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좋은 시(詩)

[스크랩]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 (시) 김해준/ 한 뼘의 해안선

운산 최의상 2012. 9. 20. 09:58

 

 

2012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수상작이 가려졌다. 시 부분은 김해준의 '한 뼘의 해안선', 소설 부문은

박사랑의  '이야기 속으로'에 각각 돌아갔다. 2005년 '문예중앙' 휴간과 더불어 잠시 폐지됐다가 7년

만에 수상자를 냈다.

 

179cm, 84kg...전직 유도선수, 시에 걸려 넘어지다

 

 

한 뼘의 해안선/ 김해준

 

 

마른 국화를 태워 연기를 풀어놓는다. 꽃잎이 불씨를 타고 오그라든다. 별들로 판

서된 역사가 쇠락한 하늘 아래 야경꾼의 홍채에선 달이 곪아간다. 통금의 한계에

닿아 부서지는 경탁소리가 시리다. 첫 기제의 밤이 젖어간다.

 

된서리 맞고 실밥으로 주춤주춤 경계를 얼려가던 복부에서 비린내가 터져 나온 

다. 절개했던 자리가 하얗게 번뜩인다. 새어머니는 훗배앓이 중이다. 뻘에서 태

어난 입술에서 고동소리가 샌다. 물려받은 반지의 녹이 지난 맹세로 생식한다.

 

태어난 해안에서 침몰해가는 유년, 바리캉으로 밀어낸 태모가 이방에 닿아 바람

으로 분다. 가마의 계절풍은 성장을 멈추고, 내가 가졌던 땅을 만조로 삼키는 병

풍이 펼쳐진다. 

 

유폐했던 이름이 글썽이며 타들어간다. 문간에서 날린 살비듬이 어떤 풍향을 탔

는지 나는 모른다. 술잔에 내린 테를 삼켜 캄캄한 바다. 두 명의 어머니가 같은

연안에 이불을 깐다. 해진 안감에 귀를 묻고 손금이 크는 소리를 듣는다. 빛과

어둠이 범벅된 하늘이 몸 안으로 새어든다.

 

 

 

세상에는 이런 시인도 있다. 중학교 때까지 유도 선수였다. 문학과 거리가 멀었다. 고교(안양예고

문예창작과) 2학년이 되도록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어떤 운명과 마주쳤다. 생선 처음으로 스승(김민정 시인)에게 자작시에 대한 코멘트를

받은 것. "유도에서 멱살을 잡힌 듯" 찌릿했다. 그렇게 스승은 맞춤법부터 차근차근 그를 이끌었다.

   김해준(27)그는 느닷없이 시에 꽂혀버린 시인이다. 스승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준 뒤로, 그는 

운동하듯 끈기있게 시를 파고들었다. "한국에 출간된 시집의 80%를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다

김기택 시인의 '사무원'이란 시에 걸려 넘어졌다.

   "시라는 게 대단히 어려운 사상인 줄 알았는데 일상에서 시를 뽑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

웠어요. 이 때부터 시가 제 운명이 된 것같습니다."

   고교생 김해준은 온갖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고, 문학 특기자로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그

즈음부터 지금까지 200번 이상 각종 신인문학상에 도전했다. 그 고된 과정을 통해 시가 다듬어졌고,

상상력은 더욱 충만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시인'이란 공식 직함이 붙었으니, 제28회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수상이다.

   수상작 ' 한 뼘의 해안선'은 신인의 기대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이미지 사용법이 인상적이다. '태

어난 해안에서 침몰해가는 유년'의 감정을 눈에 보이듯 펼쳐놓았다.

   그는 평소 4절지에 낙서하는 것처럼 시를 쓴다. "세계를 다 번역하고야 말겠다는(심사위원 권혁

웅)" 시인이다.

   그는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는 시를 쓰겠다"고 했다. 키 179cm, 몸무게 84kg. 넉넉한 덩치만큼

이나 패기 넘치는 시인이 탄생했다. 

 

 

 

                                                -  중앙일보 정강현 기자

출처 : 김윤하 시인의 문학공간
글쓴이 : 김윤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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