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임홍택 시인의 시세계-조선형 시인

운산 최의상 2014. 8. 9. 11:28

임홍택 시인 시평>

임홍택 시인의 시세계

-청어냄새 나는 시향을 주는

시인 조선형

1.

최근 겨울여행을 다녀왔다. 부산에 1박하고 2일째 울산을 도는 여행길이었다.

부산의 명물 영도대교(옛 영도다리), 자갈치 시장, 영도 ‘갈멧길’과 ‘간절곶’, 현대家의 신화가 곳곳에 배인 울산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단지를 돌아 ‘대왕암’ 탐방을 마지막으로 여행길을 마치고 상경했다.

 

이번 여행은 특히 『 나이테, 그 환한 자리』를 세상에 내놓은 임홍택 시인의 시세계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결단이 있었다.

시인이 주로 시상을 떠올린 무대인, ‘바다와 시인 주변의 소소한 소재들과, 사계절이 가져다준 다양한 자연물’과 같은 이미지들을 가급적 많이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2집을 읽다 보면 ‘자신 앞에 가로놓인 이상과 현실의 벽을 어떻게 순조롭게 풀어나갈까’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시 전반에 흐르는 자연을 향한 거대한 담론에 갈등하기보다는 순명(順命)하려는 성실한 소시민적 태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을 그리고 있다.

‘이상과 현실’은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모순된 두 세계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일찌감치 냉정을 찾고 침착하게 세상을 직시하며 갈등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자족하는 법을 아는 자세로 그의 시세계를 그리고 있다.

 

2.

임홍택 시인은 먼저 바다와 육지 위의 삼라만상으로부터 거기서 살고 있는 자연물의 소소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상을 포착해내려 했다. 그것들로 인한 성찰을 통해 시인 스스로는 ‘비움과 도전과 그리움’의 서정을 잘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쁘지 아니한가

먼 바다로 나아가다

잔잔한 물결에 그물을 던져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한길 잠속에 들어

만선의 꿈을 달구며

먼 바다로 나갈 수 있음에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뱃길 따라 지평선까지 달려

푸른 파도 헤치고

빈 배로 돌아오더라도

구름 한 점 없는 내일이 있음에

 

뱃머리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뜨거운 꿈으로 한 없이 울 수 있음에

일터에 파도소리 새겨

뱃고동 소리 귓전에 가득하다. - 「귀항」 전문

 

 

바다는 모성의 공간으로 시인에겐 시적 자아를 떠올리기에 적합한 으뜸가는 소재이다. 임홍택 시인은 바다는 어부에겐 일용할 양식을 주는 생존의 터다. 어부들은 먼 바다로 나가면 만선의 귀향을 할 것 이란 꿈을 꾸며 출항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화자는 바다가 치열한 생존의 일터이기보다 설렘의 대상이기도 하고 끝 간 데를 모를 지평선까지 배를 몰고 갔어도 ‘빈 배로 돌아오더라도/구름 한 점 없는 내일이 있음에’ 라고 말하려 한다. 어부에게 빈 배의 귀항이라니 어디 가당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짐짓 ‘비움의 여유’를 노래하며 그름 한 점 없는 내일이 올 수 있음을 읊는다. 어부의 생존이 달린 일상과는 얼마나 다른 이율배반적인 말인가. 시이기 때문이다.

임홍택 시인의 ‘비움의 철학’ 같은 시상은 그의 새를 소재로 한 시 「새떼」에서도 볼 수 있다.

 

 

힘찬 날갯짓에 견주지 않고

자유로운 비행의 틈을 내어준다

나무에 깃들이는 것은 준비하는 몸짓

깃을 고르지 않아도

어디로 날아갈지 눈치 채는 일

이로움을 따라 날아 들다보면

새 떼를 이루는 것

날갯짓 헛되지 않아

몸을 넓은 들과 창공에 둔다

 

우리네도 다를 바 없어

비워준 터만큼

새떼의 비행을 닮는 일이다 -「새떼」 전문

 

우주 생명과의 언어와의 교감은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절대적 가치이다. 이 시에서 시인의 자연친화적인 순백한 감성을 엿볼 수가 있다.

얼마 전 모 일간신문은 영국 왕립수의대팀, 네이쳐지의 발표를 인용하여 철새들의 V자 비행의 비밀을 풀었다고 보도한 바가 있다. 새는 날갯짓을 하며 상하로 요동치는 난기류를 만드는데, 이때 V자 비행을 하면 앞선 새가 만드는 하상기류를 피해 상승기류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일렬 비행 때는 엇박자 날갯짓으로 앞으로 진행을 하게 되는데, 양자 모두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을 입증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시에선 그와 같은 과학적 지식의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디로 갈지 눈치 채는 일/이로움을 따라 들다보면/새떼의 날갯짓은 헛되지 않다’라고 하면서, ‘우리네도 다를 바 없어/비워준 터만큼 /새떼의 비행을 닮는 일이다’ 하고 청자들에게 ‘비움’ 아는 새떼를 닮으라고 은근히 권면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의 시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싶은 ‘도전’의 흔적은 「나무의 길」, 「완주」, 「줄」 등에서 볼 수 있다.

 

수줍어 붉게 물들던 날

절정의 순간에 떠나야 한다.

평균대에 선 요정처럼

팔을 흔들며 착지하는 순간

나무는 뿌리를 낸다.

(중략)

얼마나 오래 묵언해야 안으로

나이테를 자랄 수 있나

동안거에 들어 적요 속으로 걸어

허공으로 떨군 그리움에 젖는다

계절의 끝자락에 햇살을 휘감고

눈부신 길을 걸을 수 있을까 - 「나무의 길」 일부 중에서

 

위의 시에서 보면 가을 단풍이 물든 절정의 순간이 마치 ‘평균대에서 요정이 착지에 성공하는 순간’으로 그리고 있다. 착지에 성공한 후에야 나무는 뿌리를 내린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무는 화자 자신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연에서 ‘눈부신 길을 걸을 수 있을까’하며 짐짓 자기를 내려놓는 자기성찰로 돌아온다.

이외에도 시인은 「완주」라는 시를 통해 도전을 말하려 한다. 첫 연부터 ‘저기 꽃 대궐까지/다다를 수 있을까/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생을 사를 수 있을까’ 라고 독백을 하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교육자이기도 한 그가 정년이 10여 년 남은 요즘 급변하는 세대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갈등을 공감하게 한다. 어찌 보면 ‘스승의 길’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런지에 대한 화자 자신이 의구심을 일게 해준다. 왜냐하면 스승의 길을 완주하는 것은 시인에게도 또 하나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년시절을 그린 「줄」을 보면 그런 시인의 도전은 더욱 명징해진다.

‘어릴 적 큰 꿈을 꾸었지/새끼줄 꼬아 줄을 만들고/짐을 묶는 일부터 배웠지’

그렇지만 시인은 줄의 의미를 알고부터, ‘앞서 간 이, 마천루에 오른 이, 피라미드 정점까지 오른 이’, 들을 보며 자신을 ‘나지막한 산에 올라/넘어질 듯 일어서며 잡은 줄의 맛’으로 자족하는 법을 터득했다. 이 ‘줄’은 시인으로 하여금 삶을 버티게 해준 인생줄이자 동시에 출세줄이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가난한 가락’에 머무르며 그걸 ‘높은음자리’로 치환하며 앞선 이의 ‘어떤 이들’ 의 후발에 서서 비워주며 자족하는 법을 터득했다.

한편 임홍택 시인의 ‘그리움’의 서정은 「가을엽서」, 「가로등」 등등과 같은 여러 편의 시에 잘 나타나 있지만 「모과의 향기에 실려」를 보면 특히 잘 느낄 수가 있다.

 

 

녹슨 철재계단 사이로 하늘을 보다가

낡은 벽에 햇살이 묵은 양파의 삯을 틔워

매운 골목으로 눈길을 주다가

나뭇잎 사이로 노릇한 모과를 보았다

까치발로 뽀얀 허리춤으로 모과를 달고

향기 아득하게 벌거숭이로 서 있는

술로 익고 부패하는 모과의 일생을 그려 본다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잎사귀 사이로 첫사랑의 그림자가

가장 향내 나는 몸으로 태어나

모과를 닮아 가고 있었다

 

첫사랑은 마치 고향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면 늘 가슴에 묻고 살며 살아간다.

시인은 녹슨 철계단이 있는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모과나무를 보는 순간 아득히 멀리 잊고 살아왔던 고향의 그리움 같은 첫사랑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첫 사랑의 그림자’로 조응하면서 시인은 급기야는 자신도 모과의 일생을 닮아가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꽃이 피고 지고하듯이 인간의 사랑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계절의 순환과 같이 그리움은 순간순간 피어나게 마련이다.

 

 

3.

소시민이란 흔히 거대한 사회에서 한층 작아지고 왜소화된 내면을 소유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말한다. 소시민은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맡겨진 소명을 나날이 성실히 일구며 살아가는 존재의 사람이다.

여기서 시인의 ‘존재의 이유와 소시민의 행복’의 서정을 노래한 흔적의 시를 보기로 하자.

 

존재의 이유는 뿌리의 힘

아침을 여는 발자국 소리

꽃을 피우기 위해 뛰는

우리네 가장을 닮았다

 

부지런히 달린다

힘차게 걷기도 하고

지친 일상에서 돌아와

가지런히 신발을 놓으면서

고단한 하루를 되돌아 본다

 

어깨에 맨 무게를 감당하며

가족의 밝은 웃음을 위해

땀에 젖은 뿌리를 자라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뿌리에 대하여」 전문

 

시인이 말하는 존재의 이유는 ‘뿌리의 힘’이다. 그 뿌리는 나무와 나무 잎을 지탱해주는 수호자이다. 그것은 마치 한 가정의 가장이 가장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도 한다.

‘지친 일상에서 돌아와/가지런히 신발을 놓으면서/고단한 하루를 되돌아 본다//어깨에 맨 무게를 감당하며/가족의 밝은 웃음을 위해/땀에 젖은 뿌리를 자라게 하는/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아버지가 그랬다. 시인은 「아버지의 자전거」에서 ‘키 작은 단풍나무 아래/아버지의 자전거가/늙은 소처럼 누워있었습니다//숨을 몰아 쉴 때마다/노을 속으로 언덕길을 삐거덕거리며 오릅니다’ 고, 가장의 외로운 인생의 행로를 말하려 한다. 가정을 책임지는 아버지는 가장에겐 크나큰 멍에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3연에서 ‘아버지는 때로는 그 커다란 시계바퀴를 홀로 태엽을 감는’ 외로운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외로운 일상에서 부지런히 아침을 열며 고단한 하루로 나서는 존재인 것이리라.

한편 시인이 소시민적 삶의 갈등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그의 시 「벽壁」을 보기로 하자.

 

마주선 벽이 손뼉을 칠만도 한데

오랜 방황 속에서 창문을 낸 방향과

오르고자 하는 허공이 달랐다

어색한 표정으로 갈라져 가는 벽

바람이 함께 머물 듯 한데

물러서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렇듯 기대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어느새 멀어져가는 꿈이

등을 마주 대고 오른다

소통이 없는 벽

한우리에서 숨 가쁘게 걷는 발걸음

너무 높이 솟았다

움직일 수 없어 무거워만 간다

 

인기 있는 겨울 스포츠의 중에 암벽등반이 있다. 초보자들은 암벽을 앞에 두고 오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암벽 등반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평범한 소시민적 삶 가운데도 마치 암벽이 앞은 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상황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시인의 인생에서 ‘오랜 방황 속에서 창문을 낸 방향과’ 동시에 ‘오르고자 하는 허공이 달랐다’라고, 그러면서 ‘어느새 멀어져가는 꿈이’ ‘등을 마주 대고 오른다’며, 자기 성찰로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끊임없이 두드리며 도전해온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고 외친다. 세상일이 자기가 의도한 대로 되어가는 일이 어디 있었던가.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멀어져 간 꿈의 원인을 ‘소통’ 방식이었노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소통이 없는 벽’이란 얼마나 힘든 존재인가.

이밖에도 시인의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는 소시민적 태도를 보여주는 시는 얼마든지 많다. ‘불 밝혀 기다리는 일상은/급식소처럼 허기가 진다//늘어선 줄이 넉넉해지려/검은 젖줄을 물려준다 (「꿈꾸는 주유소」 중에서)’라든지, ‘허름한 리어카에 돛대를 올리고 목이 좋은 골목을 찾아다녔다. 삼거리 시장 아직 날아가지 못한 날개와 지붕을 오르는 꿈을 묶어…(중략)(「포장마차 날다」 중에서)’에서 보듯 소시민이 소통하는 공간을 시적 소재로 삼은 시다.

삶에서 일탈을 꿈꾸어 보지 않은 소박한 정서가 그의 「그릇을 닦으며」, 「주점에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그릇의 문제는 바깥보다 안쪽이다. 오랫동안 식탐의 흔적이 부풀고 비우지도 못하여 채우기만 했던 마음의 더께가……(중략)’에서 마음의 더께를 비우는 순간만은, 그리고 ‘새벽녘까지 손을 맞잡고/반달처럼 희망이 솟구치는 집’이 있는 한 시인은 행복하다.

 

4.

사실 난, 임홍택 시인을 청어 냄새가 나는 시인일 것 같다고 생각하여 부산 자갈치 시장을 돌며 청어를 열심히 찾았다. 그렇지만 겨울엔 청어가 나오는 계절이 아니어서 생물은 보지 못하고 그저 청어를 말려 만든 과메기만을 보고 돌아왔다.

시장상인들의 말로는 ‘청어 과메기’는 깨끗한 고기여서 제사상에 자주 오르는 고기로 분류한다. 그가 2집 1부의 첫 시를 왜 ‘「청어」로 상재했을까를 고민해보며, 시창작도어렵지만 공감도 그만큼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임홍택 시인의 시평을 위임 받고 백여 편의 시를 읽으며 왠지 시인은 시창작을 하며 행복해 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의 「시를 찾아서」를 보면 마지막 인화지에 사진으로 형상화 되는 시를 보며 시인의 행복해 했을 표정을 읽어 본다.

 

헝클어진 어둠 속에서

강낭콩 넝쿨은

방에 뿌리를 두고

구름까지 뻗어나간다

별빛을 따라

잠 못 드는 문자들을

감아올리는 줄기

달빛 얼룩이 선명하게 인화된다

넝쿨손이 정수리를 감고

파르르 떨어보는데

꽃술 속에서 태어난 문자

선명하게 빛나는 뜨거운 심장

점자 만지 듯 어루만지는데

한줄기 햇살 속에서

꼬투리를 터트리는 상형문자

비로소 빛나는 하얀 방에 든다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겠지만 임홍택 시인은 아마도 한밤 중 별 또는 달이 있는 깊은 밤에 주로 작업을 할 것 같다.

‘별빛을 따라/잠 못 드는 문자들을/감아올리는 줄기/달빛 얼룩이 선명하게 인화된다’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갑자기 미당 서정주 시인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국화 옆에서」 중에서)’라는 구절이 떠올려졌다.

시인에게는 문자들이 인화되어 나오는 과정은 힘들이지 않고 나오는 법은 없다. 별빛과 달빛의 얼룩이 어우러져야만 대단한 창작 한 편을 만나는 것이다.

가수들의 앨범에는 여러 편의 노래 중에서 반드시 타이틀곡이 있다. 가수들도 자신의 노래를 음반에 취입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사투하며 앨범을 만들어 낸다. 마찬가지로 시인들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시창작에 투자하며, 마치 나무들이 해를 거듭하며 나이테를 쌓듯 시인의 이력을 늘려간다.

 

노인이 양지바른 곳에서

톱으로 나무를 자른다

둥근 나이테가

속살을 드러내는데

새순이 돋고 떨구기 몇 년

비에 젖고 눈에 얼어도

저리 밝은데

오돌 도돌한 나이테를

손끝으로 감아본다

나도 저만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안쪽에서 자란 꿈들이

어둠속에서 태어나는 순간

생의 언저리에서

불의 단련을 받는다 -「나이테, 그 환한 자리」 전문

 

시인은 오돌 도돌한 나이테를 손끝으로 감지하며 ‘나도 저만한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건다. 그러면서 ‘안쪽에서 자란 꿈들이/어둠속에서 태어나는 순간/생의 언저리에서/불의 단련을 받는다’ 고, 결론을 짓는다. 왜냐하면 나이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 단련’은 생의 언저리에서 시인 스스로가 받아야 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발레리(프랑스 시인이자 평론가)는 ‘신(神)이 우리에게 첫 구절을 베풀어 줄 뿐’이고 말했다. 나머지를 채우는 작업은 시인의 자신의 몫이다. 이제 좋은 시, 감동의 시, 불후의 명작 시를 완성해나감에 있어 신이 준 영감의 그 첫 구절에 육박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우리 시인들의 몫이다. 임홍택 시인의 부단한 정진과 앞으로 더 많은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