서 파, 계란, 김치 등을 곁들이시면 더욱 맛있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을 무시하는 사람은 싫습니다. 스무 명이 라면을 먹을 때, 입맛이 다 다를 때,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 마지막 문장을 고려하여 자기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파를 총총총 썰어 넣을 수도 있고, 듬성듬성 썰어넣을 수도 있고. 생파를 그냥 넣을 수도 있고···. 라면 하나 끓이는 데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요즘 추세가 창의성 교육을 하라는 건데(학교 교육은 대개 반창의적이지만) 시적인 것을 찾는 것도 창의성 교육이죠.
우리나라 시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정서를 함양, 고취 등등 지겨운 말들로 채워져 있죠. 요즘은 창의성을 말하지요, 창의적인 인간을 만들어봐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하는데, 지금 대학생인 제 아이가 중1 때, ‘우리가 눈발이라면’이라는 시를 배웠나 봅니다.
국어 시간에 뭐 배웠어?
‘우리가 눈발이라면’ 배웠는데요, 대조되는 시어 두 개씩 찾아오래요.
(당시 시가 옆에 없었고, 제가 그 시를 잘 외우지 못해요)
그래? 진눈깨비와 함박눈, 맞아요.
편지와 뭐 그런 건가?
틀렸어요!
시를 쓴 시인이 50점 밖에 못 맞았습니다(^^)
아들이 수능 시험 과목 중 수리와 외국어 잘 하는데, 언어 점수가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시를 좀 읽어라 했더니, 바쁘다고 안 읽어요.
언어영역 점수를 올리는 두 번째 방법은 시를 무조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시 한 편 읽는 데 얼마 걸리죠? 30초(^^) 교과서의 시는 배우고 나면 쳐다보지도 말아야 해요. 문제집, 참고서처럼 다시 봐? 그건 아닙니다. 시를 즐기고 공부하는 방법이 아니죠. 세상에는 읽을 시가 너무 많습니다.
만약 교과서에 안도현 시가 나오면 대표시 열 편을 읽어야 합니다. 김소월의 시를 배우면 다른 시 열 편을 읽으세요. 시 공부는 첫째, 시를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해요. 둘째, 시를 읽을 때 공부하듯 읽지 말고 대충 읽어요. 다른 시들을 또 읽어야 하니까. 시를 많이 읽어라! 그래야 시가 겁나지 않아요.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아들은 결국 시를 안 읽더니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습니다.
5.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시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에서 나옵니다. 내가 지금 말을 하면 그 말이 여러분의 귀속으로 들어가죠. 그건 내 입과 여러분의 귀가 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선이 보이시나요? 저는 실처럼 이어진 선이 보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나 사이에는 실이 없습니다. 엄마랑은 아주 질긴 실로 된 선이 있습니다. 친하다는 건 실이 따뜻하다는 거고 싸우면 시링 차가워지고, 절교하면 실이 끊어지죠. 우리는 오늘 만났으니 실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런 실을 다른 말로 인연이라 하지요. 새로운 관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제 시 중에 ‘간격’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숲을 멀리서 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간격, 안도현)
우리는 나무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룬다고 하죠. 나와 너가 합쳐 우리를 이룬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무와 나무가 ‘간격’ 없이 붙어 있다면 숲이 될까요? 나와 너가 사이 없이 붙어 있다면 우리가 될까요!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건 내가 잘 나서가 아니죠. 내가 나이려면 나 아닌 것들이 있어야 하는 거죠. 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그런 이야기를 연어에서 썼죠)
나무는 무엇이 모여서 이루어집니까? 줄기, 잎, 뿌리, 가지, 나이테 등등···. 벌레요? 네! 벌레가 없다면 느티나무가 존재할까요? 벌레도 느티나무의 일부입니다. 나아가 저 멀리 보이는 배경이 없다면 이 느티나무가 존재할까요? 그러고 보면 저 배경도 느티나무의 일부입니다···. (너무 도사같은 말인가요^^)
6. 시적인 아름다움
세상에 아름다운 게 많은데 진자 아름다운게 뭘까요?
10대 소년 가수들을 보면 어떠세요? 저는 징그럽습니다. 성형한 소녀들의 비슷한 얼굴들을 보면 그 위로 지나갔을 무수한 칼자국들과 흘린 피들이 떠올라서··· 그역질이 나요. 그런데 왜 사람들은 환호하죠?
제 시를 하나 읽겠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우체국 언덕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들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 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몇 해 전 이 시를 발표했더니, 정보통신부에서 전화가 왔어요.
“정통부 장관께서 이 시를 나누어주셔서 같이 읽었다. 그런데 그 바닷가 우체구이 어디냐, 알려 다오···.”
일단 시를 읽어주니 고맙고, 시비를 세우고 테마 관광지라도 만들려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남감햇던 것은 이 바닷가 우체국이 실제로는 없었다는 거죠. 울산쪽 바닷가 어디나, 대천 쪽에도 우체국이 있었는지... 하지만 아닙니다. 저는 전주에 살았고, 변산반도에 갔는데 바닷가 언덕 위 낡은 집들이 있었어요. 낡은 집에 우체국 간판을 달아보고 우체통을 세워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거짓말쟁이이고 뻥쟁이, 과장쟁이입니다.
이 시에서 직유를 많이 썼어요.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직유를 왜 배울까요? 사전에는 직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함께 드러내는 비유라고 되어 있죠. 대한민국에 한글 아는 사람 가운데 ‘처럼, 같이, 듯이’ 모르는 사람 있나요? 그런데 그걸 왜 배우죠?
비유는 빗대서 표현하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강조해서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를 배우기 위한 거죠.
나는 편지 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세월이 유수처럼’,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안 쓰고 차라리 케이티엑스처럼이라고 쓰는 게 참신하죠. 이렇게 참신하고 창의적인 표현을 위해 직유를 배우는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 많지만, 역시 한 사람은···, 백석이죠.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아시나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는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타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이 시 얼마나 멋진가. 눈이 와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다니···.
우리는 흔히 첫 눈이 내리면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시적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만나니까 첫눈이 내린다, 그렇게 말 해야 합니다(와~ 박수^^) 연애할 때, 이렇게 해야한다. 시적으로···. (진정한 아름다움은) 개념적 사고와 고정관념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입니다.
‘너 개념 없어’라는 말 하죠? 군대에서 특히. ‘개념’이란 구체적인 것을 일반화시키는 것입니다. 배추, 고추, 상추 이런 것들을 묵어서 야채라고 하는게 개념이죠. 고추는 또 청양고추, 풋고추, 꽈리고추 이런 것들을 모은 것이고요. 시는 일반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 했던 스무고개처럼. 스무고개 이야기에는 시적인 특성과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며칠 전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고 나서 한겨레 어느 독자가 투고를 했어요. 고은 시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정작 고은 시인의 시집을 사 본 적이 없다. 한글로 쓰여진 고은의 시집을 나도 못읽었는데, 과연 세계의 다른 나라사람들이 고은을 인정하기를 바라는 게 올바른 태도일까. 반성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시집을 한 권 사야 시적인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시집을 사서 시를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질의응답}
질문1) 안양예고에서 글읽고 시를 필사하거나 쓰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다. 시를 쓰다 막히는 슬럼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답 : 나도 문예반 시절이 있다. 주로 선배에게 중국집 뒷골목 문화를 배웠지만(^^) 시를 쓰면 시와 전혀 상관 없는 사촌누나나 주먹 센 새끼한테 시를 보여주었다. 시를 읽다가 무언가 좀 걸리거나 어렵거나 재미 없으면 이야기해달라···. 시를 모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짚어내는 부분이 있다. 대부분 내가 대충 넘어가려 했던 부분이다.
시를 쓰다 보면 왜 쓰는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이랄까···.
막힐 때 어떻게 극복하는가? 나도 시가 술술 쓰여진 적은 없다. 천 편 모두 그렇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슬럼프였다. 시를 쓰다 막히면 논다. 그냥 논다. 물론 시하고 논다. 그러면서 계속 고쳐 쓴다. 평균 50장에서 수백장은 없어져야 시 한 편이 나온다. 짜잘하고 쪼잔한 사람이라 행, 쉼표, 제목 별별 생각을 다 한다.
네이버 지식in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두더쥐’에 대해서 찾았는데, 평소 모르던 정보가 많더라. 두더쥐를 찾아 보니 앞발톱이 뒤보다 넓다. 삽날처럼 생겼다. 삽날처럼 생겼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시 쓰다 막히면 네이버나 다음같은 포털을 이용하라(^^)시적이지 않은 포털 사이트가 영감을 준다.
질문2) 가장 아끼는, 사랑스런 작품은 무엇인지?
열 손 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우리가 눈발이라면’은 ··· 별로다.
너에게 묻는다도 안 좋다. 그걸로 기억하지 마라.
특별한 사연은 없지만 『<그리움』이란 시집에 담긴 <겨울 강가에서>. 스물 세 살 데뷔작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물 소리를 ‘척왜척화 척왜척화’(斥倭斥和)(일본과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라)라 표현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연어>의 작가 말고 시를 쓰는 사람으로 기억헤주기 바란다.
질문3) 학창시절, 연애편지는 어떻게 쓰셧는지 궁금하다.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고 써본 적은 없다. 책 일는 것은 좋아했지만 독후감 쓰기 싫어 책읽기도 게을리 한 적 있다. 고교시절 시인이 꿈이던 시절에 어느 여학생에게 1년 동안 매일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다. 그 여학생은 1주일에 한 번 정도 답장을 주었다. 편지를 쓰려니 편지를 늘 다른 형식으로 쓰려 노력했다. 엽서, 편지지, 누런 봉투, 하얀 봉투, 형식만저 다르게 쓰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문장과 시를 공부했다. 최선을 다해 썼다. 오직 한 사람에게 최선을 자하는 게 연애이듯, 그렇게 연애하듯 시를 써라.
질문4)『 그대에게 가고 싶다』라는 시집을 보면, 내가 연애 경험이 없어서인지, 연애시가 많아 어렵다. 그 가운데 <너와 나>라는 시가 있다. ‘밤 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무슨 의미인가?
답 : 수준 높은 질문이다. 밤하늘 별과 방바닥 걸레를 노래한 시다. 별은 아름답지만 걸레는 냄새나는 더러운 걸로 우리는 바라본다. 우리가 더럽힌 방바닥을 걸레는 자기 몸을 더럽히면서 닦아낸다. 시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 아름다운을 판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걸레는 아름다운 것이다. 걸레도 시적이고 아름다운 존재다.
질문5) 지각생에게 시를 외우게 한다. 여기 데리고 왔는데, 어느 시를 외게 하고 싶으신가?
답 : 그런 교육이 시와 친해질지 모르겠다···. 백석 시 <장날>, <무식한 놈>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여! 이제 너하고는 절교다
연보랏빛, 국화 향기 모여 피고 쑥부쟁이 이름을 알면 언제 피나 기다리는 마음이 생긴다.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이 소녀에게 건넨 꽃이 마타리다. 마타리는 여름방학이 끝날 때 핀다. 나는 이 꽃을 보면 아 방학이 다 지나갔구나 한다.
질문7~9) 학창 시절 최고 고민은? 노력에 비해 저평가 되어 실망경험이 있는 시는? 저는 거울이 되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하는데 안도현 님이 좋다고 생각하는 시는?
답 : 7-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면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백일장 수상 경력은 계속 쌓여간다. 특기계발보다 학교공부에 충실하라고 쓰여 있는데, 내 자신은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70년대 후반 고등학교 시절 사상계를 만났다. 함석헌 선생님(장준하?)이 발간했다. 1960년 5월호에 경찰에게 맞아 피흘리는 4.19 혁명 화보가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를 좋아했는데 생각이 바뀌고 세상살이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8-내 시집 9권 가운데 5권째가 『그리운 여우』다. 그 시집에서 현실문제에서 자연을 다룬다고, 상업적으로 변하고 대중시인이라고 말하는 데 인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열심히 시를 쓰는 시인이다.
9-좋은 시라···. 학생은 성찰을 말했는데, 그것도 좋은 시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하면 지겹다. 좋은 시는 내가 좋으면 좋은 시다. 나중에 아니라 지금 내눈 에 들어오는 시다. 사탕을 달아서 먹기 좋고 한약은 입에 쓰다. 그 두가 맛이 한 꺼번에 있는 시가 좋은 시다. / 경기국어교사모임 자율연수 자료 2010.10.14
출처 : 들꽃따라 문학향기
글쓴이 : 골든모티브 원글보기
메모 :
'문학 > 시인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임동권 학장 (0) | 2013.02.20 |
---|---|
박정희 대통령의 시 (0) | 2013.02.06 |
김지하 시인 무죄 (0) | 2013.01.04 |
李奎報 詩人 (0) | 2013.01.03 |
한용운 시인 / 옥중한시 (0) | 201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