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자료실

[스크랩] 안동 지역 답사기

운산 최의상 2013. 11. 22. 12:20

   

 

 

 

 

                       안동 지역   답사기

                   -   한국 전통 정신문화의 수도를 찾아서  -

 

 

 

 

 

 

 

 

 

 

          그 곳은 정녕 우리 한국의 자존심이었다. 그곳에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서구화의 변화와  물결 앞에 숨을 멈춘 듯 하였다.  태백

          과  소백산맥의 깊은 낙동강 가슴 줄기에 숨겨둔 숨결들이  이제야 크게  내쉬

          는 듯한 지점, 안동시를 찾아나섰다.

 

          가령  미국인에게  동부의 보스턴시가   그들의 영예와 지체를 지켜 주는 마지

          막 보루라면, 우리에게는  경북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그  자존심에 답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선비의 얼과   향토문화의  전통정신이

          생생이 살아있는 현장이기에 답사길에 올랐다.

 

 

 

 

         5월 하순 신록의 싱그러운 향기가 흐드러지게 배어나오고  논판에서는 모내기

         가 한창인 경북 동북부의 오지 안동에 도착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전통성

         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회마을,    천년의 세월을  하루같이  깨달음의 수행처로

         삼았던  봉정사(鳳停寺),     조선의 성리학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의 본산이었던

         도산서원등을 돌아보았다.

 

 

 


 

 

 

 

         물길은 돌아 인재를 배태(胚胎)하고

 

 

 

 

          동북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산줄기를 이어 받아  낮은 구릉지를 낙동강 줄기가

          감싸안고 흐르는 하회(河回)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집

          성촌으로 소슬대문을 갖춘 와가와 초가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오랜 역사 속에

          서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하회 마을은 국보인 하회 병산탈 (제121호)과

          류성룡의 징비록(제132호)을 비롯하여 여러 보물들과 사적 그리고 중요무형문

          화재, 중요민속자료등 문화재들이 전래되어 왔기에 2010년도 유네스코 세계유

          산에 등재되었다.

 

          더구나 1994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가장 한국적인 전통 생활문

          와 고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곳으로 추천받아 이곳을 방문하였으며, 류씨의 후

          인 연예인 류시원의 고택(古宅)에서 전통적인 한국 생일상을 받았던 일로 인

          여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러 전통가옥 가운데 특히 서애(西崖)류성룡의 고택인 충효당(忠孝堂)에  이르

          러서는 표정들이 숙연해졌다.  왜군의 침입으로 시작된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이

          었던  서애는 전쟁의 총 책임자로서  나라를 위하여 사심을 버리고  혼신의 힘을

          쏟으며 국정을 살폈다는 점과 어려운 그 당시의 와중에서도 나라의 상황을 꼼꼼

          히 징비록을 통하여 기록하는 한편 부모에 대한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는 점이 후

          대의 우리들에게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 굿탈놀이’ 를

          공연하고 있는 바. 외국인들도 적지않게 구경온다는 것이었다.  우리일행은 일정

          때문에 직접 관람을 못하였다.

         

          그러나 하회 굿놀이와 관련하여 조선시대 신분제가 뚜렷했을 당시에 마을 사람들

          이 가면을 쓴 채이긴 하지만  양반이나 또는 지주 그리고 지방관리들을 마음껏 비

          웃고 풍자했던 해학적 사실에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이곳 양반계층들은  서민들과

          더불어 그 탈놀이를 재미있게 구경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아마도 서민들의  불만을 억누르기보다는 오히려 권장하면서 굿판을 바라본

          다는 것은  서민들의 감정 카다르시스적인 높은 수준의 해소책이면서 동시에 같이

          사는  마을사람들의 상생(相生)의 해법인 것 같다는  해설자의 설명에 많은 공감이

          갔다.

 

 

 

 


 

 

 

 

 

안동시가 제공한 , 하회마을에서  전부터 내려오는 주변의 풍치와 관련된 시화(詩

畵)적 16경(景)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입암청창(立岩晴漲) : 형제바위에 흐르는 맑은 물

. 마암노도(馬巖怒濤) : 갈모바위에 부딪치는 성난 물결

. 화수용월(花峀湧月) : 화산에 솟아오르는 달

. 삼봉숙운(삼峰宿雲) : 구름에 잠긴 마늘봉

. 송림제설(松林霽雪) : 눈 개인 뒤 만송정 솔숲

. 율원취연(栗園炊烟) : 밤나무 숲에 오르는 밥 짓는 연기

. 수봉상풍(秀峰霜楓) : 첫서리 내린 남산 수봉의 단풍

. 도잔행인(道棧行人) : 상봉정 비탈길을 지나는 나그네

. 남포홍교(南浦虹橋) : 남 쪽 나루의 무지개 다리

. 원봉영우(遠峰靈雨) : 원지산에 내리는 신령한 비

. 반기수조(盤嘰垂釣) : 물가 반석에 낚싯대 드리운 낚시꾼

. 적벽호가(赤壁浩歌) : 부용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

. 강촌어화(江村漁火) : 강촌의 고기잡이 배

. 도두횡주(渡頭橫舟) : 옥연정 앞 강나루에 매어둔 배

. 수림낙하(水林落霞) : 수림에 지는 저녁노을

. 평사하안(平沙下雁) : 드넓은 모래톱에 내리는 기러기

 

 

 

 


 

 

 

 

 

천년 동안의 깨달음을 품고

 

 

 

 

안동시 교외 천등산(天燈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봉정사(鳳停寺)에 이르렀다.

약 천4백년 전(신라 문무왕 12년 :  서력672년)에 누구나  마음 속에 착한 불성

(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대승(大乘) 불교를 확립해준 의상(義湘)조사의 수제자

인 능인 대덕이 창건한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동가람은 국보2점과 보물6점과  여러 유형 문화재와 민속자료등이 그  역사적 유

물로서의 가치를 빛내고 있다. 그윽한 고찰건물 가운데 손꼽히는 법당은  국보 1

5호로 지정되어 있는 극락전(極樂殿)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1972년 해체 보

수시에 발견된 글에 의해 고려 공민왕 12년에 중수(중수) 되었다는  기록이 나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영주 부석사보다도 더 오래된 것으로 판명되었

기 때문이다.

 

더불어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하여 극락전 참배모습의 흥미로운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는 법당 앞에  서양의 여왕

이 구두를 가지런히 벗어놓고 들어가서는 두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아미타불을 참

배했다는 것이었다. 구두를 조용히 벗었다는 점과 불상 앞에 합장배례하는 모습은

이국의 문화와 종교를 사뭇 존중했다는 차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단청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극락전보다 더 고즈넉하게 보이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조선초기 건물인 국보 311호 대웅전과 고금당(보물449호)과 화엄당 (보물448

호), 상륜부가 세밀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으며 전신에 이끼가 세월의 장구함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을 보았다.

 

또한 업보와 깨달음을 주제로 하여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조명한 영화 “ 달마가 동쪽

으로 간 까닭은”  의 촬영무대였던  그윽한 분위기의 영산암 (경북 민속자료 126호)

도 둘러 보았다.

 

 

 

 

 

동방을 비추는 학문과 교육의 전당에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는 안동 다목적댐을 지나 봉화 쪽으로 한시간  정

도 달려 도산서원에 도착하였다.

사적 170호로 지정된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숨결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선생은  조정의 수차례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연구,  인격도야, 후진 양성에 힘써 이

나라 사상과 교육의 큰 줄기를 이루었고 만대의 정신적 사표(師表)로  남게 되었

고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은 경사진 언덕 초입을 중심으로  생존시 명종16년(1561년)에 현대의 연

구생들의 기숙사격인  농운정사(隴雲精舍)와 정우당 등의  도산서당(陶山書堂) 을

건립하고 사후 년만인 선조 7년 (1574년)에 그 위쪽에 문인과  유림들의 대강당격

인 보물210호인 전교당(典敎堂)과 책을 보관하는 광명실(光明室)과 보물 211호로

지정되어있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서원에서 직접 찍어 만들어낸

조 어필, 선생문집, 언행록과 도산12곡등 총 2800편 가가운 목판이 보관되던 장

각등을 포함한 여러 채로 구성된 도산서원을 세우게 된다. 이 때에 선조 임금은

석봉 친필인 도산서원(陶山書院) 현판을 사액하였다 한다.  1970년 정부에서는

원을 보수 정비하여 성역화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곳에는  그의 적지 않은 전적류와 일반 유물이 잘 보존되어있어  찾는 이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이황 사후에 휼륭한 제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나  학문과 사회발전

에 크게 이바지 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찍 중국에서 학문적 체계를 갖추고 사물의 근본적 본질과  현실적인 인간들의

의 방식을 논의하였던  유학은 송(宋) 과 명(明)조에 이르러  주자학 또는 성리학으

로 발전하였으나 동북방의 청나라가 새로이 일어나면서, 명은그 기운이 쇠퇴하기에

이르러 한족중심 학문과 이념이었던 주자학에 있어서 조선은 계승자의 위상을 뛰어

넘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동학문의 절정에  이퇴계라는 위대한 세계적 사상가나 석

을 배출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도 일본과 중국에서까지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맺는 말

 

 

 

안동 도산서원은 찾기 전 사전에 많은 관심과 준비연구를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

되는 곳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또는 단순히  관광을 하기보다는 며칠을 두고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 좋겠다고 당부하고 싶은 곳이다.

 

 안동시가  명실상부한 한국의 전통정신문화의 수도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앞으로 우리는 계속 많은 변화와 흐름을 겪겠지만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

지 않고  언제든지 우리의 근원을 보여 줄 수 있는 도시로서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

다.

 

 

떠났던 곳으로의 회향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바쁜 도시의 불빛 속에서 하늘의 별빛과

반달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총총 귀가하는 필자와 동행자들의 마음속에 조금의 희열

이나마 오랫동안 남았으면 한다. 

 

 


                                                         어느 회보지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관심있게 있어 읽어주시길...... 

                                                                                                           로송 超堂 拜

 

 

 

 

 

 

 

 


 
 

출처 : 안성문협
글쓴이 : 로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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