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孤獨
<1950년대의 이수복 시인의 추천과정을 보며>
시인 최의상
50여 년 전에 시인이 되기 위한 길은 험하였다고 본다. 추천 방법은 3회 추천을 받아야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다. 지금도 그런 면이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특정 시인을 정하고 그 시인의 시를 독파하며 그 시인의 풍을 닮으려 노력하였다. 한 예를 들면 서정주 시인이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명동에 나타나면 그 다음날 명동에는 두루마기 입은 젊은이들이 생기고, 서정주 시인이 머리를 밀고 명동에 나타나면 그 다음날 대머리 젊은 청년들이 나타났다. 시 분야에서는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유치환, 모윤숙등의 추천 관록 시인으로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시인이 되기는 어렵다. 다른 말로 하면 추천 시인의 아집이 있어 뽑고자 하는 사람이 대성할 수 있는 면이 보여야 추천을 해 주었다. 추천과정에서 추천자의 관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본바탕을 본다.
1회 추천에서 추천자는 시인으로서의 인간의 본 바탕과 시에 대한 열정의 심도가 어느만큼인가를 꿰뚫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1회 추천 전에 시의 습작 태도를 익히 보고 있는 것이다. 사전 교감이 필요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억측도 있었으나 그 시절에는 한석봉이 좋은 선생님을 찾아 사사하는 미풍과 같다고 볼 수 있다.
2. 시심의 깊이, 표현, 언어활용 능력을 본다.
2회 추천에서는 시인이 될 사람의 시심의 깊이를 관찰하고 시의 표현 기법과 언어의 활용능력의 폭을 작품에서 주시하여 본다. 추천을 위한 추천이 아니다. 가르치며 시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재목으로 다듬어 주는 것이다. 시인의 저력을 탐지하여 그 저력이 활용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며 가능성을 보아서 1회 추천자라도 가능성이 부족하다면 2회 추천을 멈추고 기다린다. 그러므로 3회 추천 완료를 하려면 길게는 3년이고 짧으면 1년 내지 1년 반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
3. 미래 시인으로 책임질 시인인가를 본다.
3회 추천 완료 단계에서는 미래의 시인으로 성공할 수 있으며 추천자로서 책임질 수 있는 시인이라고 판단되어야 추천을 완료하여 세상에 신인 시인으로 등단시켰다.
다음은 서정주 시인이 李壽福 시인의 추천 과정을 [시창작교실 서정주 저] 1956년 <인간사>를 인용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수복 시인 추천 과정
1) 이수복 시인의 1회 추천 <동백꽃>
이수복 시인은 서정주 시인이 추천하였다. 1954년3월에 <文藝>지에서 1회 추천을 받고 1년 후 1955년 3월과 6월에 <現代文學>지에서 2회, 3회 추천을 완료하였다. 1년3개월의 산고를 거쳐 추천이 완료된 시인이다.
<추천작품 1>
冬栢꽃
李壽福
冬栢꽃은
훗시집간 순아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
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
홍치마에 지던
하늘비친 눈물도
가냘피고 쓸쓸하던 누님의 한숨도
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우리든 冬栢꽃도
나는 몰라
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髑髏가 된
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
빨간 冬栢꽃
서정주는 <選後感>에서 다음과 같이 評하였다.
[李壽福씨의 [冬栢꽃]은 보시는 바와 같이 起伏과 陰影이 많은 作品은 아니지만, 想에 헛것이 묻지 않은게 첫째 좋고 그 配置와 表現에도 거이 成功했으려니와 特히 요즘 詩壇新人의 大部分이 뜻면을 찾다가 詩에 感動이나 知慧의 움직이는 모양을 주어야 할것까지를 잊어버리고 千篇一律로[이다] [이었다] [하였다]만 되푸리하고있는 實狀에 比해볼때 이만한 自己詩의 [몸놀림]이 나마 뜻과 아울러 같이 가져보려고 努力한 點도 요샛 일로서는 貴한 作品이다. 이 簡單한 말수를 通해서 나타나는 별 어려운것도 없는ㅡ 한情의 含蓄의 層위에 있다는 한눈물같은 理解는 一見 特別할것도없는 것같긴하지만 이것이 가지는 시의 普遍的 水準은 決코 옅은것은 아니다. 부디 貴兄의 諸情世界들이 끄는 힘과 理解의 深度와 넓이가 계속해서 늘어 인력있는 말들(例하면 이번시의 홍치마에 지든 하늘 비친 눈물같은)로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출렁거려오기를 바랄따름이다.] (원본대로 옮겨 적었음)
이수복의 [동백꽃] 시를 읽고 나면 서정주의 시풍에 대한 뉘앙스가 있음을 느낀다. 이 시대는 대학 입시 출제를 각 대학별로 출제하였다.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을 선정하여 그 대학의 특성과 출제경향을 알기 위하여 과거 출제문제 탐색에 고심하였다. 이와 같이 추천 시인을 정하고 그 시인의 작품을 연구하고 교감의 시간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1회추천에서 서정주 추천인은 한 수 가르쳐 주며 칭찬과 격려를 잊지 않았다.
첫째 [기복과 음영이 많은 작품은 아니지만 詩想에 헛것이 묻지 않은 게 첫째 좋고]에서 훗시집간 누님의 슬픔을 아무도 모르나 동백꽃만은 알아줄 수 있어 더 슬픈 누님의 심정이다. 단순한 갈등이지만 거짓 없는 인간사를 좋게 보았다.
둘째는 배치와 표현에도 거의 성공하였다.
셋째는 의미만 찾다가 시의 감동이나 지혜의 움직이는 모양의 흐름을 잊고 [이다], [이었다], [하였다]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상에 비해 시의 [몸놀림]이나마 뜻과 아울러 같이 가져보려고 노력한 점을 귀하게 보았다.
2) 이수복 시인의 2회 추천 <실솔>(蟋蟀)
蟋蟀
李壽福
능금나무 가지를 잡아 휘이는
능금알들이랑
함께 익어 깊어 가는 맑은 햇볕에,
다시 씻어발라 메는 門扉곁으로
故鄕으로처럼 날아와 지는........
한이파리 으능 잎사귀
-깊이 산을 헤쳐오다 문득 만나는
어느 髑髏위에 脣氣하는
蛾眉와도 같이
자취 없이 흐르는 세월들의
긴 江물이여!
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선
喞喞 季節을 뽑아내는
적은 蟋蟀이여
2회 서정주 추천평은 다음과 같다.
[李壽福氏는 벌써 재작년에 한차례 나를 통해 [文藝]誌에 소개 되었던 분으로서 그때도 캐랑 캐랑 개여가고 있었거니와 이번의 [蟋蟀]에서는 비록 얼마 안 되는 문자로서나마 韓國人의 情緖生活의 中核을 소리나게 울리는 것이 있다. 民族固有의 生活習慣에서 詩의 감정과 지혜가 멀어져 가고 있는 때 그가 하고 있는 것과 같은 詩의 노력들은 정신 차린 것이 된다. 漢語屬의 克服만을 (어려운 일이다마는)꾸준히 해가면 잘 될 것이다.] 徐廷柱
제2회 추천평에서는 외세문화의 유입으로 한국인의 정서가 가려지는 것을 염려하며 실솔(蟋蟀) (귀뚜라미) 소리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시의 감정과 지혜로 자아낸 노력을 칭찬하면서 漢語의 남발을 경계하고 있다. 실솔(蟋蟀)보다는 귀뚜라미, 문비(門扉)보다는 문짝, 순기(脣氣)보다는 입김 즉즉(喞喞)은 벌레소리를 의성화한 한어등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주문하고 있었다.
3) 이수복 시인의 3회추천 <<봄비>
<봄비>
李壽福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 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빙그러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겠다.
서정주 제3회 薦了評
[李壽福氏의 이번 詩는 完熟한 솜씨와 想의 大脈을 獲得한 것으로 그는 과거 三년동안 벌써 數十편의 詩作을 내게 계속해서 뵈어왔거니와 능히 우리 詩文壇에 나서서 一家를 이룰 것으로 믿는다. 그는 이 [봅비]에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韻律的인 형성에도 길을 닦고 있지만 또 해방 후 우리 新人詩의 주목될 것만 傾向인 구체적 의미 探究의 방향에도 잘 길들어 있는 詩人이다. 添加해서 그의 사람됨을 말한다면 그는 基督敎徒이지만 결코 꾀까다랍거나 매달려 있지 않고 또 어떠한 傲慢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大成하기를 기다린다.] 徐廷柱
스스로 고독한 시인에서 벗어나자.
이수복 시인이 오늘의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하여 실의와 절망 그리고 오기와 희망 속에서 3년의 세월을 천착(穿鑿)하였을 것이다. 이수복 시인은 “백권의 소설보다 한 권의 시집, 이것은 시가 지니는 결정체의 긴밀성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소설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시 한 편이 소설 한 편을 함축한 감동의 표현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 말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문학세계에서는 [시인은 많고 독자는 없다.] [시를 고독하게 하는 장본인은 시인이다.] [돈 버는 시인과 돈 쓰는 시인]이란 말을 한다. 카페문학이 난무하고 무제한으로 시인을 배출하여 시인이 양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작품의 질은 저하됨을 우려하는 문인들이 많은 것 같다. 시집 출판 기념회에 시인만 있고 독자는 없다고 한다. 마치 경조사에서 품앗이와 같다고 한다. 문학카페에 작품을 올리고 반응이 어떤가에 신경이 날카로우며 시인들의 습작 수준 노트로 활용되어 진부하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그 카페의 중견 시인들은 잠수를 하고 만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많은 시인들이 자비로 시집을 출판한다. 250만원 내지 500만원을 투자하여 시집 한권 만들어 나도 [시집 詩集]을 낸 시인임을 알리는 선물용으로 거의 500권 내지 1000여권을 돌리게 된다. 넉넉한 부자 시인은 투자한 돈에 관심이 없겠으나 가난한 무명 시인들에게는 눈물겨운 일이다. 한 권의 자기 [시집 詩集]을 세상에 선 보이지 못한 시인들에게는 부담만 커지고 있다. 한탄할 일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 하도록 유명시인이 되는 것이다. 유명 시인이 되려면 이수복 시인보다도 더 많은 노력과 아픔을 통과하여야 할 것이다. 카페 문학에서 1회용 문학작품이 되지 말고 토씨 하나 받침 하나에도 세심한 추고가 있어야 하고 표현에서 좀더 고민하는 흔적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카페문학에서 다량의 문인들을 배출하는 내막의 고충도 알겠으나 한 사람의 시인다운 시인을 배출 할 때 그 카페의 생명은 영원할 수도 있음을 이미 알고들 있지만 행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야 할 것이다. 시인들 자신이 자승자박 自繩自縛하는 고독에 놓이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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