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와 문학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운산 최의상 2015. 8. 10. 10:46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猫さん | 2006.03.03 15:17 | 조회 2112 | 신고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이 시는 개성 있는 발상에 의해 '만남'을 노래한 5연의 자유시다. '나'와 '너'를 '우리'로 합일(合一)시킬 수 있는 매체인 물의 현상에 비겨 노래했다. 곧,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이나 고통, 한스러움의 부정적인 상황을 탈피하여 만나고 싶은 열망,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시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 2연에서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뭄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노래한다. 제 3연에서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고, 물의 세계와 가뭄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노래한다. 제3연에서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고, 물의 세계와 불의 세계를 대비시키고 있다. 제4,5연에는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불이 다 지난 다음에 물이 되어서 만나자는 내용이 나온다. 물, 불, 그리고 불을 감싸는 물의 세계, 따라서 보편적인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물', '불'이 이 시의 중심이 된다. 이 시의 '물'은 주체와 객체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매체이며, '가뭄'을 상징되는, 기계 문명의 편의성에 물들어 타인과의 교감 없이 메말라 가는 삶의 고독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이 유동적이면서 서로 완벽하게 하나로 섞일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물로 만나 흐를 때, 비로소 힘을 지니어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에 찌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새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불은 무엇인가? 불은 삶의 기본 원리가 되는 물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것으로 죽음, 파괴, 파멸 등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방향을 상징한다. 이제, 이 불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태우고 지나간 후에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만나자는 것은 단순한 연인이나 친구가 아닌, 원시적 생명력의 만남, 합일에의 희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