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와 문학

엄한정 시인-'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

운산 최의상 2017. 2. 3. 12:09

 

 


엄한정 시인-'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

뉴스일자: 2008년12월16일 00시00분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서울 시청역 근처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진행되는 한국시문학아카데미(금요포럼)에서 엄한정 시인과 시론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필자는 얼마 전 「면산담화」라는 엄한정 시인의 시선집을 받아들고 너무나 기뻤다. 엄한정 시인이 보내온 시선집 「면산담화」의 시적 경향이 필자가 좋아하는 ‘향토시, 토속시’이면서도 결코 과거에 안주하거나 추억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미래지향적 시였기 때문이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지하철을 오가며 읽기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다 읽고 난 기분은, 마치 고향에 다녀온 후 호박이랑 고구마를 싸가지고 온 것처럼 뒤가 든든하고 이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향토장학금을 받아서 세상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엄한정 시인께 메인스토리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취재에 응해 주십사 청하니 시인은 겸손을 보이며 사양한다. 이에 재차 청을 드리니 흔쾌히 승낙하면서 아무 날 아무 시에 만나자 한다.

약속대로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고 옷깃을 파고드는 2월21일 오전 10시 40분. 지하철 5호선 숭실대입구역(살피재역)을 나오려니 驛舍가 얼마나 깊은지 2~30미터 쯤 에스컬레이터를 세 번씩이나 갈아타고 나와야 했다. 아마도 지하100미터쯤에 전철이 다니는 모양이다.

이렇게 대단한 驛舍를 짓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 종교에서 ‘役事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의 건설기술이 리비아사막에다 수로를 묻고, 서해대교를 건설하는 등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들어오긴 했지만 막상 이런 지하철 역사를 이용하다보니 실감이 난다. 옛날이야 감히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이런 驛舍를 만들 기술도 없었던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건설 기술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 창작 기술도 참 많이 발달하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과거의 시는 고작해야 자연을 감상하며 영탄조로 풀어 쓰는 게 고작이었지만 지금의 시 창작 기술은 ‘모든 관념은 어떤 형태든 물리적 존재에 실려 운반되어야 한다는 문덕수 시인의 ‘수퍼 비니언스의 원리’,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 감정과 상응하는 일련의 이미지, 사건 장면 등을 발견해서 암시하도록 표현한다는 함동선 시인의 객관적 상관물’, ‘낯설게 하기’, ‘언어의 폭력적 결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신선하며,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의 내면을 심도 있게 분석하여 진리에 다가서며, 이 땅에 왔다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에 고민하는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역사(役事)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문화에 기여해 온 우리詩의 역사(役事) 또한 대단한 歷史란 생각을 하니 원로들을 만나 뵙고 그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소흘히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새롭다.

에스컬레이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엄한정 시인께서 말씀하신대로 4번 출구로 나와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늘 함께 취재를 다니는 서창원 회장이 모습을 보인다. 서창원 회장은 칠순의 나이임에 시를 써도 복고풍, 회고풍의 시가 아니라 현대적 감각의 시를 쓰고, 인터넷도 수준급에 포토샾, 사진 찍는 기술까지 현대의 젊은이가 갖추어야 할 재주를 고루 갖추었으니 나이만 칠순이시지 정말 청년 같아 좋다.

엄 시인이 일러주신 대로 봉천동 고개를 도보로 올라가니 육교가 나왔다. 육교를 조금 오르자 엄 시인의 아파트 단지로 통하는 작은 문이 나왔고 우리는 관악현대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 엄 시인의 아파트로 올라갔다.

▲ 엄한정 시인(좌)과 김순진 시인

엄 시인 부부는 집안을 말끔히 정리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서재와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서정주 시인의 친필 시화와 김동리 선생의 친필, 김구용 선생의 친필, 박목월 선생의 친필이 있는 것을 보니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또 한쪽으로는 한국문인수석회 회장을 지낸 분답게 갖가지 아름답고 기이한 형상을 한 수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 사모님께서는 한과와 과일, 그리고 잣알이 박힌 곶감에 녹차를 내어주신다.

엄한정 시인의 얼굴은 다소 주름이 있긴 하나 매우 건강해 보였다. 평소 문인산악회 회장을 맡는 등 매주 빠지지 않고 산행을 하고 날마다 아파트 주위를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한다 하니 아마도 그래서 건강해 보이는가 보다.

엄한정 시인은 한국농민문학회장, 한국문인산악회장, 한국문인수석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감사 등의 다채롭고 대단한 이력과는 다르게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자상히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다정다감한 분이었다.

엄한정 시인은 1936년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 42번지(아버지 嚴珠鎔, 어머니 金元任 두 분 모두 작고함)에서 태어났다. 엄 시인의 본관은 영월(寧越)로 嚴氏는 단본이다. 시조는 당나라의 파악사(坡樂使)로 한국에 들어온 임의(林義)이다. 그는 고려시대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이 되었으며 영월에 정착했는데, 아들 태인(太仁)이 검군감(檢軍監)으로 영월군에 봉해짐으로써 영월로 관적하였다. 태인 ·덕인(德仁) ·처인(處仁)의 3형제대에서 3파를 이루었고, 태인의 7세손 용도(用度)가 조선에서 봉상시정(奉常寺正)을 지내고, 아우 이도(以度) ·안도(安度)가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지냈다. 용도의 6세손 흥도(興道)는 영월의 호장이었는데, 단종이 영월에서 죽자 아무도 돌보지 않는 왕의 시신(屍身)을 모시고 장례를 치른 뒤 몸을 숨겼다.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그의 후손이 등용되고 영조 때 정문이 세워졌다. 엄시인은 복야공파(僕射公派)로 복야공이라 함은 활을 쏜다는 뜻으로 무관을 지낸 것으로 보인다. 인구조사에는 약 일만 삼천 가구에 인구 칠만 오천 여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서정주 시인의 친필

엄 시인의 아버지께서는 별로 말씀이 없는 분이었지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친척을 자주 찾아뵈라 이르셨으며 정직한 것과 근면한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회고한다. 또 어머니는 건강한 분으로 남을 돕기를 좋아하셨고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들에 논밭갈이를 할 때면 엄청난 양의 쇠죽을 머리에 이고 가시던 기억과 김장철이면 이웃집에 김장을 도와 흰 고무신 한 켤레씩을 얻어오시던 기억을 떠올린다.

엄 시인은 팔남매 중 외아들이다. 소년 엄한정의 집은 칠 공주 집이었고 엄군은 집에서 작은 공자(公子)였다. 엄한정은 농업을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네 분의 누님들과 누이동생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이웃집에서 맛난 음식을 하면 의례히 한정이를 먹이라며 조금씩 가져다주었다. 고사떡을 가져올 때도 그랬고 살아있는 붕어도 한 사발씩 가져오면서 ‘이거 한정이 끓여먹여요.’ 란 말을 듣던 기억이 난다고 엄 시인은 회고한다.

엄 시인은 1963년 박목월 시인의 주례와 서정주 시인의 축사로 아내 주영순(朱寧順 .69세)여사를 만나 슬하에 순아(旬芽. 43세), 순용(旬茸. 43세) 쌍둥이와 순임(旬林. 41세) 등 세 딸, 아래로 광식(光植. 38세), 호식(浩植. 36세) 두 아들 등 3녀2남을 두고 있는데, 맏딸 엄순아 씨는 문예사조에서 김상일 원로 평론가의 추천을 받아 동화작가로 등단하여 활동 중이다.

▲ 김동리 선생의 친필

엄 시인이 처음 글을 썼던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 시인은 <우리학교>라는 제목으로 쓴 산문이 교실 뒤쪽 게시판에 붙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히 칭찬할 수준은 못되고 시를 처음 읽게 된 것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 우등상의 상품으로 받은 고시조집(1946.동방문화사)로 시조집이었다고 말한다. 그 시조집에 수록된 230수의 시조 중에서 황진이의 시조 6수는 특히 재미있었는데 이은상 시인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도 글 위에 더한 것이 없고, 또 세상을 해롭게 하는 것도 글 위에 더한 것이 없다.(중략) 지금 젊은이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조선 지식이다. 조선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몰랐다가, 인제는 자유로이 새로이 찾고, 챙기고 알아야 하겠기 때문에, 저마다 조선의 역사, 문화, 어학 등 조선 지식을 알고 싶어 한다. 생각할수록 반갑고 느꺼운 현상이다. 이 책은 조선 지식을 얻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알뜰하고 귀중한 선물이다. 시조는 조선 고유한 형식으로 된 노래다. 조선민족만이 짓고 부르고 한 노래다.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조선 전통의 노래다. 그리고 천 년 동안에 위로 임금으로부터 아래로 기생에 이르기까지 학자, 문사, 영웅,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가 모두 시조를 짓고 불렀으니, 시조는 어느 한 계급 한 부분의 한가한 문학이 아니요, 민족 전체가 사랑하던 노래다.(이하 생략)”란 서문에 큰 감명을 받았고 시조를 짓고 시를 쓰려 마음먹었다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그로부터 6년간 중학교와 사범학교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 땐 글을 쓴다고 해봐야 일기 정도였지만 엄한정은 이광수, 김동인, 방인근, 김래성, 이기영, 이태준, 심훈, 전영택 등 국내 작가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였고 김소월, 김억, 김동환, 박용철, 오상순, 김영랑, 윤동주, 윤곤강, 서정주, 신석정, 박목월, 김용호, 장만영, 노천명, 모윤숙 등의 시인들 작품을 읽으며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처음엔 시보다 소설을 좋아했지요. 정작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57년 서라벌 예술대학에 입학하고부터입니다. 교과서에서만 이름을 알았던 저명한 시인, 작가들을 직접 대하며 공부를 하게 된 것이지요. 시인에는 서정주, 박목월, 신석초, 김구용, 피천득( 피 교수는 영시강독)이 교수였고, 작가에 염상섭, 김동리, 안수길 교수, 그리고 평론가로는 조연현, 정태용 교수의 강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교편생활을 하다가 접고 대학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였습니다. 이런 수업태도를 보고 박목월 시인은 나에게 ‘시를 말하는 염소’란 별호를 붙여주시기도 했지요.”라며 잠시 눈을 감으며 회상에 잠긴다.

엄한정은 서라벌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로 학교를 옮기며 공부를 하였다. 그러면서 서라벌예대에서 사제 간으로 있던 서정주, 박목월, 김구용 세 시인을 따로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때 세 분의 스승들께서는 내게 시 쓰기의 기교나 이론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사람 됨됨이를 중점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서정주 선생은 내가 찾아뵙고 돌아갈 때에 반드시 대문을 활짝 열고 댓돌 층계 아래까지 내려와서는 ‘가거든 부모님께 안부를 여쭈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박목월 선생은, 찾아뵐 때 사과라도 몇 알 들고 갈 양이면 호통을 치시며 ‘무엇을 사들고 다니느라 자주 찾아오지 못하지 않느냐’ 하시며 그냥 자주 찾아오라 하셨습니다. 김구용 선생은 내가 성균관대학교 야간부에 편입할 때, 도와주신데 대한 고마움의 뜻으로 정종 한 병을 가지고 찾아뵈었더니 그것마저 거절하였습니다. 내가 시인이 되는 데는 그 세 분의 가르침이 컸습니다. 스물일곱 살에 결혼을 하였는데 박목월 선생이 주례를 맡아주시고 서정주 선생이 축사를 해 주셨지요. 그해 ‘별거하는 당신은’이란 작품이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1963년 현대문학 7월호에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라 말하면서 잠시 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조연현 선생은 아주 판서를 잘 하셨어요. 판서를 하고 나면 꼭 담배를 피우셨지요. 김구용 선생은 원탁에서 시 품평을 하면서 가끔 우리 학생들에게 담배를 피우라고 했지요. 나는 군에 갔다 온 복학생이었으므로 김구용 선생과 같이 담배를 피웠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박목월 선생의 시간이었는데 내가 박목월 선생께 ‘선생님, 담배 피워도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피우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성냥을 켜 담뱃불을 붙였더니 ‘피우긴 피우되 나가서 피우게!’ 하시더라구요, 얼마나 민망했던지…….”하며 老시인은 씁쓸한 웃음을 짓다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문단에 나온 지 4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시에 있어서 완성은 없으며 지금도 습작시절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시를 써 온 지난날은 그대로 나의 인생역정일 따름이지요. 내 시 수업의 습작시절을 얘기하다보면 ‘옛날에는 이러했노라’는 투로 마치 어른이 아이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자기 과거를 과시하여 스스로 인생의 내리막길을 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색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은 과거에 대한 미감을 한결 돋구기 마련이어서 초라한 과거의 자취를 반추하는 것이 무슨 황홀한 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생활과 시가 일치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어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항용 내게 말씀하시던 말씀을 따라 쓰고 싶어합니다. 나의 시에 대하여 읽는 이들이 행여 ‘감동이 있다, 없다. 되었다 못되었다.’하는 평은 받아들이지만 어떤 특정 시인과 비교되거나 특정 문예사조의 ‘이즘’이라는 표지를 붙이는 것은 거절합니다. 나는 시쓰기의 습작과정을 전생애(全生涯)로 이해하고 있으며 지금도 습작하는 마음으로 글을 대합니다.”라며 글쓰기에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피력한다.

한편 박목월 선생은 <아동문학>의 동시 부문 추천사를 통하여,

“<아동문학>지를 발간한 후, 처음으로 엄한정 군을 동시부의 추천시인으로 세상에 내보내게 되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엄군은 일선 교사로서 직접 아동들의 세계 속에 살면서, 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한없이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 희귀한 시인이다.

참으로 아동문학의 소재로서 ‘교실’은 너무나 귀한 것임에 순전히 처녀지로서 남아 있었다. 엄 군은 그 교실 안의 세계에 첫 삽을 넣은 동요 시인이다. 앞으로 그의 발전과 대성을 빌면서, 동시단에 나타난 새로운 시인을 박수로 환영한다.”고 추천의 기쁨을 적고 있다.

▲ 김구용 선생의 친필

1976년에 나온 그의 첫 시집 「낮은 자리」의 題字는 김구용 선생이 써 주고, 序文은 미당 선생께서 써 주었는데 미당선생은,

“벌써 한 이십 년 가까이, 음력설과 추석날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를 찾아, 내게 문안을 드려온 내 후배시인으론 오직 엄한정 한 분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그는 약력보다 음력의 인상을 주는 시인이고, 이 음력의 냄새를 풍기는 온갖 것들 - ‘하현달’이라든지, ‘빈그릇’이라든지, ‘난(蘭)’이라든지, ‘추경(秋耕)’이라든지, ‘돌부처 앞’에서라든, ‘애가(哀歌)’라든지, ‘수수’라든지, ‘등걸’이라든지 - 그런 그늘과 구석과 깊은 데와 귀빠지게 고요한 쪽에 잠기는 그런 시인인 것이다. 이상의 열거항목들은 모두 그의 시작품 이름들이다.

이런 그인지라 그는 세상의 그 소유 출세영달이란 것에도 무한히 서툴러서 내 추천으로 <현대문학>지를 통해 시단에 나오는 데도 누구보다도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그 때문에 초조하거나 성급한 눈치를 보인 일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형 이삿짐을 나르고
돌 두 개를 얻어오다
경인간 버스에 두고 왔다

신문지에 꾸리고
양회봉지에 다시 넣어
품에 안고 오는 동안
빼앗긴 체온

대방동에서 나는 내리고
종점으로 사라진
서운한 버스

일어버릴 것이
또 없는가
손을 넣어보는
주머니에 신열이 잡힌다

주인은
다른 곳에
또 있고
오늘은 공일일 뿐.

<주인>이라는 제목의 이 시가 보이고 있듯이, 무엇이 주인이라는 고집마저도 그는 희한하게도 곧잘 접어두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런 그와 아주 한가한 음력설이나 추석의 한 때를 같이해 우리나라 농주를 서로 권하며 마시는 게 매우 달갑다. 염소와 비슷한 데가 있어 그의 얼굴의 잔잔한 미소를 곁에 보며 같이 농주를 마시는 것이 아주 달가운 것이다.”

라며 두터운 사제의 정을 과시한다. 또 미당 선생은 1963년 그의 현대문학 등단작 추천사를,

“엄한정 군과 이규호 군을 새로이 소개하게 됨은 큰 기쁨이다. 엄군과 이군은 내게 기고해오기 한 5~6년쯤 되었을까. 이제 어디에 내놓아도 한 몫을 하게끔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군의 「별거하는 당신은」은 이게 문자조직이 아니고 비단으로 치더라도 일급 국산의 비단이다. 그 정신도 삼재팔난을 다 겪으면서도 이젠 풍류도 너끈하겠다. 가위(可爲) 백의 한 선비에 해당한다고 본다. 「별거하는 당신은」이 갖는 아름다움은 물론 많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하고 통하는 것이지만 오늘에 있어서도 충분히 귀한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초회 추천사를 쓰고 있으며 1971년 8월 현대문학을 통해 두 번째 추천을 받았는데, 신석초 선생과 박남수 선생이 함께 심사하였으나 그 때에도 미당선생이 쓴 심사평에서 “여기 엄한정 군의 제2회 추천작품으로 「애가」의 선정을 보는 것은 내게는 지극히 감개 깊은 일이다.(중략) 염소의 비슷한 눈과 입모습에 고대신선도 속의 어디 깊은 산자락의 바위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부스스 잠깐 일어나서 온 것 같은 조용함에 이 2,3천 일쯤의 세월을 합해 생각해보면 엄군의 두둑한 사람됨은 넉넉히 미더웁다.”고 칭찬한다.

그는 1973년 4월. 3회 추천을 완료하였는데 이때는 이원섭 선생과 신석초 선생, 조병화 선생이 추천 심사위원이었다. 이 때의 심사평은 이원섭 선생이 썼는데,

“<쑥 빠졌다>는 말이 있다. 시상에서나 표현에서 익을 대로 익어서, 저절로 이루어진 듯한 작품을 이르는 말이다. 엄한정 씨의 이번 작품은 그 같은 뜻에서 <쑥 빠진> 秀作들이었다. 아주 든든한 저력이 느껴져 이분을 시단에 내보내는데 있어서 조금도 주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한다.

엄 시인은 최근에 「면산담화」라는 시선집을 내었는데, 문덕수 시인은 북리뷰 글에서,

“1936년 인천생인 금년 69세(우리나이로 70세) 엄한정 시인은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실은 고희 기념 사화집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자기의 시는 ‘일상의 보편적 정서’를 담은 것이라 자평하고 있다. ‘중용적인 전통적 서정’이라고나 할까. 화평, 온화, 그리움, 애환, 연민 - 이러한 저서의 목록에서도 나름의 언어적 밀도와 동양적인 깊이의 아슬함을 볼 수 있다. 그 깊이는 고희에 이른 그의 연치와도 관련이 있다. 이 시선집은 가을걷이 입고용이 아니라 박차고 나갈 출발의 신호, 이제부터 안목을 높여 폭발의 위력을 과시해야 하리라.”며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을 예감하면서 격려한다.

심상운 시인은 엄한정 시인의 시를 읽음에 있어,

“엄한정 시인의 시편들에서는 풋풋한 풀냄새가 난다. 그 풀냄새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자연의 냄새다. 시인은 그 속에세 인생을 관조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편이 주는 화평함은 TV,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등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것들이 요구하고 지향하는 ‘더 재미있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라는 구호의 반대편에서 마치 깊은 산중에 있는 산사같이 자연과의 대면과 호흡을 일깨워주고 있어서 매우 귀하고 의미 깊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또, 황송문 시인은 그의 시를 보는 시각을 서정주 시인이 지어준 그의 호 염소(念少)와 선비를 이르는 말-거사(居士)-에 비추어 ‘念少居士의 人情美學’이라 이름하며 영농설에 비유하면서,

“그는 농부의 경작과 시인의 시작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엄한정 시인의 호, 그대로 그는 소년다운 순수무구한 염소로서의 전원의 인정미학을 소리내고 있다. 그의 인정미학은 미당도 일찍이 갈파한 바와 같이 음력과 하연달과 추경을 노래한 염소거사요, 농주를 나눠 마시며 능선을 쉬엄쉬엄 오르내리는 유유자적한 선비 시인이다.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이 염소 걸음 그대로 미소를 날리면서 산행을 즐기는 엄한정 시인은 농주 한 사발에 천하제일의 부자로 누리며 사는 식물성 정신의 무공해 시인으로서 지극히 동양적이며 한국적인 염소거사 이름 그대로 농심과 시심이 녹아들어 시어로 꽃피는 듯하다.”고 시에 녹아있는 인정과 한국적인 정서를 높이 평가한다.

이영걸 시인은 엄한정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꽃잎에 섬이 가리운다」를 읽는 소감을,

“이 시집 제목뿐만 아니라 모두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배열한 시집의 부제가 모두 자연물을 언급하는 제목들이다. 예컨대 ‘풀꽃은 풀꽃에 기대어 산다’, ‘면산담화’, ‘멀리 보이는 꽃’ 등의 제목은 향토적인 색깔을 지닌다. 한국시에 있어서 ‘자연과 삶’의 주제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이다. 도시와 문명을 다루는 시도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국면이지만 몇몇의 큰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구가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한 만큼 향토적인 심성과 감수성을 지니게 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영랑, 소월,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향토적인 서정을 지녔고, 미당 역시 토속적 상상력을 지녔는데 이는 엄한정 시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면서 “엄한정 사백의 시는 자연친화적 삶의 가치를 긍정하는 심미적이며 인생론적인 시다.”라 적고 있다.

엄한정 시인은 현재 이창년, 최재환, 정송전, 변세화, 임상덕, 박춘근, 강우석, 정명섭 시인등과 함께 <이한세상>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1963년 첫 시집 「낮은 자리」를 비롯해서 다. 「풀이 되어 산다는 것」,「머슴새」, 「꽃잎에 섬이 가리운다」, 「면산담화」등의 시집과 시선집, 그리고 「이한세상」동인지 1, 2, 3, 4, 5, 6, 7집 등 왕성한 창작력을 보이고 있으며 일붕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한국농민문학상을 받은바 있고, 지난 2005년 말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제성한 제18회 성균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오랜 교직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바 있다.

엄한정 시인의 시를 바라볼 때, 자연과 인간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명제는 그의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불변의 진리를 터득시켜줄 것이다. 엄 시인은 요즘 학창시절에 읽은 베르테르를 생각한다. ‘새촉이 돋아나는 봄의 들길을 차마 밟기가 안쓰러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베르테르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숲속의 생활>을 그리워하며 ‘노자’와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상사화의 숙근처럼 마음의 심연에 갈아 앉아 있는 베르테르, 소로, 노자, 그리고 아버지 같은 인간상을 엄 시인은 그리워한다. 그것은 어쩌면 엄한정 시인이 쓸 이야기가, 올라야 할 산이, 가르쳐야 할 제자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오랜 시간 스토리문학을 위해 할애해 주신 엄한정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엄 시인의 시 세 편을 소개한다.


의지목
(依支木) 외 2편

엄한정


돌아서 갈 길을 바로 오르게 하는 나무
오르내리는 사람들 손을 잡아준다
스쳐 지난 다음 잊었다가
벼랑에 서면 다시 생각난다
위험하게 건너 뛸 자리에서
가파른 길목에서
수명을 다하는 나무를 보며
친구에게 자녀에게 제자에게
의자목이 되어
소박하게 웃을 줄 알아야겠다
당산나무보다 신앙을 실감하는 나무
그 앞에서는 결단해야 한다
오르려 하는 자는
세속의 오만을 버려야 한다
겸허한 이에게만
그는 손을 내밀며
그는 마음의 신앙이 된다
쉰 길 벼랑에도
오래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다.


* 꽃잎에 섬이 가리운다


꽃 속에 섬이 들어앉았다
한평생 곡괭이로 파고 파도
줄지 않고
저녁놀에 더욱 빛나는 섬
어둠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침몰하지 않고
성벽처럼 인적을 막는
바다에 떠 있다
고요만 민물져 오는
이끼 낀 벼랑에서
늙은동백꽃이
제 그림자 위에 꽃잎을 떨군다
꽃잎에 고독한 섬이 가리운다.


* 면산담화(面山談話)


아껴 먹듯이 산길을 간다
나는 오르고 산골물은 내려간다
능선에 걸린 해는 황혼을 재촉하지만
내 발걸음은 늙은 나무처럼 점잖다
오를수록 가파른 길을 하나로 합치며 좁아지며
물소리 잦아들고
나뭇잎들이 나와 같은 저음으로 합창한다
가다가는 자작나무들이
두살박이 아기처럼 끊임없이 종알거린다
뻐꾸기와 꾀꼬리가 청을 돋군다
나도 마른기침으로 컹컹 산을 울리다
산까치가 마른 가지에서 내려와
잰걸음으로 내 앞에 간다
날 수 있는 까치가
갈 길을 아껴서 걸어서 간다
다 알면서 침묵하는 나무와
모르는 걸 아는 체 하는 사람을
용납하는 산
늙었지만 더 젊에 사는 법을 나무에게 배운다.


엄한정 시인 연보

아호는 梧下, 念少
1936년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동 42번지에서 부 엄주용 모 김원님의 1남 7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50 인천 부평동초등학교 졸업
1953년 동인천중학교 졸업
1956년 인천사범학교 본과 졸업
1956~ 1997년 경기 광주초등학교,서울 효창초등학교, 한강초등학교, 영신초등학교, 서울 영등포중학교, 오류중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반포고등학교, 서울기계공업고등학교, 중경고등학교, 삼성고등학교 재직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61년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3학년 한 학기 수학
1966년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62~1963 『아동문학』에 박목월 선생의 동시 3추천으로 문단데뷔
1963.7~1972.4 『현대문학』에 서정주, 이원섭 선생 시 3회 추천 완료
1976년 시집「낮은 자리」(청자각)
1987년 시집「풀이 되어 산다는 것은」(홍익출판사)
1991년 시집「머슴새」(풀길출판사)
1999년 시집「꽃잎에 섬이 가리운다」(새천년문학사)
1999~2002 공동시집 동인시집「이한세상」1~4집
1990년 일붕문학상 본상 시부문 수상
1991년 한국현대시인상 본상 수상
1997년 한국농민문학상 본상 수상
1997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4, 1998, 2003년 현재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1995~2003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95년 한국문인협회 감사
1996년 한국문인산악회 회장
1998년 한국농민문학회 회장
2002년 관악문인협회 회장
2005년 제 18회 성균문학상 수상


[월간 스토리문학 2006년 2월호 '메인스토리' 수록]


■ 김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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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소설가

월간 스토리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문학공원 대표

저서 [광대이야기] 외 7권


['문사탐방(포커스)' 및 서베이. 본 코너는 각 문예지에서 기획취재 수록한 '문사탐방' 기사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취재 및 수록 시점을 불문합니다. 가치있는 기사는 가능한 한 많은 독자에게 읽혀지고 항구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