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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시간만 잡아 먹은 다이빙벨

운산 최의상 2014. 4. 28. 08:48

 

 

[업체 "날씨 안좋아 2차회항" 전문가들 "효과없는 장비"]

해군 "더 성능좋은 장비있지만 얕은水深, 센 조류엔 도움안돼
더 큰 문제는 기존 수색 방해… 바지선끼리 닻줄 엉키면 큰위험

25일부터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에 나서겠다던 다이빙벨이 사흘째 투입 시도만 되풀이하다 회항했다. 다이빙벨 투입을 주장해온 민간 구난업자 이종인씨는 25일 오후 2시 50분 바지선에 다이빙벨을 싣고 사고 해역에 도착했지만, 이씨의 바지선에서 내린 닻줄이 기존 구조팀이 쓰던 바지선의 닻줄과 충돌하자 뒤로 물러섰다.

이 과정을 두고 양측의 설명이 엇갈렸다. 이씨는 "구조팀 바지선의 닻줄과 다이빙벨 바지선의 닻줄이 서로 닿자 구조팀이 '위험하다. 바로 닻을 빼라'고 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작업한다니 알게 모르게 적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고명석 대변인은 이씨의 주장에 대해 "바지선의 닻은 그 위에 있는 모든 수색대원에겐 생명줄"이라면서 "우리는 철수하라고 한 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안전한 방법으로 해달라고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지선과 다이빙벨 바지선 정박 계획.
물러났던 이씨는 26일 오전 4시 30분 2차로 바지선 고정을 시도하다 "날씨가 안 좋다"며 오전 7시 5분 팽목항으로 돌아갔다. 고 대변인은 "파도가 1.5m, 바람은 초속 8m로 평소보다 강하긴 했지만 해역엔 4~6인승 고무보트가 선상 수색을 하고 있었다. 그 큰 바지선이 못 들어온다니…"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씨는 다이빙벨이 "조류와 관계 없이 20시간 이상 작업할 수 있다"며 세월호 구조 작업에 투입하면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해경과 해군은 "아래가 뚫려 있는 다이빙벨은 수평을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맹골수도의 거센 물살에 흔들리면 내부의 에어포켓(공기층)이 유실돼 잠수부가 위험해진다"며 투입을 반대했다. 민간 전문가들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차주홍 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장은 "다이빙벨을 설치해봤자 맹골수도의 물살 때문에 기존 구조 바지선뿐만 아니라 (세월호) 선체에 부딪혀 탑승한 잠수사마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다이빙벨은 유속이 느리고 수온이 따뜻한 필리핀이나 동남아 바닷속에서나 사용 가능한 장비"라고 말했다.

'최고의 구난 조직'인 해군엔 이종인씨의 다이빙벨보다 성능이 훨씬 우수한 심해 잠수장비가 있다. 물과 완전히 차단되고 감압·가압 장치도 갖춘 포화잠수벨(PTC)이다. 그러나 해군은 이번 작전에 이를 투입하지 않았다. 해군 SSU(해난구조대) 관계자는 "조류 속도 2노트 이하, 수심 60~300m에 적합한 장비"라고 말했다. 조류가 약하다 해도 이번처럼 수심이 30~40m밖에 안 되는 곳에선 직접 잠수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대신 해군은 공기도 공급되고 교신이 가능한 수중 특수 헬멧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이종인씨가 제작한 다이빙벨(왼쪽)과 해군 청해진함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심해 잠수 장비인 PTC(인원 이송 장비).
민간업자 이종인씨의 다이빙벨, 해군이 보유한 것보다 구형이다(왼쪽). 감압 시설도 있는 해군의 최신형, 조류 센 곳엔 효과없어 투입 안해 - 이종인씨가 제작한 다이빙벨(왼쪽)과 해군 청해진함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심해 잠수 장비인 PTC(인원 이송 장비). 해군의 PTC는 다이빙벨에다 감압 장비까지 갖춘 일종의‘폐쇄형 다이빙벨’로, 수심 300m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반면 이씨의 다이빙벨은 아래가 뚫려 있고 감압 기능이 없다. 사고 해역과 같은 얕은 수심에 조류가 빠른 바다에서는 PTC 같은 장비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 따라, 해군은 이번 구조 작전에 PTC를 투입하지 않았다. /뉴시스·인터넷 캡처
더 큰 문제는 다이빙벨 투입이 기존 수색 작업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해양구조협회 황대식 본부장은 "기존 수색용 바지선에 다이빙벨 투입용 바지선을 갖다 붙이면 두 바지선의 닻이 엉키며 선체 수색용으로 설치해놓은 가이드 라인 6개가 끊길 수 있다"고 말했다. 수색에 나선 잠수부들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3~4인용이라는 이종인씨의 다이빙벨을 투입하려면 기존에 교대로 투입됐던 100여명의 구조팀은 모두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다이빙벨이 잠수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주장도 과장이라는 지적이다. 잠수사의 체내 질소 농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감압실'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수중의 다이빙벨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잠수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용현 한국잠수산업연구원장은 "다이빙벨은 감압 장치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이빙벨 투입 문제로 실종자 가족, 해경·해군, 그동안 구조에 투입됐던 민간잠수업체 언딘 등은 27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언딘 관계자는 "가족분들이 다이빙벨 설치를 원하시면 우리가 바지선을 빼겠다"고 했다. 그러자 실종자 가족들이 "아니다. 그냥 계속 지금처럼 수색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구조협회 황대식 본부장은 "다이빙벨로 구조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무책임한 주장은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희망 고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