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좋은 시(詩)

[스크랩] 201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 황은주

운산 최의상 2012. 9. 20. 09:46

삼만 광년을 풋사과의 속도로

황은주

 

아삭, 창문을 여는 한 그루 사과나무 기적

사방이 없어 부푸는 둥근 것들은 동쪽부터 빨갛게 물들어 간다

과수원중천으로 핑그르르

누군가 붉은 전구를 둘러 끄고 있다

당분간은 철조망의 계절

 

어두워진 빨강, 눈 밖에 난 검은 여름이

여름 내내 흔들리다 간 곳에

흔들린 맛들이 떨어져 있다

집 한 채를 허무는 공사가 한창이고

유독 허공의 맛을 즐기는 것들의 입맛에는 어지러운 인이 박혀 있다

죽은 옹이는 사과의 말을 듣는 귀

지난가을 찢어진 가지가 있고 그건 방향의 편애

북향에도 쓸모없는 편애가 한창이다

 

비스듬한 접목의 자리

망종 무렵이 기울어져 있어 씨 뿌리는 철

서로 모르는 계절이 어슬렁거리는 과수원

바람을 가득 가두워놓고 있는 철조망

사과는 지금 황경 75

윗목이 따뜻해 졌는지 기울어진 사과나무를

이 밤, 철모르는 그믐달은

풋사과처럼 삼만 광년을 달릴지도 모른다

 

출처 : 경인문학회
글쓴이 : 성숙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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