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스크랩] 진경산수화

운산 최의상 2012. 9. 10. 19:18

조선 ''진경산수화''의 진수


이념이 뿌리라면 예술은 꽃이다. 겸재 정선에 의해 진경산수화풍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성리학을 후기 조선사회의 주도 이념으로 자리매김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암이 결국 진경문화의 정신적 뿌리를 마련해 준 셈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정기전으로 마련한 ‘우암 송시열 탄신 400주년 기념 서화전’(13∼27일)은 그런 자취들을 살펴 보는 자리다. 우암보다 12살 연상으로 진경산수화의 서막을 알린 창강 조속(1595∼1668)부터 진경산수화의 열매를 거둬들인 겸재 정선(1676∼1759)까지, 17∼18세기 그림과 글씨들이 출품된다.

관람의 포인트는 중국그림의 답습에서 진경화풍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북송시대 유학자 소옹의 글 ‘어초문대(漁樵問對)’를 그림으로 그린 ‘어초문답(漁樵問答·낚시꾼과 나무꾼이 묻고 대답하다)’은 동양화에서는 단골소재였다. 어초문답을 화제로 삼은 출품작 3점을 비교하면 중국의 그림을 모방하던 조선 전기와 과도기, 조선후기 진경 정신이 들어간 그림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1640년쯤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원 이명욱이나 비슷한 시기 선비화가 홍득구의 그림에선 중국 복장과 중국식 멜대를 메고 있다. 구도도 중국 것을 따르고 있다. 반면 겸재의 그림에는 우리 고유의 지게가 등장하며 어부와 나무꾼은 우암의 영향으로 선비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행했던 옷인 학창의를 입고 있다.

창강 조속 이후 겸재 정선에 이를 때까지 김명국의 중국풍 신선그림, 금니로 그린 몽환적인 산수그림, 송시열의 제자인 홍수주가 그린 포도그림, 정교한 인물화로 유명한 선비화가 윤두서의 ‘군마’나 ‘기마감흥’ 등도 과도기 조선그림의 변천과정을 훑어보기 좋은 그림이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간송미술관의 대표 컬렉션인 겸재 정선의 그림. 특히 주목되는 작품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은 겸재가 창안한 새 화법을 엿볼 수 있다. 같은 화면에서 바위산은 북방계의 강한 필묘법(필선으로 그려내는 그림법)으로, 수림이 우거진 토산은 부드러운 남방계의 묵묘법(먹칠법으로 그려내는 그림법)으로 처리해 음양조화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대립적으로 발달해 온 남북화법을 이상적으로 종합한 것이다. 주역에도 능통했던 겸재였기에 가능했다.

겸재가 한강 물줄기를 따라 광나루, 압구정, 인왕산, 남산 등을 바라본 그림들도 전시된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이 1970년대에 직접 현장 답사를 통해 그림의 구도까지 확인한 작품들이다.

최 실장은 “미국에서 인디언사냥이 이뤄진 시절(1740년대)에 조선문화는 절정기에 이르렀다”며 “한민족은 외래문화의 정수를 뽑아 제3의 문화로 완성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민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치로 계산되지 않는 것을 한민족은 만들어 왔다’며 “과학문명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02)762-0442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출처 : 경기문학인협회
글쓴이 : 임애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