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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경을 다녀와서

운산 최의상 2013. 11. 22. 12:32

 

 

      

 

 

      남경을 다녀와서

 

 

                                                                    

 

 

지금까지 중국을 제법 많이 돌아다녔다.  이런 저런 일로 중국의

현 수도인 북경 뿐 만 아니라   지방 도시들도 돌아  다닐 기회가

있었다.   주변의 산수와 어울려져 아름다운 정경이 마치 선경과

(仙境)같은 곳들과 소수민족이 예로 부터  그들의 색다른 풍물이

나 풍속을 오랫동안 그대로 간직한 채 지내오는 민속적인 지방도

다녀보았다. 또한 오래된 역사의 시간을 안고 있는 도시들, 즉 지

난 시기 뛰어난 영웅이나 제왕들의 흔적도 살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찾아간 여러 곳 중에서  특히 머리에 인상 깊게 남는 곳이

있다. 그 곳은 일반인 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곳이나 유명 한 관

광지가 아니고  어찌 보면 평범한 듯 하나  숱한 격변의 용트림을

안고 있는 도시이다.

 

 

 

 


 

 

 

 

 

그 곳은 중국내의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곳이  어디 일

까?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았던 것과 관련이 크다.  국가의

정치적인 요소가 기실 경제나 문화 등 여러 사회 현상  중에서 다

른 부문에 깊은 영향을 주거나  지어 이끌어 가는 경향이 있기 때

문이다.   사회주의권의 공산당이나 북한의 노동당에서 가장 중요

한  핵심 권력부서는 정치국이나 정치위원회라는 점이  이를 단적

으로 나타낸다.

 

 

근현대사에 있어서도 아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뭇 정

치적인 도시라는 말이 정말 있는 지,  스스로   그런 단어를 새로히

신조(新造)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걱정과  더불어 나름대로  정치적

인 도시라는 의미를 설정하고는 끝내 중국내  그 곳이  어디일까 라

는 의문 끝에 한 도시를 주목하게 되었다.

 

 

약 20년 전 한국과 수교되기 전과 작년도에 이어  3번째로 이곳에

들렸다.  애초부터  이상스레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중국의 다른

도시처럼 그렇게 빠르게 변하는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근대화의 변화 속도는 조금 늦는 듯 보였다. 오히려 이것이 다행이

다 싶었다. 다른 도시에서 처럼 조금 전 과거에 보았거나  기억되는

것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은 하지 않아

괜찮았다.  말하자면 숱한 격변을 몸소 겪으면서도 의연하게 살

아오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시안(西安)은 기원전의 고대로부터  상당히 오랫동안  여러 왕조의 중

심으로서의 도읍이였기에 고도(古都)로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반면에 정치라는 말뜻이 순수한 의미에서  고대 왕조 제왕들이 백성을

다스린다는 테두리에 머물고 있는 뜻으로 본다면 요컨대  정치의 범위

를 근대사 범위로 좁혀 보는 입장이라면   중국 여러 도시 가운데 시안

보다도 난징 (南京)이 어느 정도 정치적 도시에 해당 될 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근래 적지 않은 일정한 권력자의 힘이 모아졌으며

동시에 잊지 못 할 격변이 존재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방의 강소성의 수도인 성도(省都) 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지난

과거사에 만만치 않은 정치적 일들이 일어났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일찌기 기원 전의 많은 일들과 제갈공명과 관운장등의 촉과 오나라등이

등장하는  삼국 시대를 생략하고 나면 , 근대사에서 먼저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 대륙을 침공하여 무려 30만명을 학살한 바로 현장의 그

곳이 난징이다.   30만명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짐작하기 힘든

인명이다.  학교 운동장에 가득 모인  학생 수가 겨우  수백이나 천명 이

라는데.......

 

시내 중심가에 이를 기리는 기념관에 들어서면 먼저 숨이 막힌다.  인간

이라는 종족이 그 본래 인간성을 잃어버린  잔인한 광기의 살인은  어디

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에게 물어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양

민에 대한 학살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인간의 대도륙(大屠戮) 이었던

사건,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무지막지한 살육사건이  분명하

기 때문이리라.  동시에 인간은 아무리 지난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망각

동물이지만  그저  이것을 과거에 일어났던  일개 사건일 뿐이라고 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인지 분별이 안 된다.

 

기념관내에 시간을 내어  난징학살사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였다.  근래의 깊은 망각과 침묵의 늪에 조용한

반기(反旗)를 들었던 작품으로 중국인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던 최

근년도  중국 영화로서 유명한 루친 감독이 제작한 “난징! 난징!“ 이라는

흑백 영화작품이다.

 

물론 스토리가 있는 내용이지만 많은 부분을 남경 만행(蠻行)의 기록물을

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상영되었을 당시 영화관 안은 대학살로 짐승처럼

죽어 간  남경시민들을 위시하여  중국인들은 그  장면들을 보면서 울음을

지 못하였고  장내를 끝내 울음판으로 만들었던 영화이다.  총칼로 생사

을 찍어내는 사진,   일본군에 의해  옷이 벗겨진 여자들의 장면 등을 바

라보면서 한없는 만행의 주체자인 일본에 대하여 용서 할 수 있을 지 없을

수 모르지만 끝내 잊을길 만은 없다는  인식을 끓어오르는 중국인 가슴 속

에 깊이 각인(刻印)시켰던 작품 이다.

상기된 마음과 가슴으로부터 전해오는 오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깊은 심연(深淵) 속에  아득한 인간애의 연민과 고독감을 독백으로  내놓고

만다. 그리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를  저질렀거나 반대로  이를 당했던 집

단들도 아무 일 없던 것 처럼 이를 잊어버리고  그냥 오늘이라는 현재 만을

는 모습이 의젖하게 만 보이는  사실 앞에 망연 할 뿐이다.  그런  엄청난

비극도 그저  역사의 조그마한 부스러기 처럼 나도는 모습,  현대사의  단지

작은 과거 그림자 일 뿐 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못내 정상적으로  여겨지

지 않았다.

 

 

 


 

 

 

이어 장강 대교와 대 교두보(橋頭堡)를 둘러봤다. 난징시에서 대학살의 현

장을 생생하게 남겨놓은 기념관과 더불어 얼마 전 까지도 아시아에서 제일

길다는 유명한 장강대교를 보는 것은  난징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양자강을 중국인들은 보통 장강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게임이 열렸을 때에 와서 처음 찾았 던 곳이지만 이

곳을 다시 보고 싶었다. 시청 관계자에게 요청하니 쾌히 승낙 할 뿐만 아니

라 친철하게 안내를 맡아 주었다.

 

어찌 보면 난징시의 자랑스러운 건설 현장이라고 여기는 듯 하였다. 한국에

서 온 어느 한 사람이 남들은 잘 찾지 않는 곳인 이곳을 일부러 보고자 하는

데 감격했는 지 모르겠다.

 

 

모택동은 1949년 중국 전역을 장악한 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하고 나서 남

경을 가로지르는  장강 (長江) 에  대규모 교량을 사뭇 혁명적,  전투적으로

건설 하였다.

물론 강 기슭에 기념비적인 교두보가 남아 있다.  지금도 교량 밑 교두보에

이르면 인민복차림의  거대한 모택동 동상은 이곳을 찾아오는 중국  인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그 당시 중국건설에 박차를 가했던 흔적으로 보여 진다.  교량 양쪽  끝에는

당시 건설대의 전투적 모습을 새겨놓은 조각이 남아있어  이 당시의 속도전

의 모습을 생각케 한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마음을 모아   남경지역에 자

랑스러운 대교 건설을 추진하면서  장강유역의 대 발전이라는 목적과  더불

외세 일본으로부터 받은  이 곳 시민들의 깊은 상처를  어느 정도 어루만

지고 싶었었던 모택동의 배려가 작용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긴 교량을 건너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장강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큰 물

결과 더불어 변함없이 흐르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험난한 과거를 허공에 묻

히고 강물은 도도히 흘러 황해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세월의 무상한 인류

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듯 하였다.

우리에게도  씻을 수 없는  근대사의  일부들이  피자욱 처럼  얼룩져 있으며

이것들은 오늘도 말없이 잠겨 가는 사실들을 문득 상기하고 있었다.

 

 

 


 

 

 

또한 주원장이 명(明)을 세울 때 남경 이곳을 처음의 근거지로 삼아 도읍으로

삼았다. 얼마 후 지금의 북경으로 옮겼지만 건국의 산실(産室)이었던 것은 틀

림없는 사실이었다.

 

또한 남경은 중국 전 인민들을 봉기시키면서 전역을 뒤흔들면서  새로운 세상

을 표방하고 나선 태평천국(太平天國)의 13년간의 핵심거점으로도 빼놓을 수

없다.

태평천국 운동이란 1851년 아편을 매개로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교활한 침탈

(侵奪)에 민중의 집단 항거 깃발을 높이 세우고 17개성에 600여개 도시가 망

라하는 큰 자주혁명으로 전개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편전쟁이나 태평천국은 현재까지 중국근대사에 큰 몫으로 강조하고 있는 운

동으로 우리들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모든 인민학교 교과서에도 자세히 이를

다루고 있는 형편이다.  마치 우리의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독립을 위한 전

국적인 3.1운동이나 또는 동학혁명으로 여기는 성 싶었다..

 

 

 


 

 

 

얼마 후 잘 다듬어 진 중산릉(中山陵)에 들렸다.  근대 중국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손문(孫文)이 죽은 후 이곳에 돌아와 한 줌의 흙으로 묻혀있는 곳이

중산능이다.

이곳에 언제나 많은 참배객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치 존경과 사랑을

인민들에게 받고 있는 증거 이리라.

 

나무숲이 우거진 공원처럼 꾸며진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오르니  드디어 크지

않은 건물에 이르렀다. 현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하나인 손문이 중

국의 역사 이래  마지막 봉건왕조인 청(淸)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중화민

국 임시정부를 세운 근거지도 바로 이 곳이었다. 손문이 주창한 민족, 민권, 민

생으로 요약되는 삼민주의(三民主義)는 중국이 근대국가를 만드는데 인민혁명

의 정신적 이념으로 그 밑바탕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말하자면 남경은

중요한 역사적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서서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라는 점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옛 왕능 모양처럼 햇볕아래 자연 그대로 있는 모습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지어진

건물 안에 손문의 유해는 모셔져 있었다. 밑을 내다보니 수십 미터 눈 아래 원형

으로 둥글게 만든 지점에 무덤 모양보다는 그냥 평면에 가까운 상태로 보였다.

 

거기에 국기(國旗)가 보였다. 바로 중화민국 즉 대만의 국기밑에 잠들고  있었었

다.  반대로 돔위를 쳐다보니 인민공화국 의 국기가 새겨져 있는 모양이  뚜렸했

다.  즉  중화민국 국기와  현중국 국기가 하나는 천장에  하나는 지하에 각각

이 새겨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놀라웠다.  뒤통수를

몽둥이로 세게 맞은 것처럼 어리둥절 하였다.

 

모택동은 손문이 죽으면서 이념으로 달라진 두 양안(兩岸)의  대만과 중국의  국기

모두 무덤 주변에 새겨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폭넓은 자신감의 발로

(發露)인가? 거리낌 없는 문양은 편협한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한참을

쳐다보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상해에  세워 진 이후   일본군의 중국대륙 추격에 따라  남경

어딘가에 쫒기 듯 머물러 활동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  귀로(歸

路) 길에 상해에 들렸을 때 였다. 즉 1933년 5월 백범 김구선생은 이곳 남경에서 장

개석을 만나 중국과 더불어 대일 전투방책을 논의하였다 한다.

그후  1937년 남경이 일본군에 함락되자  임시정부는 무한으로 이동하였다는 내용이

었다.

 

 

기내 승무원이 제공하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차창을 바라본다. 비행기 내에서 바라 본

구름 밑은 온통 황해의 황톳물 뿐이었다.  언젠가 남경을 다시 한번  더 찾아오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  2010년)

 

 


 

어느 회보에 게재했던 글 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

 

 



 

 

 





 

출처 : 안성문협
글쓴이 : 로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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